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
"저는 대학에 진학해 서울에 오기까지 지방 소도시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만나본 적도 없는 강사가 사랑한다느니 사귀자느니 하며 집요하게 수작을 부렸습니다. 아버지나 삼촌 또래의 남자였는데, 고등학생인 제게 이런 말을 하며 이것이 폭력이고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10만 원이 넘는 강의료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든 돈을 낸 만큼만이라도 강의를 듣고 마무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완곡하게 거절도 해보고, 신고하겠다고 강경하게 말도 해보고, 심지어 저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한 달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그 강사에게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말하지 못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피해를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해자가 버젓이 남아있는 SNS들이 있는데 온라인에서 긴 시간 저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짓말쟁이로 몰지 몰랐습니다. 뻔뻔하게 자기가 명예훼손을 당해 피해자라는 소송을 먼저 걸어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올봄 작은 지방 도시의 법원에서 있었던 민사소송의 당사자신문에서, 피고가 증인석에서 선서를 하고 진술했던 내용들을 요약한 것이다.
피고는 고등학생 미성년자 시절 입은 성희롱 피해에 대해 '미투(#MeToo)'를 한 후, 후폭풍이 거셌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름도 가해자의 이름도 익명으로 한 미투였지만 가해자는 단박에 자신임을 알았다. 그 직후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연락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겠다며 실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짧지 않은 시간 이어진 가해자의 각종 사과와 부탁 끝에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말한 답변은 단 하나였다. 연락하지 말아 달라, 연락처도 지워달라.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수년간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노출하며 피해자가 거짓 미투를 했다고 주장했다. 종래에는 자신이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으니 수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걸어왔다. 피해자는 어렸고, 가난했고, 싸움의 정보와 경험이 부족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연락처조차 지우기를 바랐던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의 마지막 연락 이후 더러운 기분에 화도 나서 SNS 대화방에서 나와버렸다. 가장 중요한 증거의 소멸. 피해자는 정작 성희롱을 넘어 온라인에서 실명과 신상정보가 공개된 채 '무고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반전은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가해자가 제3자와 벌인 소송에서 제출한 증거에 피해자와 나눈 SNS 대화 전문이 있었다. 피해자가 그 소송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소송이 2심 중에 있었는데, 피해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참고인으로나마 소명해볼 기회가 없이 조정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날려버렸던 피해의 기록인 가해자와 나눈 SNS대화 전문을 입수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피해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에서, 고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비용도 감당되지 않았다. 그렇게 억울하고 황당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명예훼손 피해를 감내하며 지내오던 어느 날, 고향 집에서 연락이 왔다.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장이 날라왔다는 전언이었다. 막막했다. 그 마음을 담아 글을 썼는데, 가해자에 대해 예의주시하던 동종업계 여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사법기관이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시간, 그러나 다행히 사회에는 지켜보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다툼을 맡아보면, 소위 말해서 단일하게 딱 떨어지는 사건은 거의 없다. 미성년자나 소위 을의 입장에 처해있는 피해자들이 처음 피해에 맞닥뜨린 후 종래에 어떤 식으로든 그 피해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존재한다. 대게의 피해자들은 더는 참기 어려운 수준의 가해가 발생하기까지는 가해자의 무례에 가능한 한 좋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이런 노력은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결국 극단의 가해가 이루어지거나 피해자가 결단하면서 파국을 맞는다. 문제는 피해자가 가해를 밀어내고 손해를 다툼에 있어 피해자들이 했던 노력이 이 해결을 어렵게 만들거나 더디게 만드는 일들이 많고 가해자들이 이런 것들을 살뜰히 악용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도 나이 어린 피해자가 수업을 계속 듣기 위해 거부의사를 표현하면서도 과감하게 단절하지 못한 것을 두고, 사귄 관계라며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는 궤변을 펼쳤다. 그러면서 사귄 근거가 온라인 강습 기간 동안 자주 SNS를 했는데 사귀는 관계도 아닌데 SNS 대화를 왜 나누냐고 했다. 방청을 온, 피해자를 위해 모금에 동참했던 여성들의 입에서 탄식 섞인 숨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순간들, 변호사의 입장이다 보니 여러 감정이 알록달록해진다. 재판은, 판결은, 다 끝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실관계가 중요하지만 그 사실관계가 현재의 법리와 어떻게 맞물려 들어 가느냐도 작동한다. 이런 속성 속에 만약 피고가 내 딸이나 조카라면 당해선 안 될 일을 잔뜩 겪고 이른 민사재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한 마음이 크고, 그러니 과거 SNS를 나누고 있던 당시의 피해자가 빨리 더 과격하고 과감하지 못했던 것이나 피해자가 명백한 사건에서 증거를 후루룩 지우고 고소 대신 온라인에서 게시 글을 올린 것이 안타까웠다. 화가 났겠지, 가해자를 혼내주고도 싶었겠지, 그래도 그러니까 오히려 고소를 먼저 했어야지,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당사자 신문의 주신문에도 넣지도 않았던 질문을 반대신문에서 물었다. 처음 폭로글을 쓴 이유 말이다.
피해자가, 피고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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