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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감정작업만 2∼3개월… 삼성, 작품 운반차량도 직접 준비 [이건희 유산 사회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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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까지

2021년 초 ‘조건 없는’ 기증의사 전달

“발표 전까지 보안 유지” 단서만

작품 많아 전문단체 3곳서 감정

세계일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Le Bassin Aux Nympheas·1919∼1920)’. 모네가 지베르니의 자택에서 그린 수련 연작 250여 점 중에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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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깔끔했다.”

국립중앙박물관(중박) 관계자가 이건희 컬렉션 중 고미술품 2만1600여 점을 기증받는 과정에서 삼성 측의 태도를 평가하며 한 말이다. 기증에 따른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았고, 기증품 운반 차량까지 직접 준비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삼성 측에서 중박에 기증 의사를 처음 전달한 것은 올해 초라고 한다. 삼성문화재단 고위관계자를 통해서였다. 외부로 공표되진 않더라도 기증자는 독립 전시실 마련, 특별전 개최, 연구서 발간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번에는 전혀 없었다. 삼성 측이 요구한 단 한 가지는 “우리가 발표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삼성과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한 이후 한동안 중박은 관장, 학예연구실장, 유물관리부장 정도만이 이런 사실을 공유했다. 또 기증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진 후 언론의 문의가 빗발쳤지만 “아는 게 없다” 혹은 “공식적인 협의는 없었다” 등으로 ‘모르쇠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협의 과정에서 중박도 삼성에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일종의 거간을 자처한 문화재계 인사가 찾아와 “기증을 바라는 유물을 말해주면 삼성에 전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기증품을 선정하는 데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기증품 선정에 지나치게 관여해서) 국가가 삼성에 기증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국가기관인 중박이 삼성에 특정 유물을 간청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삼성이 정한 기증품을 정하고, 그 목록을 보낸 뒤에야 중박 직원들이 실사에 나섰다. 다만 “널리 알려진 유물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기증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판단은 전했다고 한다. 국보, 보물 60점이 포함된 전례없는 기증이 이루어진 것은 중박의 이런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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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사실은 28일 공표되었지만, 기증품이 중박 수장고로 운반이 시작된 건 지난 20일 즈음부터였다. 이런 일정은 운반 차량 섭외 어려움 등의 중박이 준비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삼성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은 이번 기증 업무 전반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맡겼다. 감정 작업은 ‘절대 발설하면 안 된다’는 보안각서를 쓴 전문가에 의해 이뤄졌다. 철저한 보안을 지키려 했으나 소문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감정 작업은 전문단체가 세 곳이나 나섰음에도 수장고를 전부 도는 데 두세 달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미술계 일부에선 이건희 컬렉션이 결국 쪼개져 기부되는 것에 “컬렉션 완성도가 훼손됐다”며 아쉬움도 나타낸다.

강구열·김예진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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