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정상회담] 북한 핵문제 여전한 입장차
‘아시아계 증오범죄 방지법’ 서명한 바이든 - 조 바이든(앞줄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시아계 증오범죄 방지 법안에 서명한 뒤 사용한 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늘어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를 줄이기 위해 지난 3월 발의돼 상·하원을 통과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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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인 미·북 싱가포르 합의뿐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까지 포함되는 것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트럼프 지우기’에 열심인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해 트럼프 정부 시절 남·북·미 간에 맺어진 주요 합의들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멈춰선 미·북, 남북 대화 재가동의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를 유도하는 등 경색된 남북 관계에 돌파구를 열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측은 우리 측이 대북 유인책으로 기대해 온 대북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 조기 미·북 정상회담 등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측이 주로 강조한 것은 제재의 철저한 이행과 한·미·일 3각 공조 복원의 중요성이었다”며 “현재 미국의 손엔 당근은 안 보이고 채찍만 보이는 상태”라고 했다. 이 같은 미측의 기류는 회담을 앞두고 전해진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됐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 직전 브리핑에서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그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의제 중 최고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호했던 하향식(톱다운) 대북 협상보다는 상향식(보텀업) 실무 협상에 무게를 둔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워싱턴 현지에서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이날 미국 PBS 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만나도록 독려하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아직은 최고 지도자들이 만날 때는 아니다”라며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기 전에 더 많은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고위 관리는 취재진에게 “(북한과의) 대화를 촉진시키겠다는 기대감으로 종전선언과 같은 특정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등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검토해온 아이디어들이 미국의 국익과는 배치된다는 것이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 지난 19일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되며 유엔과 북한 주변국들과의 외교를 통해 제재를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동성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 합의와 관련한 표현을 놓고도 양측 간에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됐다.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는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측은 ‘존중’에 방점을 찍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부터 2018년 싱가포르 합의까지 과거 정부 대북 정책들의 공과를 따져 새 대북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이지, 싱가포르 합의만 콕 집어 이어받겠다는 뜻은 아니란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하는 등 미측에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거듭 요구해왔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이 동맹 배려 차원에서 립서비스해 준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다.
다만 코로나 방역 지원을 비롯한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 협력에 대해선 미측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1일 한 학술회의 축사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인도적 협력 분야부터 제재의 유연화가 논의되면서 남북 관계 복원과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아주 좋은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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