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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ER인사이드]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진짜 유산은 따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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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家) 유족들이 28일 고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내역과 사회환원계획을 공개했다. 재계의 관심은 막대한 양의 예술품 기증과 사회환원, 나아가 상속세 규모와 추후 삼성의 지배구조개선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이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진짜 유산은 따로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업인이 있었다'라는 경험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있어 커다란 울림을 안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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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 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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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것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감염병에 대응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7,0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여기서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나머지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이다.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서도 3,000억원을 기부한다. 유족들은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 및 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백혈병, 림프종 등 13종류의 소아암 환아 지원에 1,500억원, 크론병 등 14종류의 희귀질환 환아들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하고 향후 10년 동안 소아암 환아 1만2,000여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명 등 총 1만 7,000여명이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희귀질환 임상연구 및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유족들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막대한 예술품도 시민의 품에 안긴다.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건, 2만3,000여점이 국립기관 등에 기증된다는 설명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된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된다.

나아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도 일부 기증이 이뤄진다.

유족들은 사회환원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도 전개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관계사들이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사업 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방안을 추진해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창업이념을 실천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다"면서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규모만 12조원...지분 분할 계획은 '아직'

재계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은 약 22조~23조원 가량으로 추정한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과 미술품, 한남동 자택 및 용인 에버랜드 부지 등이다.

그 중에서 유족들은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의 상속세 세입 규모의 3~4배 수준에 달한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올해 4월부터 5년간 6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분납할 계획이다.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 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지분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4.1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88%, 삼성SDS 0.01%의 주식을 보유한 가운데 일단 단순 법정 상속비율을 적용하면 홍라희 여사가 33.333%를 가져가고 나머지 자녀들이 22.222%를 가져가지만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지분이 다소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는 중이다.

일단 26일 유족들이 금융당국에 고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분할하지 않고 공동 보유하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30일까지 지분 비율이 재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던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받고 나머지 유족들이 삼성생명 지분을 나눠가지거나, 혹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삼성 전제 경영권과 큰 관련이 없는 계열사 지분을 더 가져가는 방안도 제기된다. 물론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의 정점인 삼성생명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해지는 쪽으로 지분 비율이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별 주식상속 내역은 조만간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사항이라 상속세 납부 마감인 30일 이후에는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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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약한 기업가

고 이건희 회장의 유지에 따라 유족들이 공개한 사회환원계획은 그 규모와 범위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한 평생을 승부사로 살아온 경영인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인 선한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엄천난 액수를 자랑하는 예술품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최첨단 병원을 지원하고 아픈 아이들을 위한 손을 내민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 다 바꿔라!"고 일갈하던 무서운 기업가이면서도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인간적인 면모가 남달랐던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아이들에게 약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회장으로 막 취임한 직후 외부 인사들과 호텔신라에서 만찬을 가지던 중 창 밖을 보고 낙후된 집들을 발견, 지체없이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지어라"는 지시를 내린 일화도 있다. 삼성이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1990년 1월 1호 어린이집을 연 배경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이를 보고받자 아이처럼 웃으며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인은 어린이집 설립 후에도 5살, 6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다칠까 내부 가구에 "모서리가 각이 지면 안된다"며 꼼꼼하게 살피거나 직접 아이들 급식 칼로리 열량까지 세세하게 체크한 일화는 지금도 재계에서 회자되는 중이다.

이러한 고인의 의지와 철학이 유족들에게도 전해졌고, 지금에 이르러 소아암 등 희귀질환에 고통을 당하는 환아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업인이 있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사회환원은 냉철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평생을 싸웠던 한 기업가의 '좋은 일' 수준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고인의 뜻과 의지, 철학이 고스란히 유족들에게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이 입증됐으며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인이 향기로 우리 사회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기업가를 넘어 기업'인'이 남긴 진짜 유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평생 본인이 일궈낸 자산의 60%를 사회에 환원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남겼으며, 유족들은 그 유지를 충실히 계승하는 연결고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고 이건희 회장은 공과의 그림자가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기업'인'이 있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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