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줄지어선 트럭들/사진=afp |
프랑스 파리의 영국 식료품점 진열대는 텅텅 비었지만, 영국 항구의 트럭에선 고기와 생선이 썩어나간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한달,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영국의 유럽연합(EU) 쪽 수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68% 줄었다고 영국 도로화물협회(RHA)를 인용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복잡해진 통관절차가 수출이 줄어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특히 먹을거리는 원산지 보증과 관세 신고 등 방대한 양의 수출 서류가 필요해 수출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AP통신은 "육류 수출업자들은 위생 검사를 기다리는 사이 고기가 트럭에서 썩어버렸다고 토로했다"며 "스코틀랜드 어부들은 복잡한 서류 작업으로 과거 EU에 팔았던 생선 물량이 크게 줄었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리처드 버넷 RHA회장은 지난 1일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이 EU를 탈퇴하기 전부터 브렉시트 이후에 화물업계가 겪을 어려움을 설명했지만 정부는 업계와 전문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매우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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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의 양면'…브렉시트가 호재된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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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업들에겐 브렉시트가 기회가 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항구인 리버풀에 위치한 필 포츠는 150여명의 부두 노동자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영국에서 EU로 수출하는 물량 대부분이 공항이 아닌 항구로 전해진다.
통관 절차로 인해 수출입물품의 검역 시간이 늘어나면서 창고 업체와 계약을 맺는 회사들도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국의 한 물류회사 운영자는 "국경 근처 창고를 얻어 과거보다 더 많은 재고를 쌓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가 약세를 보이면서 오히려 수출이 늘어난 곳도 있다. 160년 전통의 엔지니어링 회사 브랜다워는 올해 사업 규모가 코로나19(COVID-19) 이전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직원 채용에 나섰다.
로완 크로지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 사업을 수주했다"며 "EU 고객 중 단 한명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랜다워는 자동차와 면도기, 의료기기 등에 들어가는 정밀 부품을 만든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 언스트앤영(EY)의 마크 그레고리 영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로) 자동차와 금융서비스등 수출 지향적 업종은 자본 유출을 경험할 수 있지만, 첨단제조업 등에 대한 영국 투자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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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새로운 기회" vs "어려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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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제때 항구를 지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는 트럭은 운전자들이 정확한 서류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조차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국경에서의 혼란은 미미하다"며 "관련 업계와 소통하며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현재의 혼란은 단기적일 뿐, 영국이 자국 경제 의제를 설정하고 전세계와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유로 인해 곧 상쇄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1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선언했다.
그레고리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는 일시적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승자와 패자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관론을 편다. 유럽 국제정치경제센터의 무역 전문가 데이비드 헤닉은 "어떤 분야는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장기적인 경제 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론자들은 영국이 가입하기로 한 CPTTP 국가들과 영국의 거래량이 2019년 기준 1110억 파운드로 EU와 거래량의 6분의 1에 불과하다고 꼬집기도 한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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