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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 뇌물까지 언급하며...이재용에 경영 훈수 둔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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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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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방법을 삼성 측이 스스로 분석해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지난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판결문에 지난 30여년간 일어난 삼성그룹 총수들의 범죄를 언급했다. 재판부가 스스로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힌 준법감시위 실효성 등을 언급하며 ‘보완할 점’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다. 재계와 법조계에선 “판사가 혐의에 대한 단죄나 양형 판단만 내린 게 아니라 준법감시위를 내세워 경영 훈수까지 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판부는 혐의 자체와 관련이 없고 양형에 참작되지 않은 준법감시위에 대해 A4 7장 분량의 기술을 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읽고도 재판부가 그리는 준법감시위가 무엇을 말하는 지 모르겠다는 법조인이 많다. 이 때문에 준법감시위를 둘러 싼 여론이 악화되자 재판부가 이를 의식하다보니 판결문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 범죄 망라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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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의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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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지난달 21일 공판에서 삼성그룹 총수 8가지 범죄를 지목하며 이 부회장 측에 소명을 요구했다. ①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전두환 전 대통령 뇌물 공여 사건 ②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 공여 사건 ③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씨 활동비 제공 사건 ④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⑤이건희 회장 가족 주택 공사비 횡령 사건 ⑥삼성그룹 임원 증권계좌 조세포탈 사건 ⑦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관련 배임 사건 ⑧사업지원 TF 소속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사건 등이 그 대상이었다. 주심인 강상욱 판사는 “이 사안들에 대한 대책이 이뤄졌고 법적 평가가 이뤄졌느냐를 묻는 것”이라며 “아무리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런 내용이 없다”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등을 검증하는 차원이라고 해도 1980년대 일어난 범죄까지 끌어들여, 대책 마련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이 재판부에서 따로 심리하지도 않은 과거의 일들에 소명을 요구하고 보완점 운운하면서 판결문에 적시하는 것은 재판부가 할 일이 아니다”며 “재판부가 말한 준법감시제도 마련 취지에서도 서너 발 더 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준법감시위와 이에 대한 작동과 모니터링 등만 간결하게 언급하고 판단하면 될 텐데 너무 장황하게 기술한 것 같다”며 “억지로 꿰맞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은 지난달 24일 “과거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 평가와 대책 마련이 이뤄졌고, 일부 과거 불법행위 유형은 현재 상황에서 재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여기엔 “특수관계자 거래가 있을 땐 준법감시위가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이사회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동의 장치를 마련했고, 대외 후원금 심의 과정을 강화하고 준법감시위에 후원금 승인 내역을 사후 통지하게 했으며, 관계사와 총수일가 사이 거래도 준법감시위원회 감시 대상에 포함했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론 떠보기 재판 아니냐”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에 대해 A4 7장을 적은 내용을 요약하면 준법감시위가 ‘선제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실효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강화된 준법감시제도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화하지 않았고,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말하는 준법감시위의 모습을 그리는 게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준법감시위는 형법 51조에서 정한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해 양형 조건 가운데 참작할 수 있다”며 “어떤 부분에서 삼성 측 노력을 인정하는 듯이 말하다가도 양형 참작에 엄격하게 판단해야 된다고 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한 마디로 지금 준법감시위는 기능을 못한다는 것인데, 재판부의 판결문을 반복해 읽어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삼성 측으로선 답답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더 나가' ‘보완할 점’이라는 대목으로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일종의 경영 훈수라는 비판도 나온다.재판부는 2019년 10월 첫 재판에선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당시에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이라는 논란이 거셌다. 이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네”라고만 답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 제의를 한 것 자체가 잘못이란 지적도 나온다.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한 얘기를 하는 것은 법원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자산 400조원이 넘고, 50만 직원을 둔 삼성에 큰 영향을 주는 권고를 해 온갖 뒷말이 나오게 해놓고 여론이 심상치 않으니 덮은 것처럼 보인다”며 “여론 떠보기 재판이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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