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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동맹한다던 文, 47조 시장 폴란드·체코 왜 안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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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 원전 시장 폴란드에 무관심, 오스트리아 스페인 선택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참석 이후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방문했다. 오스트리아와는 수교 129년을 맞은 국빈 방문이었고, 스페인은 2019년 펠리페 6세 국왕 방한에 대한 답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나라와 논의할 뚜렷한 현안은 없었다. 그래서 왜 두 나라를 방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공식 외교 행사 외에는 박물관과 식물원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 많았다.

조선일보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및 오스트리아, 스페인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11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올라 환송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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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에선 유럽 국가 중 문 대통령이 가장 시급하게 방문했어야 하는 나라는 폴란드와 체코라는 얘기가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17일 조선일보 데일리 팟캐스트 모닝라이브에 출연, “폴란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40조원에 달하는 원전을 발주할 계획이고, 곧이어 체코에서도 7조원 대의 원전 시장이 열린다”면서 “지금 문 대통령이 두 나라를 방문했다면 우리 원전을 홍보하고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리스트에서 두 나라는 빠졌다. 원전 수출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아쉽게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원전 동맹을 선언했다. 두 나라가 손잡고 기술 개발을 해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원전 수출 시장에 공동 진출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이번 유럽 순방이 가장 핫(hot)한 원전 시장을 돌아볼 좋은 기회였다. 원전 업계에선 이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신 센터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 원전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했지만 최근 중국의 공세적 외교 행태 때문에 유럽에서 반중(反中) 정서가 엄청나게 커졌다”면서 “그래서 원전 입찰도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 간의 공개 경쟁 구도로 바뀌었고, 지금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네 나라가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더구나 한미가 원전 동맹을 맺기로 했기 때문에 미국과 손잡고 공략하면 폴란드와 체코 원전 시장을 잡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 폴란드는 냉전 체제 붕괴 이후 외교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폴란드는 러시아 등의 안보적 위협에 맞서 미국과 손잡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유럽 지역 최대 지부도 폴란드에 있다. 원전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폴란드 원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던 것이다.

문 대통령과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국과 뉴욕에서 두 번 정상회담을 했다. 두다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 때 직접 방한했었다. 신 센터장은 “폴란드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에게 폴란드를 방문해 달라는 초청까지 했다”면서 “이번에 폴란드를 방문했으면 40조원대 원전 수출을 따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폴란드와 체코 시장을 잡는다면 사우디 원전까지 총 100조원대 원전 시장에 진출하는데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원전 세일즈도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라 산업부 차관과 한수원이 나섰다. 그만큼 원전 세일즈 외교에 무관심했다는 얘기다.

폴란드와 체코는 중유럽의 핵심 국가인 비셰그라드 4국(V4)의 대표 국가다. V4에는 자동차와 전자 등 우리 주요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고,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이기도 하다. 중유럽과 한국의 경제·무역 규모가 서유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V4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관심도는 높지 않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는 길에 체코를 잠시 들렀다. 처음엔 ‘원전 세일즈’를 위해 방문한다고 했다가 “원전은 의제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더니 “전용기 중간 급유 때문”이라고 했다. 체코 대통령 대신 총리를 만나더니 ‘정상회담’이 아니라 ‘면담’이라고 했다. 체코의 국가명도 26년 전 이름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이러고서 무슨 원전 수출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적으로 탈원전을 외치면서 대외적으로는 원전 수출을 하겠다고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국내에선 원전이 위험하니 없애겠다고 하면서 외국에 수출하겠다고 하면 누가 우리 원전을 수입하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원전 수출은 말뿐이고 문 대통령이 원전 수출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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