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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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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성패 결정하는 ‘현대캐피탈 vs 한국전력’[발리볼 비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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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차세대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는 허수봉.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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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끼리 ‘5할 승률은 맞추고 시즌 마무리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캐피탈 허수봉(23)은 팀이 삼성화재에 3-0 완승한 19일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 대전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남자부 6위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13승 17패를 기록한 채 5라운드 일정을 마감했다. 6라운드 여섯 경기에서 5승 1패를 기록하면 선수들 바람처럼 5할 승률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정말 팀에 좋은 일일까? 여기 바로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 팀이 이기는 건 당연히, 물론, 원래 좋은 일이지만 ‘리빌딩’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많이 이기는 게 꼭 좋은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리빌딩 vs 세대교체

한국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리빌딩을 세대교체와 거의 똑같은 의미로 쓴다. 단, ‘rebuilding sports’라고 구글링을 해보면 검색 결과에 위키피디아 ‘탱킹(tanking)’ 페이지가 나온다. 탱킹은 리그에서 하위권 팀에게 주는 어드밴티지를 누리고자 일부러 경쟁력이 약한 팀을 꾸리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을 꾸려 시즌을 치르는 게 탱킹이다.

‘리그에서 하위권 팀에 주는 어드밴티지’가 존재한다는 건 해당 리그에 ‘차등 신인 지명권’이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한국 프로 스포츠나 미국 프로 스포츠 대부분 리그처럼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를 통해 선수가 리그에 합류하는 리그를 흔히 ‘폐쇄형 리그’라고 부른다. 이런 폐쇄형 리그에서는 성적이 나쁘면 이듬해 드래프트 때 다른 팀보다 먼저 신인 선수를 선발할 수 있기에 우수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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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바르셀로나가 리오넬 메시와 계약할 때 처음 쓴 ‘냅킨 계약서’. 바르셀로나=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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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럽 축구 리그는 신인 선수와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개방형 리그’ 형태가 대다수이고 이런 리그에는 드래프트 제도가 없다. 유럽 축구에서 탱킹이라는 개념을 접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총알’만 있다면 성적을 희생하지 않고도 계속 유망주를 확보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팀 성적이 좋을수록 총알을 확보하기도 쉽다.

거꾸로 드래프트 전략과 무관하게 그저 실력이 뛰어난 = 몸값이 비싼 선수 대신 그저 몸값이 저렴한 선수로 라인업을 채우는 행위 역시 엄밀하게 말해 리빌딩이라고 보기 어렵다. 리빌딩은 원래 있던 건물 등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작업을 뜻한다. 따라서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과정 역시 리빌딩에 꼭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리빌딩을 추진하는 팀은 대부분 즉시 전력감인 선수를 다른 팀에 내주고 상대 팀 유망주 = 드래프트 순위가 높은 선수를 받아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망주가 아니라 아예 지명권을 받아오는 방법도 있다. 리빌딩을 추진하는 팀은 이를 통해 과거 시즌 성적이 나빴다면 누릴 수 있던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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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속팀 현대캐피탈의 리빌딩 선언으로 팀을 떠나야 했던 한국전력 신영석(왼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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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이 사전적인 의미로 쓰는 리빌딩에 딱 들어맞는 길을 걸었다. 현대캐피탈은 시즌 개막 전 김재휘(28)를 KB손해보험에 내주면서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 이 지명권은 전체 1순위가 됐고 지난 시즌 3위 현대캐피탈은 ‘최하위 효과’를 누리면서 신인왕 1순위로 평가받는 김선호(22)를 지명할 수 있었다.

이어 현대캐피탈은 한국전력과 신영석(35) ↔ 김명관(24)이 뼈대를 이루는 트레이드를 했다. 김명관은 2019~2020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이다. 따라서 현대캐피탈은 이 트레이드 두 건을 통해 (물론 출혈이 있었지만) 2018~2019, 2019~2020 두 시즌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해야 입단시킬 수 있던 유망주를 확보했다.

● 현대캐피탈 리빌딩 성패 한국전력에 달렸다?

현대캐피탈은 이와 함께 한국전력에서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도 받았다. 팀이 못할수록 지명 우선순위도 올라가기 때문에 현대캐피탈은 한국전력이 못하면 못할수록 ‘귀하고 좋은’ 지명권을 받아온 셈이 된다. 거꾸로 한국전력이 잘하면 잘할수록 현대캐피탈이 손해 본 장사를 하게 된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카드에 0-2로 뒤지던 경기를 3-2로 뒤집은 4라운드 경기가 끝난 뒤 체육관 바깥에서 만난 최 감독은 “(5위) 한국전력과는 순위가 바뀌어도 지명 순번에 영향이 없다. 순위를 한 계단 더 끌어올리는 게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관점에서 문제는 한국전력(승점 49)이 여전히 순위는 5위지만 2위 우리카드(승점 53)와 비교해도 승점 4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3위 KB손해보험(승점 52)과 4위 OK금융그룹(승점 50)은 폭력 사태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이 결국 3위 이상으로 시즌을 마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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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순위 그대로 시즌을 마치게 되면 현대캐피탈이 1순위 지명권을 따낼 확률은 50%가 된다. 6위 현대캐피탈이 30% 확률, 5위 한국전력이 20% 확률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전력이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면 이 확률은 34%로 줄어들게 된다. 한국전력이 4위일 때도 38%로 현재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이번 시즌 드래프트 때 현대캐피탈은 KB손해보험 확률 30%, 3위를 차지한 자기 팀 확률 4%로 1, 3순위 지명권을 잡았다. 다음 시즌 때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확률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현대캐피탈은 당연히 한국전력이 못하면 못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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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이 한국전력 순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첫걸음은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 다섯 차례 맞대결 3승 2패로 앞서고 있다는 것도 현대캐피탈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요소다.

거꾸로 한국전력은 순위가 오르면 오를수록 ‘남는 장사’를 한 셈이 된다. 이렇게 좋은 기회라면 얼른 잡는 게 당연한 일이다. 4, 5라운드 성적만 따지면 한국전력은 승점 23으로 우리카드와 함께 가장 좋은 기록을 남겼다.

과연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웃는 팀은 어디가 될까? 두 팀의 6라운드 맞대결은 현대캐피탈 안방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23일 오후 7시에 막을 올린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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