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여름 발매되는 월희 리메이크 (사진출처: 트레일러 영상 갈무리) |
2000년 발매 당시, 월희는 보통 고등학생처럼 보이던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보자마자 대뜸 17조각으로 절단해 살해하고, 얼마 후 멀쩡히 살아난 그녀를 만난다는 충격적인 도입부와 몰입도 높은 전개로 일약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월희의 인지도를 밑바탕 삼아, 아마추어 동호회였던 타입문은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매된 지도 20년이 넘은 작품이다 보니, 페이트 시리즈로 입문한 게이머는 월희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노츠의 반석이 된,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나 리메이크로 돌아오는 월희는 대체 어떤 내용일까?
기업이 아닌 아마추어 동호회로 시작한 노츠,그리고 그 반석이 된 월희
▲ 타입문 결성과 기업화 과정을 다룬 서적 ‘타입문의 궤적’ (사진출처: YES24) |
타입문 결성과 기업화 과정을 다룬 서적 ‘타입문의 궤적’에 따르면, 동호회 타입문은 일본 게임 제작업체 컴파일에 근무하던 일러스트레이터 타케우치 타카시(본명 타케우치 토모타카)가 퇴사하며 시작했다. 컴파일은 환세희담과 뿌요뿌요 등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게임들을 제작한 기업이었지만, 1990년대 말 투자실패와 부진한 매출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1998년에는 급기야 구조조정까지 진행했는데, 타케우치도 이 시기 컴파일을 떠나야 했던 퇴사자 중 하나였다.
▲ 컴파일의 부도가 타입문을 낳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그렇게 타케우치 타카시는 나스 키노코를 설득해 ‘타케보우키’라는 동호회 사이트를 만들고, 자신이 그림을, 나스가 소설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여기서 나스가 연재한 소설이 이후 월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공의 경계’다. 공의 경계는 초자연적인 힘을 타고난 다중인격 소녀 료우기 시키가 같은 반 친구 코쿠토 미키야와 관계가 깊어지고 감정적 동요를 겪는 가운데 차츰 기이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내용을 다룬 어반 판타지다.
▲ 국내에서도 인기 배우 전지현이 추천해 화제가 됐던 소설 공의 경계 (사진출처: YES24) |
당시 공의 경계는 정식으로 출판된 소설이 아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나름 두터운 팬 층을 모았다. 이에 자신들의 창작물에 확신을 얻은 타케우치 타카시는 이듬해인 1999년 인지도 확장을 위해 공의 경계와 설정을 일부 공유하는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컴파일 시절 알고 지내던 옛 직장 동료들과 함께 ‘타입문’이라는 별도 동호회를 설립해 게임을 만들고, 이를 거대 동인지 행사 코믹 마켓에서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나온 게임이 바로 월희였다.
설정을 공유하긴 하지만, 월희는 소설 공의 경계와 직접 연결되진 않았다. 월희는 공의 경계에서 언급된 초자연적 힘을 지닌 4대 퇴마 가문이나, 다중인격 살인귀, 사물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는 시야 ‘직사의 마안’ 등 주요 설정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공의 경계 인물이 직접 등장하거나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으며, 제재(題材)도 소설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뱀파이어로 선정됐다. 일종의 평행세계를 무대로 하는 다른 내용의 게임이었던 셈이다.
▲ 당시에도 썩 잘 그린 건 아니었던 월희 커버 이미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발매 당시 월희의 ‘순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포악한 이중인격과 초자연적 살상기술을 지닌 주인공’이나, ‘시작부터 열일곱 조각으로 절단돼 살해되지만 재생해서 주인공을 찾아오는 뱀파이어 여주인공’ 같은 충격적인 설정과 전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월희는 기업에서 정식 출시한 게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으며, 동호회 시절부터 다양한 파생 게임과 영상물이 발매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 월희가 소설 공의 경계를 인지도를 뛰어넘자, 마침 자체 게임 제작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던 타케우치 타카시는 아예 동호회 타입문을 기업화 할 포부를 품게 됐다. 결국 타케우치는 2003년 4월 활동을 마지막으로 타입문 활동을 종료한 후 유한회사 노츠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다만 그렇게 노츠를 세운 후에도 타입문이라는 이름은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하며 동일 세계관 게임을 제작했으니, 즉 노츠는 타입문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회사 이름은 노츠지만, 여전히 브랜드명으로 타입문을 사용 중이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이러한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노츠는 차츰 다양한 페이트 시리즈와 미디어믹스를 출시했고, 2007년을 기점으로는 성적 요소를 배제한 전연령판을 출시해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페이트 시리즈에 집중하는 동안 노츠의 반석이 된 월희는 계속 방치되어 있었다. 물론 주기적으로 월희 리메이크나 월희 2가 언급되긴 했으나, 실질적 진전은 20년 가까이 없었다.
