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北 한류·마약 실태 어느 정도길래
북한 김정은이 2018년 4월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한국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우리 출연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 내 한류 확산의 일등공신은 김정일과 김정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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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달 초 마약 범죄 특별법을 신설했다. 작년 12월에는 한류(韓流) 처벌을 강화하는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도 제정했다. 처벌법을 새로 만들어야 할 만큼 마약과 한류가 북한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약과 한류는 대량 아사로 북 체제 근본이 흔들렸던 ‘고난의 행군’ 시대에 본격 확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약은 1990년대 외화벌이용으로 북 정권이 제조하던 것이 민간으로 퍼졌다. 한류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 조선족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유입됐다.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 “북 주민 30% 이상, 마약 상용할 것”
김일성 지시로 북 정권은 청진과 함흥에서 마약 공장을 운영했다. 중국 등 눈치를 보느라 밀수출을 줄이는 사이 제조 기술이 북 전역으로 퍼졌다. 북에는 약이 부족하다. 마약이 복통·치통·신경통·부인병 등을 다스리는 만병통치약이 됐다. 지금은 잠을 쫓고, 뇌졸중을 예방하고, 미용과 신체 능력을 높이는 데도 쓰인다고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손을 댄다. 북 전문가인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필로폰은 북 내부에서 ‘레드불(에너지 음료)’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내는 약품”이라고 했다. 마약 단속을 하던 탈북 검사는 “북 주민의 30% 이상이 아편과 빙두(얼음·필로폰) 등 마약을 상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유통 마약의 70% 이상을 생산한다는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사용자도 3%대로 추정된다. 그는 “일곱살짜리가 마약 하는 것도 봤다”고 했다. 구하기 쉽고 투약에 거부감도 적으니 생일·명절 선물과 승진용 뇌물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마약 관련 범죄가 계속 늘고 있다. 탈북 검사는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몇 년 전 14~17세를 수감하는 소년교화소를 늘려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TV아사히에 보도된 북한 주민의 마약 흡입 모습. 왼쪽 위는 김일성 사진이 담긴 5000원권 지폐로 대롱을 만들고 있고, 오른쪽 위는 연기를 흡입하고 있는 장면이다. |
◇ ‘코로나 방학’에 한류 빠진 북 청년 세대
북한 청소년들은 바쁘다. 온갖 집회와 노동력 동원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장기 방학에 들어가면서 ‘시간’이 생겼다. 이동이 통제되니 집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기 딱 좋다. 과거엔 CD나 DVD로 봤지만 지금은 손톱만 한 SD카드를 휴대전화에 꽂아서 보니 단속에 걸릴 위험도 적다. 작년 초 한국에서 방영된 북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세대를 불문하고 인기였다. 한국 어떤 배우가 북한 사투리를 잘 쓰는지 품평도 하고, 실물과 거의 같은 북 가정집과 골목·열차 등을 보고 감탄도 했다. 전에 없던 재미다. 20대 탈북민은 “북에선 ‘조국을 사랑하자’ 말고는 가족끼리도 사랑이란 말을 잘 안 쓰는데 한국 드라마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퍼지게 했다”고 전했다. 애인에게 ‘자기야’라는 문자도 보낸다. 생일 밤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비는 젊은이들도 생겨났다. 한류는 세련됐고, 북 선전물은 촌스럽다고 여긴다.
90년대는 ‘장군의 아들’ 같은 액션물, 2000년대는 ‘대장금’ 같은 사극이 유행했다.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됐다. 이후 ‘천국의 계단’ 같은 애정물을 보며 서울 말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1박2일’에 나오는 연예인의 말투와 동작까지 따라 한다고 한다. 노동신문이 최근 ‘평양 문화어’ 사용을 강조한 건 그만큼 한국 말 침투가 심각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인(美人) 기준도 둥근 얼굴에서 갸름한 쪽으로 바뀌고, 남자도 나긋나긋할수록 더 인기를 끈다. 김정일 사망일에 모여 추모 대신 한국 아이돌 춤을 추는 MZ 세대까지 있다고 한다.
