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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건강 한식의 중심’ 종가…존경·나눔정신 깃든 ‘셰프 그라운드’ [명절에 빛나는 종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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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5탕5찜·각색다식·감단자

정재종택 가양주·송화주 건강견과

사천군 종가 150년 씨간장 보유

송광길 종가 석탄주·요리서 보존

학봉종가는 대나무 죽로차로 유명

안동 ‘퇴계 불천위 제사’ 랜선중계

이옥희 교수 “교육 자료로 충분…

상품개발, 한식의 재발견 도모해야”

헤럴드경제

건강, 나눔, 정성이 잇든 음식문화와 지혜, 멋, 흥의 생활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던 종가 종부들이 음식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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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창출, 확산하는 허브(hub) 역할을 했던 종가는 건강 한식의 중심이기도 했다. 특히 명절 때 종가는 전통 명품 한식을 빚어내는 셰프 그라운드가 된다. 한국의 음식에는 존경과 나눔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조상이든 가족, 이웃이든 정성과 얼을 음식에 담았고, 먹을 양 보다 많이 장만한 것은 먹거리가 넉넉치 않았던 일꾼 가솔, 이웃, 식객에게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과소비’라는 주장을 뛰어넘는 숭고한 나눔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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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윤두서의 후손 해남윤씨 어초은종가 녹우당의 종가음식. 왼쪽부터 어만두, 각색다식, 비자강정, 감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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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종가 설 명절 문화=전남종가회를 이끌고 있는 녹우당 주인 윤형식 회장은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의 후손인 해남윤씨 종손이다. 녹우당 사람들은 백성들이 힘겨울 때 세 번이나 세금을 대신 내주고, 곳간을 열어 구휼한 것으로 유명한 남도종가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사흘간 수많은 손님이 녹우당을 찾아 세배를 나눈다. 손님맞이 음식으로 비자강정·어만두·육만두를 내어온다. 차례음식은 5탕5찜을 기본으로 상어포에 도라지 나물 3채와 과일, 직접담은 청주 또는 비파주를 놓고 떡국을 올린다. 종손과 종부가 팥시루떡 위에 실타래를 올리고, 수저를 꼽아 무탈과 무병을 기원한다. 사당, 우물, 은행나무, 대청 등 곳곳에 계란에 동백기름 넣은 등(燈)을 밝혀 국태민안과 가족안위를 기원하고 있다. 명절이 아니라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각색다식, 감 단자 등을 내어준다.

▶경북 종가의 손님 응대=월봉서원 기대승과 학문적 토론으로 한국철학의 수준을 높였던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후손들도 조상과 손님, 가족을 위한 음식만들기에 정성을 다했다. 수졸당은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은 반죽의 칼국수를 익혀 찬물에서 건진 ‘건진국수’, 치암고택은 퇴계가 매화, 연화, 국화, 대, 소나무와 자기자신을 여섯 벗(六友)으로 삼았다는 스토리에 맞춰 이름붙인 ‘육우원 다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조선중기 학자 장흥효의 5대손 장세규가 만든 칠계재는 화목, 대인관계, 학문, 농경지혜, 봉사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오고 있다. 칠계재 종부는 황혜성(작고) 궁중음식기능보유자의 제자로, 당뇨를 앓는 시어머니 건강을 위해 궁중음식 및 건강요리 개발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퇴계학문 계승자로, 장례때 상여의 줄을 잡은 선비가 900명에 이르렀다는 조선후기 학자 류치명은 정재종택의 주인이었다. 이 종택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 300년 전통 송화주와 건강레시피의 견과 안주로 손님을 대접한다. 이들 종가 종부들은 의기투합해 종가음식 도시락을 만들어 국민과 공유하고 있다.

▶이옥희 교수의 종가 음식스토리=이옥희 전남대 교수는 최근 종가문화 심포지움에서 종가의 이야기가 갖는 인문학적 의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의 발표문에 따르면, 장성 전주이씨 진남군파 사천군 종가는 봄이 오면 영산홍, 자산홍이 만발한 고택에 이웃과 동학들을 초대해 화전놀이를 즐기는 전통이 이어오고 있다. 종가의 내림음식인 족편, 약섭산적, 우렁쉥이꽂이를 대접하고, 종가 장독대엔 여전히 150년 된 씨간장을 보유하고 있다.

담양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추성수후 장전종가의 경우 양녕대군 증손인 추성수공이 담양 창평으로 유배올 때 궁중요리사가 따라와 궁중에서 먹던 엿을 만들었는데, 이 엿이 창평 전역에 퍼져서 창평엿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담양 홍주송씨 이요당파 송광길 종가는 추성수공의 부인 홍주송씨로부터 궁중에서 마시던 석탄주가 전해져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찹쌀로 만든 술로, 껍질 없는 누룩을 맷돌에 갈아서 일반 술보다 더 오래 숙성시키고 있다. 이 종가도 경북 영양의 ‘음식디미방’처럼 오래된 요리서를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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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씨 학봉종가 포레스트 죽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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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 청재종가 남파고택에 탐방온 국민들.


▶차(茶) 문화에 깃든 인문학=원주이씨 병사공파 종가의 백운동별서정원 5대 동주인 이시헌(1803~1860)은 스승 정약용 시, 초의선사 그림으로 탄생한 ‘백운첩’을 가전하고 다산과 200년 의리를 이어간 최고의 제자 중 한명이다.

차(茶) 전문서 ‘동다기(東茶記)’를 일일이 필사해 다산과 함께 제다법을 연구개발했고, 매년 유배를 끝내고 귀향한 스승의 경기도 집으로 ‘메이드 인 백운동’ 차를 보냈다. 11세손 이한영(1868~1956)은 백운옥판차 독자브랜드를 만들고 일제의 총칼앞에서도 한반도 지도를 그려넣어 상표등록까지 했다. 현재 이한영전통차문화원장 이현정 박사가 이시헌-이한영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제주양씨 학포공파 통덕랑공 종가의 경우, 선조인 학포 양팽손은 차를 사랑해 차 씨앗이 그려진 연지도를 그렸고, 양응덕도 차에 대한 애정으로 시에 차의 어린잎을 뜻하는 ‘옥부’라는 표현과 차의 거품을 ‘뜻하는 ‘백록’이라는 표현을 썼다. 음식, 술, 차는 인문학의 중요한 토양이다. 장흥고씨 학봉종가는 대나무 죽로차로 유명하고, 밀양박씨 청재종가 남포고택은 내림음식과 전통차에 얽힌 이야기로 문화재활용프로그램을 운영해 지난 연말 문화재청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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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 불천위 제사 국민참여 랜선중계.


▶명절이면 생각나는 어머니, 아버지…효도 문화=명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어머니 아버지이다. 효도와 관련해서는 70나이에 망백(望百)의 부모님 앞에서 색동옷 입고 재롱을 피운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가, 지극 정성으로 기적의 묘약을 얻어 부모님의 환우를 물리친 문화류씨 검한성공파 종가 스토리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울산김씨 문정공파 하서 종가는 정조대왕이 조선 개국 이래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모두 갖춘 이는 오직 하서 김인후 한 사람뿐라고 칭송한 하서 선생 불천위(不遷位) 제례를 치른다. 하나의 무형문화재 양식이다. 안동에선 최근 퇴계선생 불천위 제사를 랜선 중계해 국민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옥희 교수는 “종가의 문화를 초중고 학생들, 사회인들에게 전통문화 교육·교양 자료로 활용하고, 종가음식 상품 개발을 통해 한식의 재발견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제안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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