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막판 치달으며 여기저기서 “우군 돼달라” 구애
하지만 다 거절하고 소셜임팩트·젊음과의 소통 행보
24일 영·리해 프로그램서 “우리사회 혁신과 공감 중요”
김세영 바다정원 대표 ‘컵물회’ 도전기 청중에 깊은울림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 청정재료 한식밥집 얘기도 뭉클
김동연 유쾌한반란 이사장. 그는 24일 영·리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사회의 공감과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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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지난 24일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지하1층 강연장인 스타D. 유쾌한반란(이사장 김동연)이 진행하는 영·리해 프로그램이 오후 3시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곤 행사장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영·리해는 젊다는 의미의 ‘영(Young)’과 Understand의 ‘이해’를 합성한 말로 젊은이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젊음에게 배운다는 취지로, 젊은이들로부터 우선 듣고 그들의 꿈과 경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성취를 경청하고 공감하자는 것이다. 이는 소통의 방법에 대한 역발상이다. 성공한 시니어 세대가 도전하는 주니어 세대에 경험과 노하우를 멘토링하는 게 통상의 소통이라면, 영·리해는 젊은이들의 희망과 좌절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면서 중장년층도 배울 것은 배워야 공감이 가능하다는 ‘새방식의 소통’인 셈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랜 공직생활을 그만둔뒤 일상속의 혁신을 추구하는 유쾌한반란 법인을 만들었고, 법인을 통해 영·리해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영·리해는 지난해 5월24일 처음 열렸고, 이날 콘텐츠와 광고, 미디어 삼박자 사업을 하는 ㈜쿠캣의 이문주 대표가 강연을 했다. 서른을 갓 넘긴 청년인 그는 레시피 채널 구독자 3200만명을 일군 유능한 기업가로, 이날 첫 사업모델인 ‘오늘은 뭐 먹지?’라는 제목의 동영상 소개를 시작으로 자신의 도전과 좌절 스토리를 들려줬고, 대기업, 중소기업,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이 청중으로 참석했다. 영·리해 행사는 이어 7월8일에도 이어졌다. 부경대학 대연캠퍼스에서 열린 영리해 간담회를 통해서다.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부산 산복도로를 여행 콘셉트로 개발해 화제를 일으켰던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대표가 부산의 최고경영자들 앞에서 강의를 했다. 이렇게 이 프로그램은 몇번 열리기도 전에 화제를 뿌렸다.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비교적 성공한 중장년층이 듣곤 공감과 소통을 극대화하자는 영·리해 기본 취지가 신선하기도 했고, 강의하는 젊은층의 발랄한 아이디어와 실패기가 환호와 눈물샘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24일의 영·리해 강연은 네번째 행사였다. 이날은 김세영 바다정원 대표와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의 강연이 예정됐는데, 기자가 행사를 찾은 것은 그들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성공스토리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다른 욕심(?)도 있었다. 김동연 이사장(이하 이사장으로 통일)의 향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도 작용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여야 영입 바람에 시달렸던 김 이사장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4월7일)를 앞두고도 정치권의 구애를 받은 바 있다. 알려졌다시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출마 직전 김 이사장을 찾아 “시장 후보에 대신 나서달라”고 했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얼마전 “단일화가 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동연 전 부총리와 개혁우파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한 바 있다. 어쨌든 서울시장 선거가 보름도 안남은 상황에서 ‘박영선 vs 오세훈’ 양자대결로 굳어졌고, 양 진영에서 강력한 우군으로 김 이사장을 염두에 두며 여야를 떠나 ‘김동연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현장을 찾은 것이다.
김 이사장은 영·리해가 시작되기 10분전부터 기업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강연장 입구에서 이들에게 영·리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곳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과 허인 KB국민은행장도 있었다. 행사가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리니, 주인으로서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고 또한 영·리해 행사에 대한 덕담을 건네는 자리였을게다. 이들과 인사를 하고 약간의 대화를 나눴지만, 김 이사장에겐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못했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이라도 가치가 있으면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하는게 기자의 숙명이지만, 법도는 있는 법이다. 선거판에 대해 물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 얻은 것은 없었다.
