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 별세, 현역 빅리거들 추모 메시지
배리 본즈와 행크 에런 |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가난과 차별을 극복한 '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의 부고가 전해지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추모 물결이 일었다.
에런이 세상을 떠난 23일(한국시간) 수많은 전·현직 메이저리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개인 통산 762홈런을 치며 에런의 개인 통산 홈런 기록(755개)을 넘어선 배리 본즈(47)는 SNS에 에런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올렸다.
본즈는 "나는 몇 차례 에런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영광을 누렸다"며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에런은 매우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썼다.
이어 "에런,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 당신은 선구자였고, 선례를 남겼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며 "우리 모두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행크 에런을 추모하는 공간 |
본즈의 말처럼 에런은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MLB닷컴은 이날 에런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에런은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한 인물"이라고 고인의 삶을 돌아봤다.
에런은 195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76년까지 선수로 뛰었다.
그는 3천298경기에 출전해 1만2천364타수 3천771안타(타율 0.305), 755홈런, 2천297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홈런은 본즈에 이어 2위다. 하지만 본즈가 '금지약물 복용 파동'을 겪은 뒤, 많은 이들이 에런을 '진짜 홈런왕'이라고 부른다.
타점 부문에서는 에런이 여전히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1위에 올라 있다.
에런은 23시즌을 뛰는 동안 24차례나 올스타에 뽑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59∼1962년, 한 시즌에 두 차례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에런은 이 기간에 늘 올스타에 선정됐다.
은퇴 후에도 에런은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선수로 기억됐다.
MLB닷컴은 "에런은 1982년 97.8%의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당시까지 에런보다 높은 득표율로 헌액된 선수는 98.2%의 지지를 받은 타이 코브뿐이었다"라고 전했다.
가난을 딛고, 빅리거로 성장한 에런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협박에 시달렸다.
특히 1973년 시즌 종료 뒤 개인 통산 713홈런을 쳐 베이브 루스가 보유했던 개인 통산 최다 홈런(루스의 기록은 714개)에 한 개 차로 접근하자 협박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MLB닷컴은 "당시에 '더그아웃에서 에런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라는 농담이 들릴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에런은 1974년 4월 9일 개인 통산 715번째 홈런을 치며, 메이저리그 새 역사를 썼다.
1974년 4월 19일,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넘어선 행크 에런 |
에런이 은퇴한 뒤에 태어난 선수들도 그의 업적을 잘 안다.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는 "에런을 보며 '경기장 안팎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 전설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브랜던 로(탬파베이 레이스)는 "어렸을 때 오직 '행크 에런관'을 보고자 명예의 전당을 찾았는데 불행하게도 당시 에런관이 공사 중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헬멧을 쓴 나는 매우 슬펐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에런은 모든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오른 대단한 선수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그의 인성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며 "에런은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였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야구 역사에서 늘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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