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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 입이 거칠어졌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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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 입이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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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말이 순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도, 그리고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강하게 비판해도 그의 반응은 대체로 점잖은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문 대통령이 극단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입이 거칠어진 것이다. 물론 생중계 방송 마이크에 대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육성으로 내놓은 발언은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제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다. “예측했던 대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고용 위기상황임이 고용 통계로도 확인됐습니다.” 그렇다. ‘가장 심각한 고용 위기’라는 말이 대통령 입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고용 상황이 일시적으로 좋지 않은 것으로 나왔지만 곧 좋아질 것이란 정부의 방침을 믿어주세요.”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가장 심각’이라는 최상급 상황 진단을 망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역대급 고용위기 국면에서 계획하고 예정했던 고용대책을 넘어서는 추가 대책을 비상한 각오로 강구해주십시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발언이 중간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심지어 전쟁에 준하는 상황에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역대급 고용위기’ ‘비상한 각오’ 이런 말을 쏟아놓고 있다. ‘역대급’이란 말은 사실은 아직 사전에는 없는 유행어다. 앞선 사례, 즉 전례가 없다는 뜻이다. 역대급이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이런 표현도 썼다. “청년과 여성의 고용상황을 개선할 특단의 고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해주세요.” 그렇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특단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참모들이라고 해서 별나게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했다는 말은 사실은 참모들 귀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라 국민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이 ‘외환위기, 가장 심각, 비상한 각오, 특단 대책’ 같은 거의 벼랑 끝 언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서울·부산 시장선거를 불과 한 달 20일 쯤 앞두고 여권의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설 연휴를 지난 직후에 이런 극한적 표현을 쓴 이유일 것이다.

둘째는 어떤 고용 지표든지, 어떤 고용 통계든지 상대적인 수치라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일자리 통계는 으레 “작년 같은 기간보다 얼마나 늘었다, 얼마나 줄었다”, 이렇게 표현하기 마련이고, 혹은 “지난달보다 어떻다 저떻다”, 하고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1월 고용 통계’가 매우 안 좋게 나왔다면, 그것이 이른바 ‘기저(基底)효과’라는 것을 발휘해서 3월쯤에 발표하게 될 ‘2월 고용 통계’는 아주 좋게 나올 수가 있다. 그렇다. 다음 달에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직전에 두고 발표되는 고용 통계는 오히려 극적인 반전 상황을 이끌어내어 호전 국면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 어제 말했던 대통령의 극단적인 표현들은 드라미틱하게 대비효과를 내면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발표된 지난 1월 고용 통계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취업자 수는 1년 전과 비교할 때 무려 98만2000명이 줄었다. 한마디로 취업자가 100만 명이 줄었다는 뜻이다. 잘 실감이 안 나십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12월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보시면 된다. 햇수로 23년 만에 불어 닥친 ‘고용 참사’인 것이다. 과거에는 흔히 ‘고용 절벽’이라는 말을 썼으나 지금 상황은 절벽에 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벼랑 밑으로 굴러 떨어져 모두 쓰러져 있는 상황, 즉 ‘고용 참사’라는 것이다.

취업자가 100만 명 감소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습니다. 취업자가 크게 감소하면 당연히 실업자가 크게 불어난다. 지난달 실업자 수는 157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치, 즉 문 대통령이 말한 ‘역대급’ 실업자 수인 것이다. 실업률도 5.7%를 기록해서 21년 만에 5% 선을 뚫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원인 분석을 해보면 대략 두 가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고용 상황이 IMF 외환위기 상황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 것은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밖에서 하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전례 없이 줄어들어 전 세계적으로 21세기 최대의 타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결정타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고용 지표에서 공연히 헛배만 부르게 했던 정부 지원 알바 일자리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것이 60세 이상 노인 취업자가 12년 만에 줄어든 탓이다. 매달 수십 만 명씩 증가 추세를 보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난 1월은 거꾸로 1만5천 명이 줄어들었다. 하루 2~3시간 일하고 한 달에 30만원 안팎에 돈을 받는 ‘일자리 같지 않은 일자리’도 그동안 고용 통계로 잡혔는데, 이러한 정부의 공공복지 근로사업이 겨울철을 맞아 종료된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꽁초·휴지 줍기, 빈 강의실 전등 끄기, 태양광 패널 닦기, 침대 라돈 측정 같은 일자리다. 이 같은 일회성 일자리는 고용 지표 수치로는 버팀목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종료되면 곧바로 고용을 크게 위축시키는 취약한 일자리다.

게다가 코로나 한파가 몰아닥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청년층과 여성들이다. 졸업 시즌을 맞은 청년들은 이른바 취업 보릿고개에 내몰리고 있다.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체감 실업률이 27.2%에 이르고 있다. 더불어 구직을 포기하는 여성들, 즉 구직 단념자의 비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렇습니다. 바로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서 고용과 투자를 늘려주어야 한다. 그 길밖에는 없다. 그런데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 즉 전경련, 그리고 벤처기업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등이 국내 2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국내 고용 축소’, ‘국내 투자 축소’, ‘사업장 해외 이전’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응답이 86.3%에 이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상법 개정, 노동조합 3법, 중대재해처벌법, 획일적 주52시간제 같은 기업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규제를 대거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말로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면서 일자리에 노심초사한 것 같은데, 실제로 이뤄지는 행동을 보면 하나같이 일자리를 없애는 규제 입법만 진행하고 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정도가 아니라 ‘말은 동쪽으로 행동은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글자 그대로 믿어서도 나중에 낭패를 당하게 된다. 가령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는 거시적으로 대단히 좋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비정규직이 늘어났을까, 줄어들었을까, 이 문제 하나만 따져보겠다. 왜냐하면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 12일 대통령으로서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았다. 그날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자리에서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제로 시대 약속은 어떻게 됐을까.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조사 분석한 바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가 95만 명이나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면 2배,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하면 4배나 증가한 수치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을 들여 역점적으로 약속했던 첫째 어젠다가 ‘비정규직 제로 시대’였는데, 결과는 역대 정부 중 비정규직 최고 증가치로 나타난 것이다. 비정규직은 지금 700만명 대를 돌파한 상태에 있다.

누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유난히 비정규직을 챙기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해왔기 때문에 그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의 선거용 부풀리기와 돈 풀기로 만들어낸 여러 고용 지표, 그것들이 속으로 곪아 들어가고 있다는 내막을 드러내면서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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