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몽유와 파업지도자 칸 웨이 표 “체포·고문보다 군부독재가 더 무섭다”
지난 4월 몽유와 파업위원회 지도자 이른바 ‘판다’라고 불리던 웨이 모 나잉이 체포되고, 그 뒤를 이어 몽유와의 지도자로 추대된 칸 웨이 표(26). 그는 현재 몽유와 파업위원회를 이끌고 하루도 안 빠지고 몽유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판다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현재 만달레이 시위를 이끌고 있는 타자르 산(32)에 이어 군부 수배 2순위로 지목됐다. 그에게 현재 미얀마 시위상황과 고문·체포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미얀마 몽유와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칸 웨이 표 / 다큐앤드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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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와 시위상황은 어떤가요.
“몽유와의 경우, 매일 시위에 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복을 입은 군경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특히 대학생들과 협력해 매일 시위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치거나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보다 젊은 사람들의 미래가 없어지는 것, 군부독재 하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체포되거나 목숨에 위협을 느껴도 거리로 나가고 있습니다.”
-사가잉주에서 100명 이상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가잉주에서 그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몽유와 타운십에서는 시위 중에 부상을 당해 사망한 사람이 30명 가까이 됩니다. 지금까지 통계로는 몽유와 타운십에만 체포 및 소송당한 사람이 170명 정도 됩니다.”
-웨이 모 나잉 체포 이후에 들은 소식이 있나요.
“웨이 모 나잉은 현재 몽유와 감옥에 있습니다. 형법 제505조 a항에 따라 기소한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국영방송 먀와디에 따르면 국가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대상으로 한 형법 제124조에 따라 기소하는 것으로 공포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형법 제124조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폭동을 유도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그 외 웨이 모 나잉과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경찰 2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형법 제302조 살인죄로 기소했다고 들었습니다.”
-웨이 모 나잉의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고문을 당한 건가요.
“처음 체포됐을 때 다쳤고, 고문실에서 고문도 당했는데 지금은 상태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올 때는 건강상태도 괜찮다고 웨이 모 나잉의 어머니와 변호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MRTV에 웨이 모 나잉 얼굴이 상처투성이로 나왔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군부는 젊은 사람들을 체포할 때 바로 기소하거나 감옥에 보내지 않고 먼저 신체적으로 심하게 고문합니다. 학생회에 소속된 친구들, 시위대 주도자들 같은 경우 더욱 심합니다. 몽유와 시인 켓 띠의 경우 고문실에서 고문당하다 사망했습니다. 이는 시위대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고문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습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고, 고문실에서 목숨을 잃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포, 고문 등은 시위대에 참여한 젊은이들 시위대 리더들이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몽유와의 청년들이 같이 시위하고, 이야기했던 웨이 모 나잉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웨이 모 나잉과 함께 청년단체도 만들었고, 함께 9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쿠데타 저항의 상징이자 동료로서 웨이 모 나잉의 모습을 봤을 때 많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리더를 그런 모습으로 보게 돼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웨이 모 나잉의 ‘누가 체포되든 이 항쟁을 앞으로 계속해 나간다’라는 말을 따라 항쟁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웨이 모 나잉이 잡혀간 뒤로 어떻게 몽유와 시위대의 리더가 됐나요.
“우리는 군부독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난 2월 7일쯤 군부독재를 반대하는 젊은 세력들, 이 저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협회에서는 비상시 역할을 정해뒀습니다. 웨이 모 나잉이 체포되고 잠시 좌절했지만, 나머지 회원들은 조직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항쟁은 계속된다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몽유와 지역 시위 중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Docu and news Korea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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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몇달 만에 조직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젊은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민주적인 시절을 보내왔는데 나라가 갑자기 퇴보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군부가 나라를 통치하면 여러 면에서 뒤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시대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는 1988년에 벌어졌던 일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군부가 아무리 탄압하더라도 체계적으로 저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몽유와뿐 아니라 양곤, 만달레이 등의 대도시 대표민족이 사는 산악지역의 젊은이들까지 협력해 저항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반목을 풀 수 있었습니까.
“쿠데타가 일어난 뒤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수십년 동안 소수민족에 자행했던 만행을 버마 중심지역에서 똑같이 하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마음이 되고 나서 그동안의 민족 간의 분열, 불만 등을 반성하고 지금은 서로 협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역사를 반성하고 서로 협력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미얀마 전체에서 반독재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체포나 고문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체포, 고문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6~7월에 반독재 세력들이 거리에 나가지 못하도록 작전을 짜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몽유와 인근 지역 시위대의 젊은 지도자인 만자메모도 총에 맞아 체포됐습니다. 양곤 같은 대도시에는 사복을 입은 군경이 체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문실 상황도 전보다 악화됐습니다. 예전에는 체포된 사람들을 형법 제505조 제1항으로만 기소를 하다가 지금은 평화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조작된 사건과 엮어 체포하고, 증거사진 만들고 기소하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수배된 상태인가요.
“네. 몽유와 시위대의 웨이 모 나잉에 이어 2번째 지도자로 수배된 상황입니다. 사가잉주 쉐보, 홈믈링, 더세 등의 도시에는 수배 사진을 붙여놓았습니다. 특히 병원 앞에서 붙여놓고 발견되는 즉시 제보할 것, 숨겨주는 집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글들을 써 놓은 걸 봤습니다.”
-한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미얀마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론을 통해 한국민, 그리고 전 세계에서 미얀마의 상황을 알 수 있길 바랍니다. 미얀마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들이 국내에 반쿠데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미 다큐앤드뉴스 대표기자 youngmekim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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