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절반 넘는 영남 표심 잡기, 단일화가 관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70,80년대 생 초선 당권주자들의 최근 행보가 거침 없다. 중진들에게 눌리기는커녕 기지 넘치는 설전을 벌이고 맞짱 한번 뜨자고 고개를 내민다. 중진들이 오히려 기세에 눌려 한발 뺄 정도다. 3~4명이 동시 다발적으로 치고 나오니 국민이나 당원들 시선까지 쏠리고 있다.
초선 그룹의 선두 주자는 김웅과 김은혜 의원이다. 서울·수도권 출신인 두 사람은 당의 세대교체를 외치고 있다. 김웅 의원은 홍준표 의원과 설전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홍 의원은 김 의원이 자신의 복당에 반대하자 “온실에서 억지로 핀 꽃은 밖으로 나오면 바로 시든다”고 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저는 매화처럼 살겠다. 홍 의원은 시들지 않는 조화로 사시라”고 반격했다. 홍 의원은 “어처구니가 없어 더 이상 논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80년대 출생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욱일승천의 기세다. 그는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못 간다”고 하자 “팔공산만 오르시면서 왜 더 험한 곳은 지향하지 못했느냐”고 맞받아쳤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1,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임차인입니다’는 국회 연설과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정책 논쟁으로 유명해진 윤희숙 의원도 출마 가능성이 있다.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하고 있지만 본인은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가 출마 결심을 한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70,80년대 생 신진들은 대부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가깝다. 그래서 ‘김종인 키즈'로도 불린다.
국민의힘 초선과 70,80년대 생 신진 그룹이 초반부터 이처럼 기세 좋게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대선주자나 당권주자가 없는 국민의힘 내부 사정 때문이다. 이른바 ‘주인없는 정당’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다.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 때였다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이·친박 등 주도세력이 확고했다. 초선들이 출마는 고사하고 함부로 발언하기도 힘들었다. 또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의 체질 때문에 초선에겐 주로 경청하고 배우는 자세가 강조됐다. 하지만 당내 주도세력이 사라지고, 초선의 비율이 절반을 넘으면서 초선들에게 정치적 자유와 활동 공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민주당 초선들보다 국민의힘 초선들이 더 기가 세고 개성이 강한 것처럼 비쳐진다. 과거 여권에선 ‘열린우리당 108번뇌’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초선들이 통제불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의 위세에 눌려 자기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 4·7 보궐선거 패배 후 초선들이 반성문을 쓰며 쇄신을 외쳤지만 친문 지지층의 공세에 밀려 3일만에 후퇴했다.
기세등등한 국민의힘 초선 당권주자들에게도 아킬레스 건은 있다. 바로 야당의 핵심인 50,60대 영남 당원들의 표심이다. 당대표 선거는 당원 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로 치러진다.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는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전체 당원의 60% 가량은 영남이다. 그 중에서도 50대와 60대 이상이 압도적이다. 이들의 표심은 일반 국민의 표심과 다르다. 보수 성향이 짙고 초선보다는 중진들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가 높다. 초선들이 설령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한다고 해도 이들 ’5060 영남 당원'에서 밀리면 승리는 힘들어 진다. 5060 영남 당원들이 초선 그룹에겐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될 수 있다.
2019년 당대표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여론조사에선 황교안 전 대표에게 앞섰지만 당원 투표에서 밀려 고배를 마신 게 대표적이다. 당내에선 “초선들이 초반 선전에 취해 있다간 큰 코 다칠 것” “말뿐이 아니라 자기 실력과 비전을 보여서 영남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가 7대 3인 경선룰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중진 그룹이 반대하고 있는 데다 전국위원회 소집도 쉽지 않다. 경선룰 개정은 힘들다는 얘기다.
초선 그룹 간 단일화도 중요하다. 초선 혼자 힘으론 조직력이 강한 중진 후보들을 이기는 게 쉽지 않다. 따라서 후보단일화 이벤트를 통해 ‘초선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다만 본선에 올라갈 4명 후보를 컷오프할 때까진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컷오프 후 초선 그룹이 2명 이상 살아남으면 그 때 본격적인 단일화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초선이 단일대오로 뭉쳐져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초선들의 조직화된 모임이 없고 지역·계파별로 쪼개져 있다. 그래서 초선이란 이름으로 결집하기 보다는 기존 계파나 지역에 따라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경험이 부족한 초선 그룹이 과연 대선 정국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당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연대를 이끌어내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합당도 매듭지어야 한다. 길고 어려운 후보 단일화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상당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해내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당 중진 그룹에선 “초선 바람은 결국 찻잔속에 그칠 것”이라며 “중진 그룹이 당을 이끌어 가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은 “무조건 야권 통합하자고 해서 통합되는 게 아니라 우리 당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야 가능하다”며 “초선 대표가 그걸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배성규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