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만난 야권 인사 “반드시 출마한다 단언은 못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8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최 원장이 대선에 어떤 방식으로 뛰어들 것인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사퇴 발표만 했을 뿐 대선 출마에 대해선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만 했다. 정치적 역할을 고민하되 아직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초 야권에선 최 전 원장이 7월 중순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얼마 후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조기 입당’ 을 통해 국민의힘 내부의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윤석열의 대항마로 확실히 자리를 굳히려 할 것이란 의미였다. 국민의힘 입당을 미루고 있는 윤 전 총장과도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들어오지 않거나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경우, 최 원장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2주일 사이에 최 전 원장이 고민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 전 원장과 가까운 야권 핵심 인사는 최근 최 전 원장과 만나 대선 출마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전만 해도 대선 출마 의지를 강하게 보였던 최 전 원장이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며 다소 유보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 야권 인사는 “최 전 원장이 반드시 출마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고 했다. 최 전 원장은 주변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감사원장이 왜 갑자기 대선 출마하려고 하느냐” “대선에 나가면 이전까지 소신껏 해왔던 탈원전 감사가 오히려 정당성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 전 원장은 당초 문재인 정부의 법치 훼손과 민주주의 파괴 행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소명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헌법상 임기를 마치기 전에 사퇴하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개인의 정치적 욕심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인과 가족들의 우려에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원장과 가까운 인사는 “1~2주 전만 해도 최 전 원장은 거의 100%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힌 상태였지만 최근엔 꼭 출마하지 않고도 야권의 대선 승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최 전 원장이 선택할 가장 유력한 방안은 직접 대선에 출마해 정권 교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안으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를 지원하는 ‘대선 도우미’ 역할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원장이 당초 감사원장에서 물러나 정치를 하려는 이유가 권력을 잡는 것보다 부당한 권력 행사, 특히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 여권이 차기 대선에서 다시 권력을 잡을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무너질 거라는 위기감을 느껴 정치권 진출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이 주목받기 전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이 기대하는 최적의 카드였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 체제가 뜬 이후 윤 전 총장 측 기류가 조기 입당에서 독자 세력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동훈 전 대변인이 입당을 전제로 윤 전 총장의 향후 대선 일정을 얘기했다가 사퇴하면서 이는 윤 전 총장의 공식적 입장처럼 돼 버렸다. 조기 입당은 당분간 배제하고 독자 세력화를 먼저 시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런 틈새에서 야권이 찾아낸 카드가 바로 최 전 원장이다.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과 비슷한 점도 많지만 체질적으로 다른 점도 많다. 문재인 정부의 압박과 공세를 뚫고 자신이 해왔던 수사·감사를 소신있게 밀어붙이고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에선 너무도 닮았다. 윤 전 총장은 조국, 울산 시장 선거,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을 정권과 맞서 수사했다. 최 원장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감사, 감사위원 인선 등에서 소신을 관철시켰다. 다만 윤 전 총장이 저돌적 파이터 스타일로 정권과 정면 충돌했다면, 최 전 원장은 큰 잡음을 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정권 비위를 파헤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 전 원장과 윤 전 총장은 야권 내 지지층도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야권내 충청 출신과 친이계의 지원을 받는 반면 최 전 원장은 친박계와 부산·울산·경남 지역, 개헌파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과 달리 박근혜 정부 적폐수사와 같은 구원(舊怨)이 없다. 또 출생지가 경남 진해라 이른바 ‘PK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개헌파 인사들은 최 전 원장에게 정치적 세력 기반을 조성해 주는 대신 분권형 개헌을 추진해 주길 바라고 있다. 최 전 원장이 윤 전 총장에 앞서 국민의힘 입당 카드를 던질 경우, 이들을 중심으로 당내 지지세력이 뭉칠 수 있다. 현재로선 윤 전 총장이 대세론을 점하고 있지만, 최 전 원장이 먼저 입당하면 국민의힘 당원과 열성 지지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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