다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그램 중간 짬을 내 김 이사장의 근거리에 있으면서 심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인물을 만났는데, 그가 몇마디 힌트를 줬다.
그에 따르면, 현재도 여야를 떠나 김 이사장은 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장 선거를 도와달라는 각 캠프의 요청이다. 사람 도의상 안받을 수 없는 전화를 받고 나면 여기저기서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바람에 김 이사장이 난감해한다고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요? 김 이사장은 전혀 거기에 관심이 없고요.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확실해요. 오늘 이런 자리도 그 일환이지요.”
생활속의 작은 혁신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보탬이 되고, 사회적가치 잠재력을 갖춘 스타트업에 힘을 실어주고, 특히 이날의 영·리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기업인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극대화하는 게 자신의 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김 이사장은 이날 영·리해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로 인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어려운데 우리사회의 공감과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다”며 “내 얘기만 하고 남의 말을 안듣고 그래서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는 게 현실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리해 프로그램은 시니어가 학생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을 듣는 자리”라며 “이를 통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소통을 넘어 지역간, 성별간, 그리고 고용주와 고용자, 나아가 진영공간을 뛰어넘는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오늘 강연하는 김세영, 김민영 두 대표의 성공스토리와 경영철학이 너무 좋아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강연이 진행됐고, 두 대표의 스토리가 공개되자 청중으로 참석한 이들의 공감대는 극대화됐다. 이들 스토리는 이렇다.
김세영 바다정원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우리가 함께 만든 컵 물회!’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사업 성공의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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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1. 영덕에서 10년동안 횟집 장사를 했다는 김세영(39) 바다정원 대표. 코로나가 닥치자 폐업 위기감이 들정도로 힘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동해바닷물이 영향을 입는다는 말이 돌때도, 메르스때도 그만큼 어렵지 않았다. 손님이 줄었어도 한달이상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은 달랐다. 문을 영원히 닫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에 몰릴 정도로 악전고투의 날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카페를 갔는데 사람들이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을 봤다. 테이크아웃이야 늘상 있는 일이니까, 그다지 새로울게 없었는데 여기서 한가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아, 물회를 테이크아웃하면 어떨까. 코로나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좀 낫지 않을까. 당장 실행에 옮겼고, 물회를 컵에 담은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컵물회’다. ‘내손에 쏙물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사실 확신은 없었다. 물회를 컵에 담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회와 숨이 죽지 않는 야채의 신선도는 숙제였고, 국물의 농도 또한 최적화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SNS 등으로 홍보해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대박은 아니고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컵물회가 신박하다고 입소문이 나서 영덕까지 찾아와주시는 분도 많아졌지만, 엄청나게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김 대표의 장사비결, 거창하게 말하면 경영전략은 명확하다. 컵물회에 주력하기 위해 메뉴에서 ‘대게’를 뺐다. 영덕하면 대게의 고장인데, 대게를 팔지 않겠다고 하니 우려의 시선들이 많았다. “아마 영덕 횟집 중 대게를 팔지 않는 곳은 우리 밖에 없을 겁니다. 컵물회에 집중하고 거기에 최고의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해선 대게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어리석은 결정이었는지는 나중에 알겠지만, 그게 우리만의 고집입니다.”
그에게 아이디어는 넘친다. 드라이브 스루 같은 파킹 스루도, 일회용 컵 대신 환경을 추구하는 대체컵 등도 그의 구상 속에 있다.
“장사를 처음할때 장사가 잘되는 집과 비교하고 질투도 많이 했어요. 저 집은 잘되는데, 왜 우리집은 안되나 이런 생각에 빠지면 제가 불행해지더라구요. 경쟁업체를 이기고 1등이 되기 위한 노력, 그건 안하기로 했어요. 우리만의 장사를 하면 되니까요. 그러니 요즘 더 행복해지더라구요.”
