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상대 민사소송서 안태근 측 “만취해서 성추행 기억 안 나”

[경향신문]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2018년 2월26일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서지현 검사(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가 자신을 성추행하고 인사상의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첫 재판에서 안 전 검사장 측이 “만취 상태여서 (성추행한) 기억이 안 난다”며 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3단독 김대원 판사 심리로 서 검사가 안 전 검사장·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위자료를 물어내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서 검사는 소장에서 “피고 안태근은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시절 원고 서지현을 강제추행하고, 검찰국장으로 승진한 뒤에 직권남용에 의한 보복인사 불법행위를 범한 가해자”라고 주장했다. 국가에 대해서는 “피고 안태근 등 소속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원고 서지현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안 전 검사장은 서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직권남용죄가 법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민사소송의 쟁점은 형사법원이 안 전 검사장의 강제추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여부였다. 서 검사 측 김환준 변호사는 “안태근의 추행은 형사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이라며 “성추행이 보복성 인사를 촉발했다는 부분이 사실심에서 충분히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 전 검사장 측은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근거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안 전 검사장 측 김민지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1·2심 모두 파기됐다”며 “인사 개입 부분에 대해서도 ‘추정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사실관계가 확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 검사 측 서기호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부분은 직권남용 법리 부분이지 강제추행 인정 사실이 파기된 것은 아니다”라며 “파기환송 전 하급심에서 강제추행 사실이 인정됐다. 판결문 자체가 증거”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 측에 ‘강제추행 사실은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김 변호사는 “(피고는) 기본적으로 만취 상태여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형사사건 기록에 원고가 (강제추행 사실을) 문제삼지 않으려 했다는 부분도 나와 있다”고 말했다.

서 검사 측은 서 검사가 강제추행을 문제삼지 않으려 했다는 안 전 검사장 측의 주장에 반발했다. 서 변호사는 “원고 서지현 본인이 강제추행을 문제삼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검찰 상관이 가해자여서 (안 전 검사장이) 징계를 받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본인이 잘 알다보니 그랬다는 취지”라며 “강제추행 사실이 없어서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서 검사 측은 안 전 검사장의 불법행위로 인해 겪게 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입증하는 진단서, 진료확인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장의 인사 보복으로 인해 아이를 두 번 유산하고, 시신경유두부종 질환으로 시력을 잃을 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이날 한 차례의 재판으로 심리를 마무리하고 오는 5월14일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 직후 서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안 전 검사장의 형사사건은) 비록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이 났지만 직권남용죄가 되냐 되지 않느냐 법리적 판단에 불과하다”며 “강제추행이 있었던 사실과 안태근이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해서 인사 원칙에 어긋나는 보복성 인사를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서지현 검사는 안태근의 강제추행 범행 때문에 유산을 몇 차례 했을 정도로 굉장한 고통에 시달렸다”며 “재판부가 서 검사의 고통을 생각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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