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이슈 헌정사 첫 판사 탄핵소추

사법부 길들이기? ‘사법농단 법관 탄핵’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28일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허용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발의를 주도하는 이탄희 민주당 의원에 의하면 범여권 의원 111명이 탄핵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는 발의를 위한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1)를 넘는 인원이다. 40여명이 더 합류할 경우 탄핵소추가 가결될 수 있다.

일각에선 국회의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소추가 ‘사법부 길들이기’라거나 오히려 법관 독립을 침해하고, 형사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탄핵을 하느냐는 주장을 한다.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임성근 판사가 임기 만료로 다음달 말 퇴직을 앞두고 있어 탄핵소추에 실효성이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4년여간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드러난 내용과 법관 탄핵 절차에 관한 문헌, 헌법재판소 판례, 현재 진행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형사재판을 참고해 사실과 오해, 향후 쟁점을 확인했다.



경향신문

류호정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결이 정권 입맛에 안 맞으면 법관 탄핵한다?

법관 탄핵이 근래 여러 차례 회자된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이 나온 후 해당 사건의 재판부를 탄핵하자는 내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다. 판결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관을 탄핵하자는 것이 적절한 주장인지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반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현실을 방증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며 법관 독립을 규정한다.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하고, 권력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탄핵대상이 된다면 ‘사법부 길들이기’, ‘겁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은 특정 내용의 판결을 했기 때문에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사법농단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등이 사법행정권을 이용해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고, 재판을 놓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거래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사법행정권은 인사·예산 등 법원 조직 운영에 필요한 행정을 처리하는 권한을 말한다. 재판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사법행정권을 재판 개입·거래에 활용하면서 법관 독립을 침해했고, 그 목적 또한 주로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에 협조하자는 것이었다.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임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사법행정을 담당하던 형사수석부장 근무 시절 쓴 가토 타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관한 칼럼을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임 판사가 재판장에게 재판 중간에 어떤 발언을 하거나 판결 선고 때의 구술본을 수정할 것을 요청한 행위가 직권남용이라는 게 검찰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임 판사의 행위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임 판사의 형사재판 과정에서는 법관 독립의 의미,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한계가 쟁점이 되었을 뿐, 그가 판사로서 한 개별 판결의 내용이 쟁점으로 부각된 적은 없다.

경향신문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28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 청구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입장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관 탄핵이 법관 독립을 침해한다?

법관 탄핵은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절차다. 헌법 제106조 제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법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법관의 신분을 엄격하게 보장한다는 취지면서도, 예외적으로 ‘탄핵’에 의해서 법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법관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탄핵 제도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 제65조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 위반이나 법률 위반에 대해 탄핵소추의 가능성을 규정함으로써, 그들에 의한 헌법 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하며, 국민에 의하여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그 권한을 남용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다시 그 권한을 박탈하는 기능을 한다. 즉 공직자가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을 위반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탄핵심판 절차의 목적과 기능인 것이다.”(헌재 결정문)

이는 법관은 선출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모두 시민에 의해 선출되지만, 법관은 선출되지 않는다. 민주적 정당성이 선거를 통해 부여되지 않는 법관은 그러면서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선출된 권력으로 구성된 국회의 탄핵소추는 법관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국회는 소추를 할 수 있을 뿐 탄핵사유가 정당한지, 파면할 정도로 직무집행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 있는지는 헌재가 판단한다.

헌재에서 만든 헌법재판소법 주석서에는 “탄핵심판 제도가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직무상의 독립성은 법치주의의 불가결의 요소이지만, 또한 법치주의적 한계를 지닌다”고 나온다. 이어 “법관도 헌법과 법률에의 구속이라는 한계를 지니는 것”이라며 “이러한 한계와 구속은 그 위반 시에 법관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탄핵이라는 헌법적 책임과 형사소추라고 하는 형사법적 책임”이라고 돼있다.

