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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영국 마스크 벗는 '자유의 날'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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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자 급증…인력난에 슈퍼마켓부터 공공 서비스까지 차질

마스크·백신 관계없이 밀접접촉하면 자가격리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에 마스크를 벗는 '자유의 날'이 왔지만, 오히려 자가격리 대상이 돼서 돌아다닐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19일(현지시간)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을 포함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규제를 대부분 풀었다.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했는데 영국 정부는 이런 날을 만들어냈다. 만들어냈다고 한 것은 이렇게 정부가 방역을 내려놓고 민간 자율에 맡기기에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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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안 쓰고 기차에서 내리는 승객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 정부는 당초 6월 21일에 규제를 풀 예정이었지만 델타 변이가 퍼지면서 4주 연기해야 했고, 그 이후에도 확진자가 하루 수만 명으로 늘면서 영국 안팎에서 경고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데는 '자유'를 외치는 보수당과 보수언론 등의 압박뿐 아니라 고용유지 지원 등에 재정 투입을 계속하기 어려운 처지가 함께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의 방역규제 해제 주요 근거는 백신 접종률이다. 현재 2차 접종 완료 비율이 약 70%이고 미접종자는 주로 건강한 20∼30대이다.

그러나 백신 효과를 믿고 추이를 지켜보기 전에 당장 자가격리 문제부터 풀어야 할 상황이다.

영국은 확진자가 하루 5만 명 안팎에 달하다 보니 확진자 접촉에 따른 자가격리자도 너무 많아졌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만 이달 둘째 주간(8∼14일) 자가격리자가 총 140만 명으로 전주보다 20% 증가했다.

이 기간 자가격리를 시작한 인원은 확진자는 25만9천265명으로 33% 증가했고, NHS 앱으로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경우가 60만7천 명으로 17% 늘었다. 이에 더해 NHS 테스트 앤드 트레이스 팀이 파악한 밀접 접촉자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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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재무장관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각료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방역 정책 일선에 있는 사지드 자비드 보건 장관이 '자유의 날' 직전에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와 접촉한 보리스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재무장관도 격리 중에 '자유의 날'을 맞았다.

자가격리자 급증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NHS 앱으로 대상자를 분류해 통보하는 시스템이다.

NHS 앱은 블루투스 기록을 토대로 확진자와 2m 이내서 15분 이상 있던 것으로 파악되면 알람(ping)을 보낸다. 이때 마스크 착용이나 백신 접종 여부는 고려 요인이 아니다.

앱으로 통보받은 경우엔 어디서 누구와 접촉해서 격리하게 됐는지 알기 어렵다. 날짜를 따져 대강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이 너무 민감하다거나 확진자와 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는데도 대상자로 지정됐다거나 하는 등의 불만이 비등하고, 일부는 아예 앱을 지우기도 한다.

존슨 총리 등이 자가격리 대신 매일 검사를 하는 시범사업에 참여한다고 주장하며 격리를 안 하려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신속히 계획을 뒤집어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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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 앱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자가격리자 급증은 여론만 달래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이제는 사회 곳곳에 인력 부족에 따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트럭 기사가 없어서 생필품 유통에 차질이 생기고 슈퍼마켓 진열대가 빌 것이란 우려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쓰레기 수거가 지연되고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유명 뮤지컬 제작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신작 '신데렐라'는 스태프가 자가격리에 들어가며 개막을 미루게 됐다.

정부는 백신 2회 접종자라도 8월 16일이 돼야 밀접접촉 시 자가격리를 면제한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그전에는 소수의 필수 인력만 면제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아무래도 자가격리까지 바로 풀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규제를 풀고 경제활동을 허용할 때 굳이 실내 마스크까지 벗을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영국의 선택은 마스크를 벗고 자가격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이나 윔블던 테니스 대회 때 실외에서 관람하는 팬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했으면 확진자가 조금이라도 적었을 것 같지만 역시 이는 영국의 옵션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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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0 결승전에 웸블리 밖에 모인 팬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존슨 총리의 코로나19 방역 도박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백신 효과에 힘입어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다시 마스크를 쓰게 될지, 영국이 앞장서 실험 중이다. 자가격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도 주목된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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