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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민주주의 희망은 ‘각성한 시민’…‘광주의 기억’ 넘어선 연대를 [김진호의 세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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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광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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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물축제(띤잔) 첫날인 지난 13일 만달레이 시내에서 열린 띤잔 퍼레이드 중 장미꽃을 든 여성이 저항의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미얀마 주민들은 띤잔 축제를 쿠데타 반대 시위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0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만달레이·광주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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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비롯된 뜨거운 관심…안도감 속 자선 베풀듯 하는 건 한계
민주정당에 몰표 준 미얀마인들의 앞선 시민의식…나눔도 한 수 위
‘우리의 과거’ 아닌 ‘그들의 미래’에 지속 가능한 연대의 손 내밀어야

미국은 명분을 좇고 있고, 중국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으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공허한 대화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략공간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던 러시아의 속내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과 함께 미얀마의 주요 이웃 국가인 인도는 뒤늦게 군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야말로 목소리만 높이는 상황이다. 고립무원. 민주화를 갈망하는 미얀마 민중이 처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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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70여일이 지난 13일 현재 군경에 714명이 살해됐고, 3054명이 구금 또는 판결을 받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717명은 도피 중이며 그중 일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미얀마 군부의 시민 학살을 기록하는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집계 결과다.

일부 외신은 미얀마가 내란으로 가고 있다면서 소수민족 반군과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있다고 진단하지만, 50만 병력의 땃마도(군부)에는 족탈불급이다.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혼란의 도가니로 흘러갈 가능성도 크지 않다. 현재로선 개연성이 높지 않은 가정이다. 그러는 사이 미얀마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과 원천봉쇄로 거리에 나서는 시위는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외신의 전언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민주화 시위와 마찬가지로 폭압과 언론통제 탓에 시나브로 잊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미얀마 현상’

외국의 민주화 시위와 군부 또는 권위주의 정부의 유혈진압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좀체로 오래 지속되지 못해왔다. 한동안 관심을 끌다가 희미해지거나 다른 이슈로 관심이 옮겨가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런데 2월1일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보이는 높은 관심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언론과 정부, 불교·개신교·가톨릭 등 범종교계 및 시민사회가 모두 예의 주시하며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거의 매일 미얀마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 나라의 언론매체보다 높은 관심이다. 대학가와 시민사회 일각의 관심을 끌었던 재작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물론, 개신교 일각에서 ‘이슬람 특혜 반대’ ‘할랄단지 조성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3년 전 예멘 난민들의 제주 상륙 때와도 확연히 구분되는 반응이다.

지난해 태국에서 번졌던 민주화 시위 당시의 반응과도 폭이 다르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미얀마 현상’은 그 자체가 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얀마는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언론매체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전해지는 유혈진압 장면을 보고 광주를 연상한다고 전한다. 기억은 기억을 되비친다. 한국에 거주하는 웨이 누에(35)는 고향인 미얀마 중부 낫먹(Natmouk)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본 영화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를 잊지 못한다. 1988년 8월8일부터 시작된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보기엔 어렸기에 유혈사태를 경험하지 못한 그가 본 영화 속 광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위대에 밥해주던 아주머니가 기억난다. 죽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싸우던 모습들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그는 이제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활동가로 ‘광주의 후예들’에게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적지 않은 미얀마 청년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인 듯하다. 민주주의 선도국이자 경제발전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K팝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한이 되고 싶었는데, 쿠데타 탓에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이 되고 있다”는 한탄이 미얀마 청년들 사이에 나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이 아닌 아시아 국가를 볼 때는 많은 경우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과 겹쳐 보인다. 그 익숙함이 자칫 굴절된 시선을 갖게 한다.

한국 사회가 광주를 회고하는 시각에는 필연적으로 ‘단절’에서 오는 안도감이 포함된다. 한국은 더 이상 군부독재 국가가 아니라는 안도감,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더라도 유혈진압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기왕 미얀마를 통해 한국을 돌아보려면 역으로 볼 것을 권한다. 그래야 미얀마도, 한국도 제대로 바라볼 시야가 확보되며,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의 우를 피해갈 수 있다. 민주화는 ‘각성한 시민’이 쟁취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렇다.

