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금 기준… 소상공인들이 항의하면 지급
정부가 이달 초 20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4차 재난지원금’을 편성하며, 지급 기준으로 세운 ‘매출 감소’ 조항에 이 같은 자영업자들의 항의가 쏟아지자 당·정이 부랴부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초안 발표 2주쯤 지난 15일 국회가 ‘지난해 매출이 늘어난 영업제한 업체들에도 100만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며 1070억원의 추가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기준을 얼렁뚱땅 만들어 놓고 항의해야만 들어준다” “자꾸 이런 게 반복되니 생업이 바빠도 거리로 몰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차 재난지원금 때도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컸다. 대표적인 것이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기준이다. 5명이 넘으면 소(小)상공인이 아닌 만큼, 지원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광진구에서 30평 규모 칼국숫집을 18년째 운영해 온 박모(43)씨는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30% 이상 빠졌다. 2019년까지 하루 100만원씩, 월평균 3000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000만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 2·3차 재난지원금을 모두 받지 못했다. 주방 3명, 홀 2명 등 총 5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박씨는 “10년 넘게 일한 직원도 있고, 한 외국인 근로자는 비자 연장까지 도와주며 3년째 같이 일하는 가족 같은 사이”라며 “직원들을 내보내 실업수당을 받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다른 가게들이 직원을 하나둘씩 해고할 때도 끝까지 고용을 지켰다. 박씨는 “직원들도 힘든 가게 사정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데 잘 벌고 못 벌고 상관없이 고맙고 단지 똘똘 뭉쳐서 버텨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알아달라고 직원들 안 내보낸 건 아니지만, 이런 면을 나라에서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서 150평 규모 수영장을 운영하는 최광순(42)씨도 지난 3일 소상공인진흥재단으로부터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불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수영장은 집합금지 대상 업종이었지만, 역시 고용을 지킨 것이 이유였다. 최씨는 안전관리·강습·청소 등 수영장 특성상 일반 업소보다 많은 직원 14명을 고용 중이다. 그는 “코로나 속에 폐업 안 하고, 직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에 와서야 상시 근로자 기준을 없앴다.
코로나 때문에 줄곧 일을 못 하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잠깐 일한 것 때문에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된 경우도 있다. 강원도 강릉시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이동철(42)씨는 작년 11월 한 기업에 20여 일을 출근했다는 이유로, 프리랜서에게 지급되는 3차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정부가 밝힌 지급 기준은 ‘지난해 10~11월에 일을 해, 5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한 프리랜서 가운데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0일 이하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씨는 가입 기간이 20여 일 정도라 지급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이씨는 “재난지원금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여기저기 물어봐도 안 된다는 말만 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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