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2020년 1월 7일 신년사), "집값이 급등해 서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지역에 대해서는 과거 집값 수준으로 되돌리겠다"(2020년 1월 14일 기자간담회)며 ‘항전 의지’를 밝혀왔다. 대통령 이하 정부 부처와 여당까지 한마음 한 몸으로 나선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왜 완패로 끝맺음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고 인쇄된 마스크를 쓰고 참석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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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 문제없고 투기 수요가 원흉"… 진단부터 틀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25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은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75개 단지 99㎡(30평) 기준 평균 가격은 2017년 5월 6억 4000만원에서 지난 1월 11억 4000만원으로 5억원 올랐다. 이 기간 중 하락세·보합세를 보인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25번의 대책 중 대다수는 대출 제한으로 부동산 구매를 어렵게 하고, 주택 보유자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형태였다. ‘공급’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책은 6번, 24%에 불과했다. 부동산 정책을 기획하는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진단이 나와도 집값이 오르는 것이 투기의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하는 고집을 한동안 꺾지 않았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입각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8·2 대책부터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고 최근 3년간 서울의 인허가·착공·입주 물량도 평균보다 20~30% 많은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서울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키를 쥐고 있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역시 지난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시 부동산 공급은 충분하다"면서 "공급 측면은 (문제가) 아니다. (시장에서) 부동산으로 큰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 핵심들의 ‘공급은 문제가 아니다’는 진단 속에서 주택 공급량은 계속 줄었다. 전국의 주택 인허가 건수는 박근혜 정부 말이었던 2015·2016년 70만 가구를 넘겼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65만3441가구 ▲2018년 55만4136가구 ▲2019년 48만7975가구 ▲2020년 45만7514가구로 감소세를 이어갔다. 지난해의 인허가 물량은 2013년(44만116가구) 이후 최저치였다.
특히 안전진단 규제 강화, 조합 일몰제,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옥죄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선호되는 서울 내 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서울 인허가 물량은 5만 8181가구였는데, 11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로 지난 2017년 11만3131가구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난 2017년 12월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시행했다.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임대차 세원을 드러내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등록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세제 혜택은 소위 현금 부자들의 ‘부동산 쇼핑’을 부추겼고,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결국 지난해 7·10대책에서 2년 7개월만에 임대사업자 등록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고, 정부의 신뢰도는 크게 훼손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에 역점을 뒀지만,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정부에서 과거 정부에 비해 보다 많은 주택 공급을 늘렸고,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잘 차단하면 충분한 공급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책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여기에 그나마 문 대통령이 부동산 급등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한 투기가 청와대를 비롯한 공직사회를 비껴가지 못하기도 했다.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김 의원은 지난 2018년 재개발 지구였던 동작구 흑석뉴타운 9구역의 재개발 대상 건물을 25억 7000만원에 매입한 것이 드러났다. 매입 자금은 전세보증금까지 ‘영끌’한것에 16억원의 빚을 더해 마련했다. 당·정·청의 기조와 정 반대되는 행보였다.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공공 주택 공급의 집행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임직원들이 신도시 예정 부지에 대한 내부 정보를 활용해 사전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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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 "부동산 정치의 결과물. 공급부족 쉽게 해결 안돼"
부동산 학계에서는 과도한 규제와 공급 부족이 현재와 같은 ‘참사’를 야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시장의 수급요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투기’ 코드로 시장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면서 "부동산 정책의 선순위가 공급이 됐어야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규제가 선순위였고 공급이 끝 순위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부동산 관련 조세를 강화해 시장에 매물이 돌지 못하게 한 것이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면서 "주택은 필수재라 세금이 오른다고 안 살 수가 없는데 규제만 밀어붙이니 시장이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분양가 상한제로 민간 정비사업을 위축시킨 것이 공급대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규제 일변도였는데 규제는 시장을 못 이긴다"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반 정도 공급을 늘리지 않고 규제로 수요만 억제한 것이 지금은 물론 향후 3~4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결국 정치적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특히 다주택자들을 죄인 취급하며 세금을 올렸는데, 이를 통해 서민의 지지는 얻었겠지만,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했다.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겠다고 시행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도 결국은 집값을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투기 세력이 대출을 이용하니 대출을 줄이고, 강남 아파트로 돈을 벌었으니 강남을 때려잡아야 하며, 다주택자는 적폐니 보유세로 옥좨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부동산 문제에 접근한 결과"라며 "정부가 뒤늦게 서울 내 공급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고 했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뒤늦게 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공’ 주도 공급에 집착하는 터라 시장에서는 실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LH의 사전 땅 투기 의혹과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확인된 ‘부동산 민심’이 공공 주도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은형 연구원은 "LH 사태는 정부가 그동안 ‘투기 세력’으로 규정했던 다주택자, 편법증여, 비(非)실거주자 등 외에도 정책 집행의 핵심이었던 공공부문까지 투기·적폐의 온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라며 "LH가 주택 공급계획의 핵심 주체였다는 점에서 향후 공공 주도 공급 대책은 물론 규제정책의 신뢰도가 손상된 것"이라고 했다.
윤지해 연구원은 “4·7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간 주도 공급을 앞세워 온 만큼, 8·4대책이나 2·4대책 등 공공 주도 개발 사업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대책과 강남 아파트 평당시세 변동(단위:만원/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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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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