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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이슈분석] 한국 제조업 위협하는 반도체 품귀 "웃돈 줘도 못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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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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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국내 가전·자동차·PC 등 산업 전반이 비상이다.

단순한 전기밥솥 하나에도 전력 제어와 열 조절 부품 등 다수의 반도체가 탑재된다. 사실상 모든 전자 제품이 반도체 품귀 사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부품이 하나라도 없으면 완제품 생산과 출고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업계는 부품 다변화를 추진하고 설계를 변경하며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현재는 재고 물량을 소진하며 가까스로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공장 '셧다운'도 불가피해 대응책이 절실하다.

◇ TV, 가전 반도체 '부르는 게 값'

TV나 모니터 등 디스플레이에 필수로 탑재되는 디스플레이용 드라이브 IC(DDI) 단가가 작년대비 30%나 올랐다. 이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노바텍 등 대만 업체들이 올해 1분기부터 단가를 인상했다.

대기업들은 통상 6개월 전 공급업체에 부품을 선주문하고 있어 현재로선 생산에 큰 영향이 없다. 이들은 DDI 등 핵심 부품 부족을 조기 인지해 주문량을 일찌감치 늘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TV와 가전 생산에 큰 영향은 없다”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중소·중견기업이다. 삼성과 LG처럼 부품을 대량 구매하는 '빅바이어'가 아니기 때문에 단가 협상력이 낮다. 공급 순서도 후순위로 밀리고 있어 대부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국내 한 중소 TV 업체 대표는 “지금까지 재고 부품으로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부품 수급을 장담할 수 없어 신제품 출시 계획을 미루고 있다”면서 “천정부지로 높아진 제조 단가 상승으로 올해 적자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토로했다.

가전도 반도체 부품 품귀로 골머리를 앓는다. 냉장고, 세탁기, 정수기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이 반도체를 탑재한다. 하나라도 없으면 완제품 생산은 불가능하다. 범용으로 쓰이는 비교적 단순한 반도체임에도 부품 자체가 품귀여서 대체 공급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

국내 한 중견 정수기 업체 관계자는 “요즘 정수기 반도체 부품은 부르는 게 값이고 구매 시에도 현금이 아니면 안 받겠다는 구매 조건까지 등장했다”면서 “정수기 생산에서 반도체 부품이 품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제품 설계를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구하기 힘든 부품을 빼는 새로운 설계로 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제품 설계를 변경하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국내 중견 종합 가전업체 관계자는 “특정 부품 수급이 몹시 불안정해 결국 제품 설계 변경을 결정했다”면서 “그러나 부품을 바꿔 재출시하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KC 인증에만 두 달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2분기 이후 가전 성수기엔 상황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부품 수급 상황에 해결되지 않으면 생산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코로나 셧다운 때보다 심각…PC 업계 발만 동동

PC 업계가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부품 품귀로 생산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다, 중국 생산 공장으로부터 완제품 배송도 받지 못하고 있어 신제품 출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 PC 부품은 작년보다 가격이 2배 넘게 올랐다. 특히 그래픽 카드 가격이 비트코인 채굴 등 수요까지 더해지며 가장 치솟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0만원대 후반이었던 그래픽카드는 현대 60만원대 후반으로 가격이 올랐다.

중앙처리장치(CPU)와 패널,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램(RAM) 등 모든 부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PC 업계 관계자는 “웃돈을 주고도 현재 일부 부품은 수급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특히 AMD CPU 품귀가 심각해 현재 대부분 PC 업체가 AMD CPU를 탑재한 제품은 모두 예약 판매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 단가가 크게 올랐지만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판매가를 올리면 소비자 구매 의지를 꺾을 수 있고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공공조달시장이 주력인 국내 중소 PC 업계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공공 조달 PC 시장에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패널티를 받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중국 생산 공장이 셧다운 됐을 때는 조달청에서 일부 납기를 유예했지만, 올해는 별다른 정책이 없다.

중소 PC업계 한 임원은 “물류 배송비 상승에 생산 단가까지 올라갔고 배송까지 원활하지 못하면서 올해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하반기엔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 뛴 車반도체, 앞으로가 더 문제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예측 실패로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은 연초 미국에 불어 닥친 한파로 시장점유율 1·3위 업체인 NXP와 인피니언 공장이 멈춰선 데 이어 2위 업체인 르네사스 일본 공장까지 화재가 발생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업계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잇따른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현대차는 당장 7일부터 일주일간 울산1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울산 1공장은 '아이오닉5'와 '코나 일렉트릭' 등을 생산하는 현대차 전동화 차량 핵심 라인이다.

현대차 측은 코나는 전방 카메라 반도체, 아이오닉5는 파워트레인(PE) 모듈 수급 차질이 각각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부품 공급 차질로 4월 최소 한 달 동안 코나는 6000대, 아이오닉5는 6500대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는 현재 매주 단위로 차량용 반도체 재고를 점검하고 있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측은 최근 반도체 물량 확보를 위해 독일 보쉬와 콘티넨탈,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까지 직접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가동 중단은 1공장에서 그치지 않고 2~5공장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현재 다른 공장도 4월 첫 주 주말특근을 잡지 못하면서 1·2차 협력사 등으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기아차 역시 4월 화성공장 주말 특근을 취소했다. 한국지엠도 지난달에 이어 다음 달에도 부평 2공장 가동률을 50%로 낮춰서 차량을 생산하기로 했다. 부평2공장은 '말리부' '트랙스' 등을 생산한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반도체 수급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MCU 반도체 등 부품 발주부터 실제 공급까지 걸리는 리드 타임이 보통 20주에서 50주로 늘어난데다, NXP와 인피니언·르네사스·ST마이크로가 최근 확보한 주문량이 이미 3년치를 넘어섰다는 게 부품 업계 얘기다.

여기에 전기차 등 반도체 부품 수급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한정된 생산 규모에 최근 유럽 내 전기차 수요 증가로 이들 반도체 부품 선점이 가열되면서다.

부품 업체 관계자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MCU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데 최근 대량 발주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NXP와 인피니언·르네사스·ST마이크로는 이미 3년치 주문 물량까지 확보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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