‘따로 또 같이! 우리가 함께 만든 컵 물회!’라는 제목의 강연 서두에서 김 대표는 말했었다. “오늘 강연한다고 서울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잘 안되데예. 그래도 열심히 말해 볼래요”. 50여분의 강의와 질의응답이 끝났을때 청중 30여명은 김 대표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가 ‘밥 한그릇의 위로, 허기진 당신에게 건넵니다’라는 주제로 자신의 사업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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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2. 청정재료 한식밥집 소녀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민영(31) 대표. 식당 이름이 서정적이다. 내세우는 카피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모두의 마음속엔 소녀가 있습니다’에서 다정한 밥상이 연상된다. 김 대표의 강의는 씩씩하게 진행됐다. 얼굴이 특히 밝아, 지난 세월의 가난을 그의 표정에선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가난하고 또 가난했던 스무살 청춘 시절을 회상했다.
대학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아르바이트라는 아르바이트는 다 했단다. “고등어구이집, 카페, 식당, 웨딩홀, 출구조사원, 텔레마케터 등 나중에 세어보니 제가 한 아르바이트 업종이 23가지가 되더군요. 힘든 시절이었어요.” 당시 신문방송학과에 다녔기에 스타트업 홍보팀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꿈을 키워갔다. 1년11개월을 열심히 일했는데, 전화 한통화로 해고통지를 받았단다. 작은 고시원 방에서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남은 것은 좌절감과 통장 잔고 20만원.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대학생활 청송에서 농활을 한 것이 기억났다. 그때 만난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했고, 머리를 식힐겸 내려간 청송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르신들과 말동무를 하고, 틈틈히 농사일을 도왔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어르신들은 때가 되면 트럭을 기다리기만 했다. 농사를 통해 수확한 것들을 도시 사람들이 밭뙈기로 사가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트럭만을 기다렸다. 이때 든 생각이 이랬다. 꼭 트럭을 기다려 농작물을 팔아야 할까. 직접 판매 활로를 뚫어 팔면 낫지 않을까. 이 식재료를 받아 식당을 열면 되지 않을까. 소녀방앗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생각이 같은 동료들 몇명과 창업을 했고, 2014년 10월 서울 성수동에 소녀방앗간을 열었다. 무모한 도전, 그때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6호점까지 늘었지만, 고생 많이 했어요. 처음에 태운 밥솥만 해도 수십개는 될걸요.”
김 대표가 추구하는 밥상은 재료 본연의 맛이다. 재료는 당연히 지역 최고품을 가져다 쓴다. 청송의 발효장, 태백의 산나물, 나주의 간장. 이런 식이다. 식재료의 신선을 유지하기 위한 저장창고 역시 안전먹거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김 대표는 소녀방앗간의 밥상에 호불호가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다보니 입맛이 맛지 않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청정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건강을 우선시하는 소녀방앗간의 철학은 영원히 지킬 것이라고 한다. 이날 김 대표 강연의 주제는 ‘밥 한그릇의 위로, 허기진 당신에게 건넵니다’였다. 그 이유는 이랬다.
“청송으로 가서 어느 어르신 집에 갔는데,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더군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었어요. 위로가 필요했던 때, 그 밥상이 제겐 정말 위로가 된 것이죠. 지금 식당을 운영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힘도 그때의 위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누군가에게 하루의 위로가 되는 밥상을 오늘도 차립니다.” 앞선 강연 못잖은 박수와 함께 질문이 쏟아졌다.
사회를 맡은 박새아 유쾌한반란 사무국장은 영·리해 프로그램 강사들을 소개하면서 “탈무드에선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이라고 했는데, 오늘 그런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김세영 바다정원 대표와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 두 사람은 이날만큼은 시니어를 비롯한 많은 청중들에게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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