■미얀마가 본 한국, 한국이 본 미얀마

한국은 선거에서 드러난 민도(民度)에서 미얀마를 앞선 적이 거의 없다. 미얀마 쿠데타의 가장 큰 원인은 작년 11월 총선에서 배태됐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상·하원에서 476석을 얻었지만, 군부가 뒷배를 봐주는 통합연대발전당(USDP)은 56석에 그쳤다. NLD의 압승이 권력을 분점해온 군부를 움직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미얀마가 군부의 위협 속에 치른 선거에서 단호하게 민주정당을 지지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군사정부가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지만, 1988년 민주화 시위 2년 뒤 치른 총선에서 수지의 NLD에 75%의 표를 몰아주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뒤 처음 직선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한국의 USDP’ 격이던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가장 많은 득표율(36.64%)을 선사했다. ‘한국판 USDP’의 원조 격인 공화당 역시 직선으로 치른 대선에서 여당 지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미얀마의 시민의식이 한국보다 더 각성돼 있었고, 이번 쿠데타 이후 시위를 이어온 과정에서 보듯 여전히 각성돼 있다. 미얀마 군경 중에는 벌써부터 진압명령에 불복하고 시위대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5·18 유혈진압에 참가했던 진압군의 고백 또는 폭로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쿠데타 발발 직후 세계는 물론 땃마도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변수는 미얀마 민중의 강한 저항이다. 결코 군부독재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민중의 결기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은 ‘각성된 시민들’뿐이다.

영국 자선인권재단(CAF)이 전 세계 140개국에서 갤럽 여론조사를 통해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미얀마는 최근 10년 평균 2위다. 낯선 사람 돕기, 금전적 기부 경험, 봉사 시간 등 3가지 항목을 종합한 지수다. 미얀마가 다시 2위를 한 2021년 지수에서 한국은 32위에 불과했다. 최대 도시 양곤을 중심으로 군부의 잔인한 진압에 거리시위가 줄어들고 있지만, 쓰러지더라도 서로 부축하며 민주화 열망을 지속 가능하게 해줄 자질이자 동력이다. 기부와 봉사가 ‘함께 풍성해지는 행위’라면, 미얀마 민중에 대한 연대 역시 한국과 미얀마 시민사회가 함께 강해지는 행위여야 한다. 미얀마 시위를 계기로 한국의 글로벌 인지성이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5·18의 과거를 회고하며 자선을 베풀듯이 관심을 갖는다면,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2008년 헌법에 근거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입법·사법·행정권을 거머쥐었다. ‘1년 내 총선’을 공약했지만, 계엄령은 1년 단위로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하다. 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으며, 오랜 투쟁을 가능케 하는 연대는 일시적, 선언적 지원이 아니라 금전적 지원을 포함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의 과거’가 아닌, ‘그들의 미래’에 지속 가능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냉혹한 국제사회, 아직은 관망 중

국제사회는 주로 미얀마 군부의 돈줄을 차단하는 제재에 착수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직접적인 개입은 언감생심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얀마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 인출하려던 10억달러를 동결하는 한편 미얀마 국영보석회사를 제재했다. 미얀마의 민정 복귀를 계기로 2013년 맺었던 교역 및 투자협정에 따른 모든 무역거래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늘 강조하는 ‘비슷한 뜻을 가진 나라들(Like-Minded Nations)’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얀마 국군의날에 자국 무관을 참석시킨 8개국에는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외에도 인도와 태국, 베트남 등 미국이 연합전선을 펴려는 국가들이 포함됐다. 특히 미얀마 3대 투자국인 일본은 본격 제재를 미루고 있다. 미국·호주·일본·인도 등 쿼드(Quad) 참여 국가들 사이에도 대응이 다른 셈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2일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정권 차원에서 미얀마 민주화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외교부·국방부·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가 공동으로 국방·치안 및 전략물자 수출·개발협력 등 3개 분야의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이 중 2000년대 초부터 국내 일각에서 비판을 받았던 공적개발원조(ODA)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공적자금의 미얀마 유입에 관심을 기울인 것 자체가 큰 변화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을 필두로 한국가스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롯데그룹 등 대부분이 미얀마 군부기업과 합작 형태로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발표는 대부분 검토 단계일 뿐,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방침들이다.

4월13~16일은 원래 미얀마인들에게 1년 중 가장 행복한 물축제(띤잔) 기간이다. 하지만 지난해 띤잔이 코로나19로 취소된 데 이어 올해는 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 최악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말에 만났을 때만 해도 생기가 넘치던 웨이 누에는 이제 암울함을 토로한다.

“어두운 밤을 걷는 것 같다. 지난주 바고에서만 하루 100명 넘게 죽었다고 한다. 양곤에선 시위가 줄어가고….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제발 학살만이라도 중단됐으면 한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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