법관 탄핵의 필요성은 법원 내에서도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8년 11월19일 전국 법원의 판사 100여명이 모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재판 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의결했다. 법관회의는 “(사법농단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고 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해 6월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헌적 행위를 한 법관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 질문에 “결국 우리 법은 그 사람을 도저히 법관의 직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경우엔 국회에서 탄핵을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하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경향신문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 안 끝나서 탄핵 못한다?

현재 법원에서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여러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에서 3차례 자체 조사를 한 끝에 일부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가 드러났지만,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 입장을 밝혔다. 수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검장으로 있던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했다. 당시 수사를 주도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다. 수사 끝에 검찰은 재판 개입과 거래가 확인됐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했다.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은 별개다. 형사재판은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는지(유·무죄 판단)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탄핵심판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경우 권한을 박탈해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다. 형사재판에서 반드시 ‘유죄’ 결론이 나와야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대로 헌재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 있다고 판단해 파면 결정을 하더라도 곧바로 형사상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있다. 국회는 2016년 12월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때는 최서원(최순실)씨는 기소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기소되기 전이었다. 헌재 심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소추취원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이 있는 형사재판 방식을 요구했는데, 헌재 재판부는 “탄핵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고 거듭 밝혔다.

사법농단 사건이 헌재 심판대에 오르게 되면 헌재는 임 판사 행위가 사법행정권자의 정당한 업무 범위 안에 속해있는지, 법관 독립을 침해한 것이 아닌지 등에 초점을 맞춰 심리하게 된다. 앞서 임 판사 사건의 1심 재판부도 임 판사 행위가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위헌적 행위’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경향신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8년 6월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의 놀이터에서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기 만료 법관에 탄핵 실효성 없다?

임 판사가 다음달 임기 만료로 퇴직하는 것이 변수이다. 어차피 임기가 만료되는데 굳이 탄핵소추를 할 실익이 있느냐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최근 미국 하원은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선 탄핵대상인 연방공무원이 탄핵절차 중에 사직했어도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탄핵심판에서 유죄가 결정되면 장래 공직을 담당하는 게 금지된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법 주석서에는 독일 연방법관 탄핵의 경우에는 탄핵절차 개시 후 법관의 신분이 상실됐다면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 국회법은 탄핵소추 의결 대상자는 권한 행사가 정지되고, 그의 임명권자는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다만 임기 만료·퇴직의 경우는 명확하지 않다.

임 판사 탄핵심판 심리가 복잡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탄핵소추만 된다면 임기 만료·퇴직 전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임 판사 행위에 대한 증거자료는 이미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모두 확보된 상태이고, 사실관계도 1심 판결을 통해 확인돼 있다. 헌재가 증인을 소환해 신문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를 거칠 필요가 많지 않고, 판단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은 “조속히 결론을 내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실제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방대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3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탄핵심판 심리가 임 판사의 임기 만료·퇴직 이후로 지연된다면 법복을 벗은 상황에서 파면 결정을 구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고 헌재가 각하 결정을 할 수 있지만, 탄핵소추 자체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상 각하 결정 땐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데, 헌재는 헌법소원의 형식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각하 결정을 하면서도 ‘헌법적 해명이 긴요히 필요하다’거나 ‘헌법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예외적으로 본안 판단에 나아간 사례가 다수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헌재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끝내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국회의 이번 탄핵소추가 ‘방역·민생·경제’ 입법 추진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의하면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보고하고,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하면 된다. 이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않은 탄핵소추안은 폐기된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페이스북 글에서 “일부에서 코로나하에 소상공인 피해보상 등 민생집중 국면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탄핵이 부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렇지 않다. 국민들은 현명하고 분별력이 있다”고 했다. 고 의원은 “2월 초 회기에 단번에 처리하고 헌재 판단에 맡기면 된다”며 “이는 윤석열 탄핵의 연장도 아니고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그 법들은 어떻게 문턱을 넘지 못했나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