한류가 북한까지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한류의 확산은 북한 곳곳에서 열리는 장마당이 한몫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북 한류 일등공신은 김정일과 김정은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을 모면하려고 어쩔 수 없이 주민 이동과 시장 통제를 풀었다. 북·중 국경을 넘은 한류 CD가 날개 단 듯 내부로 확산했다. 영화광인 김정일부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빠졌다. 김연자·나훈아·조용필 등 한국 가수 노래도 줄줄이 뀄다. 김정일 애창곡인 ‘사랑의 미로’를 평양 간부들이 앞다퉈 불렀다. ‘가택 검열’을 받지 않는 간부 자녀부터 밤새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랐다. 3일 밤을 새우다 보면 눈 주위가 너구리처럼 변했다. 2009년 3세 세습을 앞두고 한류 유통 사범을 사형까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 미키마우스가 나오는 북 공연을 봤다. 2018년 평창에 북 공연단을 보내 ‘J에게’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을 부르게 했다. 그해 평양을 방문한 한국 걸 그룹 멤버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래 놓고 최근엔 K팝을 ‘악성 암’으로 규정하고 엄벌을 공언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 ‘반동 배격법’으로 사형까지 처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한류, 마약 ‘삼각 파도’가 체제 위협
고위 탈북민은 “북 정권은 마약과 한류가 주민의 몸과 마음을 망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북 정권은 문화가 가진 선동·선동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주민들이 한류를 자꾸 보고, 듣고, 나누면서 북 체제 모순을 공유할 수 있다. 한국처럼 살아봤으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면 불만은 더 커진다. 여기에 자유를 알게 되면 용기와 배짱이 생긴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북 정권은 노예나 다름없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시민’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특히 배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MZ 세대는 당 통제가 잘 먹히지 않는다. 이를 두려워하는 북 선전 기관들은 최근 “청년 세대의 사상적 변질이 사회주의를 무너뜨린다”고 경고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2030 세대의 ‘인간 개조’까지 거론했다.
북한 내 한류 확산 |
얼마 전 쿠바에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일어나 사망자가 속출했다. 코로나로 주수입원인 관광업이 몰락하면서 주민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미 오바마 대통령이 열어준 경제 제재의 문을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닫으면서 체감 고통은 더 커졌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덮친 것이다.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기존 대북 제재에 김정은의 비이성적 코로나 통제가 겹치면서 아사자가 나왔다는 소문까지 돈다. 25년 전 고난의 행군 때와 달리 북 주민들은 한류를 통해 외부 세계를 알고 있다. 마약은 가뜩이나 취약한 북한 사회를 좀먹고 있다. 코로나와 한류, 마약이란 ‘삼각 파도’를 김정은 체제는 어떻게 넘을까.
[北선 ’19금' 영화보다 걸리면 가중처벌]
유통한 사람은 사형까지 당해… 金 부자 초상화에 피 튀는 장면, 기쁨조 나오는 드라마도 엄벌
한류 중에도 걸리면 가중 처벌되는 작품과 장르가 있다고 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쉬리’,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 등이다. 북은 JSA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에 피가 튀는 장면, 쉬리에서 북 정예 요원이 ‘조국’이 아니라 한국 요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진달래꽃은 기쁨조가 나오는 게 문제라고 한다. ‘장군의 아들’은 김일성 욕하는 장면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됐다. 반면 정치색이 옅은 사극은 처벌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한다.
북 주민들이 충격을 받고 빠져드는 장르 중 하나가 ’19금' 영상물이다. 한 탈북민은 “키스 장면도 거의 안 나오는 북한 영화만 보다가 적나라한 장면을 접하면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했다.
여러 커플이 함께 숨어 ’19금'을 보기도 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통제하는 사회에서 첫 일탈을 경험한 셈이다.
성인물은 장마당에서 일반 영화나 드라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그러나 적발되면 ‘반(反)사회주의 행위자’로 몰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유통 사범은 사형까지 당한다.
동경과 오해도 있다. 한국 놀이동산은 천국처럼 보인다. 한국 여배우 피부를 보고 감탄한다는 경우도 많다. 30대 탈북민은 “해외 신혼여행 가는 장면이 가장 부러웠다”고 했다. 백혈병에 걸려 갑자기 죽는 사람이 많고,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바꿔 입는 줄 알았다는 탈북민 조사도 있다. 한국 코미디나 개그물은 북에서 별 인기가 없다. 사람들이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처럼 등장인물이 고생하는 프로그램도 즐겨 보지 않는다고 한다. 북에서 사는 것이 정글보다 더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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