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향후 당내 기반을 공고히 하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이재명 경기지사와 전략적 제휴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지사도 대선 경선 국면에서 친문(親文)의 집중 견제를 피하고 당 지도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송 대표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 때까지 두 사람 간에 암묵적으로 ‘이·송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지사는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송 대표와 자주 연락을 취하며 당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송 대표는 당권 주자 가운데 친문이나 계파 색채가 가장 옅은 인물이고, 이 지사는 그동안 친문에게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왔다. 사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다.
친문 진영은 최근 당헌당규에 규정된 9월 대선 경선 일정을 뒤로 미루자는 주장을 펴왔다. 독자적 대선 후보가 없는 친문으로선 경선 일정을 최대한 늦춰 새로운 후보를 띄울 수 있는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당내 대선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는 최대한 빨리 경선을 치러 대선후보로 확정되길 바라고 있다. 실제로 홍영표 의원 등 친문 성향 후보들은 대선 후보들이 합의하면 대선 경선을 연말까지 미룰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송 대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경선 연기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와 송 대표는 러시아 백신 도입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냈다. 이 지사가 먼저 정부와 독자적으로 러시아 백신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이에 난색을 표하며 제동을 걸자 송 대표가 나섰다. 송 대표는 정부의 백신 도입 차질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러시아 백신을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했다. 사실상 이 지사 손을 들어준 것이다. 송 대표는 부동산 세금과 대출 규제 완화 등을 주장하며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웠다. 강성 친문들의 문자폭탄 공세에 대해서도 “과도하다. 당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이 지사도 과거 강성 친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대선 국면에서도 문재인 정부 정책과 차별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이른바 동병상련인 것이다. 그런 만큼 두 사람 간 암묵적 공조체제가 가동될 여지가 적지 않다.
송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언행일치 민주당을 만들겠다. 회초리를 내린 민심을 잘 수용해 변화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문 정부와 여권이 보여준 불공정하고 파렴치한 내로남불 행태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또 “당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 국민의 목소리가 당과 청와대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은 여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녔지만 앞으로는 그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면서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 발전을 위한 박 전 대통령의 헌신과 3·1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이 전 대통령을 기억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세월호만 챙기고 제복 입으신 분들은 너무 소홀히 한다고 얘기를 아들에게 들었다”고도 했다. 여권에서 금기시해 온 얘기를 쏟아내며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자 강성 친문들은 첫날부터 곧바로 송 대표와 아들을 비판하는 문자폭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송 대표가 차별화에 나서면 나설수록 그 반발 강도는 더 세질 것이다.
실제로 송 대표 혼자 힘으로 내로남불 친문당 체질을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송 대표의 득표율은 35%대로 2위인 홍영표 의원과 불과 0.59% 차이에 불과했다. 홍영표·우원식 의원 두 사람이 얻은 표를 합치면 65%에 달한다. 이번에 새로 뽑힌 최고위원 5명도 모두 친문 성향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강성 친문이다. 그런데 송 대표 홀로 친문의 견제를 뿌리치고 문 대통령에게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송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세금을 징벌적 수단으로 쓰는 건 부작용을 낳는다”면서 종합부동산세와 공시지가, 대출 규제 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자 종부세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물러섰다. 강성 친문들의 문자폭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가 취임 후엔 “그 분들 열정이 개혁 에너지로 승화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국 사태에 대해선 “지나간 일인데 논쟁 벌일 필요가 없다”고 했고, TBS교통방송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의 편파방송 논란에 대해선 “김어준 없는 아침이 두렵지 않느냐”고 옹호했다.
송 대표가 진짜 당을 바꾸는 힘을 가지려면 이 지사와 같은 강력한 우군이 필요하다. 당내 경선 지지율 35%만으론 어림도 없다. 이 지사와 손을 잡으면 그를 지지하는 수도권과 호남 의원들을 등에 업을 수 있다. 송 대표 입장에선 내년 대선까지 안정적으로 당을 이끌면서 청와대나 친문 진영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 이 지사도 당내 우군이 많지 않다. 지금 민주당은 현역의 3분의 2 가량이 친문이다. 친문이 언제든 이 지사의 행보에 제동을 걸면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만약 송 대표가 숨은 우군이 되어 준다면 대선 경선룰이나 경선 시기, 정책 공약 등 모든 면에서 병풍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친문 일색인 당에서 ‘친이재명’의 교두보를 굳건히 하고 당내 영향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친문에 둘러싸인 송 대표가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송 대표는 야당과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지만 윤호중 원내대표 측에서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지도부 내에선 김용민 최고위원이 문자폭탄과 정책 등 문제에서 송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송 대표가 당청관계와 대야(對野) 관계, 부동산·경제 정책 등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날이면 친문의 대대적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또 이번 당대표는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 대선 승리로 이끄는 게 가장 큰 책무다. 송 대표가 이 지사의 편에 선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등 다른 대선주자들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친문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이다. 송 대표의 정치적 활동 범위는 그만큼 좁을 것이고, 이 지사와의 제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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