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운영사업체 美전체 2.2%불과…대부분 1인사업체
경영능력 부족 아닌 대출제한 등 구조적 인종차별
“흑인사업체 부족은 흑인사회 개발 더 어렵게 만들어”
바이든 정부, 미국 내 ‘불평등 개선’을 우선순위로
흑인사정 잘아는 인사들 행정부 주요자리 포진
흑인사회에 실질적 도움 될 정책 설계·실행 전망
美 싱크탱크들 흑인 사회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
매출, 비흑인회사 수준땐 美회사 총 매출 ‘퀀텀점프’
“흑인기업가 비율 낮은 분야서 흑인경영인 배출해야”
미국 민주당의 원내서열 3위이자 흑인 대표 정치인으로 통하는 제임스 클라이번 원내총무는 최근 다소 엉뚱할 수 있는 제안을 했다. 엉뚱하다는 건 미국 사회의 생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에서 내리는 판단이다. 그는 흑인 사회에선 자체적인 국가(國歌)로 통하는 ‘리프트 에브리 보이스 앤 싱(Lift Every Voice and Sing)’이라는 노래를 다른 인종, 사회도 부르게 하는 ‘전국구 국가’로 만드는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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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흑인은 수십년간 학교에서, 각종 시상식에서, 졸업식과 교회 예배 때 이 노래를 불러왔다. 미국엔 엄연히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라는 국가가 이미 있는데, 흑인들이 애창하는 곡을 또 하나의 국가로 하자는 주장이다.
이유를 들여다보면 미국과 그 땅에 사는 흑인의 상처를 어림할 수 있다. 클라이번 원내총무는 “내 생각엔 그 노래를 국가로 하는 건 이 나라를 하나로 묶는 행동”이라며 “치유의 움직임이 될 수 있고, 모든 이들이 그 노래로 서로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리고 말했다. 차별과 홀대로 억압받았던 흑인의 심리가 드러난다.
비무장한 흑인을 경찰관이 살해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충격이 흑인을 중심으로 한 유색인종 사회에 특히 가혹한 상황이어서 미 언론은 이런 제안을 흘려 듣지 않는 듯하다.
물론 전문가는 흑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국가로 정한다고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피부색이 하얗지 않다는 이유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겪게 되는 가혹한 현실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인의 노예로서 눈물의 역사를 써 온 미국의 아프리카계 흑인은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격언을 이제 몸소 체험할 시대에 살게 되는 분위기다.
잘 나가던 미 경제를 뒤뚱거리게 만든 코로나19가 판을 바꿨다.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수조달러의 유동성을 주·지방 정부와 민간에 쏟아 부어도 경제가 즉각적으로 살아날 거라는 확신이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가득찼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행정부가 나라 곳간을 활짝 열어 천문학적인 돈을 각종 경제 주체에게 나눠 주려는 심산과 별개로 미국은 돌파구에 목말라 있다. 연방정부가 미국인에게 하염없이 2000달러의 현금을 무한정 지급할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대표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흑인 사회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미 경제가 확장하는 데엔 흑인이 핵심 키를 쥐고 있다고 했다.
▶흑인 사업체 경영, 비(非)흑인 사업체와 동등해지면 미 경제 팽창=브루킹스연구소는 인구조사국의 2017년 연간 비즈니스 조사 등을 바탕으로 흑인이 경영하는 사업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미국이 어느 정도의 ‘기회의 땅’인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간단치 않은 숫자가 도출됐다.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단번에 드러난다. 미국 전체 인구(3억3200만여명) 가운데 흑인은 14.2%를 차지한다. 그러나 흑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고용주 사업(1인 이상 채용 기업 570만개)의 2.2%(12만4004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흑인 소유 사업체는 개인기업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기업주 조사(2012년)에 따르면 흑인 소유 사업체의 불과 4.2%만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백인 소유 사업체의 이 비율은 20.6%다. 브루킹스연구소는 “흑인 성인은 고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고, 흑인 업체는 흑인 근로자를 고용할 확률이 높다”며 “흑인 사업체의 부족은 흑인 사회 개발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흑인 사업체가 비흑인사업체와 동등한 수·경영상태로 올라서면 어떻게 될지를 가늠해봤다.
