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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게임은 속이지 않는다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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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무료한 나날들을 보낸 뒤라 더 짜릿했던 인류의 축제가 끝났다. 뛰고 찌르고 싸우고 환호하는 사람들. 진정한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믿음을 스포츠는 우리에게 준다. 진정한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환상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은 나를 속였지만, 게임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경기 전에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다고 믿는 나, 선수들의 보디랭귀지를 통해 승부를 예측해 보았다. 여자에페 결승 최종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투구를 벗은 에스토니아 선수의 얼굴은 대관식을 앞둔 여왕처럼 당당하고 고고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이 경기 쉽지 않겠는데...국가대항 경기를 시청할 때만 애국자가 된다. 양궁과 펜싱 강국 대한민국. 활을 잘 쏘고 검을 잘 찌르는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맞나? 고대의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시민의식을 고취시켰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리스의 시인들에게 스포츠는 무엇이었을까. 테베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핀다로스(기원전 518∼438)에게 운동경기는 세계를 품에 안는 기회였으리. 그의 작품 대다수는 올림피아 등 운동시합에서 우승한 승자들의 귀향을 축하하는 승리의 찬가이다. 시인이 노래가사만 아니라 작곡도 하고 가수들을 연습시켰다.

“다정한 고요의 여신, 정의의 따님, 국가를 키워내는 여신이여. 의회와 전장의 막강한 열쇠를 손에 든 여신이여! 퓌티아의 승자 아리스토메네스의 인사를 받으시라”로 시작하는 퓌티아 찬가 8번이 유명하다. 퓌티아 경기는 고대 그리스 4대 운동제전(올림피아, 퓌티아, 네메아, 이스트미아: 각각 올림피아, 델포이, 네메아, 코린트가 개최지)의 하나였다. 괴물 피톤을 죽이고 델포이에 신탁을 세운 아폴로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582년 델포이에서 시작된 퓌티아 경기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뒤에도 기원후 424년까지 1000년이나 지속되었다. 올림픽 다음으로 중요한 게임이었고, 올림픽이 열린 2년 뒤에 열렸다.

델포이의 경기에서는 운동만 아니라 시와 춤 등을 다투는 시합이 열렸고, 예술가들이 모여 솜씨를 겨뤘다. 시인만 아니라 비극배우, 화가들의 경합도 나중에 추가되었다. 올림픽과 달리 퓌티아 경기에서는 여성들도 참가가 가능했고 ‘헤라 게임’이라 불리는, 여성을 위한 축제가 따로 있었다. 6개월 전부터 준비가 시작돼 델포이 시민 9명이 그리스의 도시들에 파견, 경기가 시작됨을 알리며 ‘성스러운 휴전’을 선포했다. 델포이에 모일 시민과 운동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조치인데, 만일 어느 도시가 무력분쟁에 휘말리면 그 시민들은 경기 참가가 금지됐다.

자신을 후원하는 귀족에게 충실했던 그리스 시인들은 부와 명예를 누렸다. 스무 살의 핀다로스는 테살리아를 지배하는 가문의 청탁으로 최초의 승리의 찬가를 지었다. 후원자와의 돈독한 관계는 그의 앞길을 열어주어 여든 살까지 살며 그리스 전역에서(서쪽으로 시칠리아, 동으로 소아시아의 해안, 북쪽에 마케도니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의뢰받았다.

아르고스에서 죽은 뒤 그의 유해는 고향 테베로 옮겨졌다. 아폴로 신전을 지키는 사제들은 매일 저녁 사원의 문을 닫으며 시인 핀다로스를 축복하는 말을 읊조렸다. 핀다로스의 집은 테베의 랜드마크였고, 훗날 테베를 파괴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핀다로스의 집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다니, 축복받은 시인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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