12만4004개인 흑인 사업체 수가 미국 내 흑인 인구 비율인 14.2%까지 증가하려면 80만6218개의 흑인 회사가 더 생겨야 한다. 현재 흑인 사업체의 연매출은 103만1021달러다. 비흑인 사업체는 648만6334달러라고 한다. 흑인 회사의 매출이 비흑인 회사 수준이 되면 미 회사의 총 매출은 퀀텀점프를 하게 된다는 전망이다. 현재 1280억달러인 게 8040억달러로 6배 이상 껑충 뛴다.
고용도 달라진다. 흑인 사업체는 회사당 평균 1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비흑인 사업체는 23개다. 흑인 사업체당 평균 근로자가 23명까지 늘어나면 대략 16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흑인 회사는 직원에게 평균 2만9882달러를 지급한다. 비흑인 회사는 5만1357달러다. 흑인 사업체의 급여 지급 수준이 비흑인 회사처럼 되면 이들 근로자는 총 250억달러의 임금 증가를 보게 된다.
▶재주가 없어서 흑인 회사가 적다?=흑인은 경영 능력이 부족해 미국에서 이런 불균형이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브루킹스연구소는 지적했다. 구조적 인종차별이 있는 격동의 역사가 원인이라고 했다.
흑인 가구는 부의 축적에 필요한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8년 소득·프로그램 참여도 조사(SIPP)에 따르면 소득 중위 흑인 가구의 부(9000달러)는 비흑인 가구(13만4520달러)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흑인 거주지 주택은 미 전역에 걸쳐 1560억달러 이상 평가절하돼 있다. 이는 흑인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쓰는 평균 금액을 감안했을 때 400만개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액수라는 설명이다.
사업체 조사 분석을 보면, 미국 내 새로운 사업의 90%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지 못한 채 시작하기 때문에 주택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는 데 이게 저평가받는 건 사업을 염두에 둔 이들에겐 큰 난관이다.
흑인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상무부와 스탠포드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흑인 사업체 소유주의 1%만이 회사 출범연도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백인 사업체 소유주의 이 비율은 7%다. 연방준비제도(Fed) 자료를 보면, 흑인 기업가의 은행 대출 거절 비율은 53%다. 백인(25%)의 배 이상이다. 일단 대출을 받아도 흑인 등 유색인종은 백인보다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상무부 산하 소수인종사업개발청(MBDA)의 데이터에 따르면 7.8%대 6.4% 가량이다. 자금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설립자의 1%만 흑인이라는 자료(CB인사이트)도 있다.
이런 이유들로 흑인 사업체는 특정 분야에 쏠려 있는 걸로 나타난다. 흑인 회사 전체의 3분의 1 가량이 헬스케어와 사회 지원 분야로 파악된다. 흑인 여성이 이같은 회사의 54%를 갖고 있다. 비흑인회사 가운데 헬스케어, 사회지원 분야에 속한 건 11%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출을 많이 내는 제조업, 도매업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적은 곳을 찾다보니 헬스케어 쪽에 몰린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산업에 대한 투자는 흑인 기업가의 비율이 낮은 분야에서 흑인 경영인을 키우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디베리 브론즈인베스트먼트 설립자는 “우린 대기업이 수십억달러를 흑인 사업체를 위해 내놓고 있다는 걸 안다”며 “그러나 그들의 상당수는 흑인에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최대한 이용할 방법은 흑인이 있는 금융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흑인이 이끄는 고성장 사업에 투자된다. 미 경제 회복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준비태세 마친 바이든 내각·정치권=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진단이 나왔기에 처방도 뒤따라야 한다. 관건은 정치인데, 바이든 당선인이 불평등 개선을 우선순위에 올려 놓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흑인의 사정을 잘 알고, 차별의 세월을 딛고 살아온 인사들을 행정부 주요 자리에 포진시킨 게 바이든 당선인이 이끌 미국의 행보를 짐작케 한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중심으로 마르시아 퍼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지명자, 세실리아 라우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지명자가 흑인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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