아 ‘17분할’ 아시는구나~ 시작부터 충격적인 전개의 스토리
▲ 월희의 다섯 여주인공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당시 일본 성인게임의 표준 방식을 따라 월희도 다수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며, 그 중 어떤 여주인공과 관계를 쌓는지에 따라 다른 스토리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여주인공은 다섯 명이지만, 뱀파이어 공주 알퀘이드가 기본 여주인공으로 상정된다. 알퀘이드 스토리에도 다른 여주인공이 등장하긴 하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아예 조연으로만 나온다.
▲ 가장 비중 높은 여주인공인 알퀘이드 (사진출처:타입문 팬덤 위키) |
그런데 게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오노 시키는 길거리에서 스친 한 금발 여성에게 알 수 없는 살의를 느낀다. 살의에 미친 그는 여성의 뒤를 밟아 따라가 집을 확인한 후, 초인종을 눌러 여성이 나오자 마자 집에 침입해 그녀를 살해한다. 마술 안경을 벗은 토오노 시키는 ‘직사의 마안’ 덕분에 여자의 온 몸을 따라 보이는 치명적인 약점들을 베어 순식간에 17조각으로 분해해버리고, 뒤늦게 제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자각해 도망친다.
여기까지의 전개만 봐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생긴다.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될까 숨 졸이며 살고 있던 토오노 시키에게 그가 살해한 금발 여성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사실 토오노 시키 본인은 몰랐지만 그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퇴마 가문의 후예였으며, 그가 죽인 여자는 막강한 뱀파이어 공주였다. 즉, 토오노 시키는 뱀파이어 공주의 기운을 느끼자 괴물을 처단하고자 하는 본능에 저도 모르게 그녀를 살해한 것이다.
한편, 뱀파이어 공주 알퀘이드에게도 나름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흡혈생물인 ‘진조’의 최후 생존자인데, 자신을 속여서 일족을 멸망하게 한 다른 뱀파이어 ‘로아’를 찾고 있었다. 로아는 진조에게 물린 인간이 변이해 만들어지는 뱀파이어인 ‘사도’로, 그는 알퀘이드가 본의 아니게 만든 사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생전 마술사였던 로아는 퇴치된 후에도 미리 걸어 둔 마술 의식으로 환생을 거듭하며 살아났고, 그때마다 알퀘이드는 그를 퇴치하러 다니길 반복하고 있었다.
▲ 게임 중 등장한 환생하는 뱀파이어 로아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결국 흡혈충동에 시달리던 알퀘이드는 어쩔 수 없이 토오노 시키를 하수인 삼아서 게임 무대가 되는 도시에 환생한 로아를 찾는 일을 돕게 만든다. 토오노 시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퀘이드의 탐색에 합류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뱀파이어, 교회에서 보낸 뱀파이어 사냥꾼 수녀, 일본의 퇴마 일족 등과 조우하게 된다. 선택지에 따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이 되는 뱀파이어 쪽 내용은 이러한 흐름으로 진행된다.
▲ 알퀘이드나 사냥꾼 수녀 ‘시엘’과 함께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전개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진조가 사도를 만들면 자신의 힘 중 일부를 하사하게 된다. 그렇기에 알퀘이드의 힘 중 일부는 로아에게 흘러 들어가 있다. 이에 알퀘이드는 힘을 되찾고 복수를 이루기 위해 대대로 로아를 찾아 죽여왔으나, 상대가 전생을 거듭한 바람에 계속 완전한 퇴치에는 실패하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의 관계는 애증에 가깝다. 로아는 전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알퀘이드를 기다리고, 알퀘이드는 그를 찾아 죽이는 관계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결국 토오노 시키와 알퀘이드는 교회가 로아를 추적하기 위해 보낸 사냥꾼이자, 과거 로아에 몸을 빼앗겼던 숙주 중 하나이기도 한 수녀 시엘과 함께 한 끝에 로아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싸움 끝에 로아는 존재의 형이상학적 죽음을 보고 이를 물리적으로 찔러서 소멸시킬 수 있는 ‘직사의 마안’을 가진 토오노 시키에게 영혼까지 소멸당하고 만다. 그렇게 로아의 소멸과 함께 월희 뱀파이어 스토리는 마무리된다.
다만 본가 여동생이나 하녀들을 중심으로 선택지를 고를 시에는 뱀파이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쪽에서는 일본 퇴마 가문들 사이에 얽힌 피비린내 나는 과거와, 주인공 토오노 시키가 옛날 기억이 불분명하고 특별한 힘을 지닌 데 대한 숨겨진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역시 뱀파이어 스토리와 아예 무관하지는 않으며, 나름대로 중요하게 연결되는 내용도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알퀘이드가 쫓던 로아의 환생은 여기서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을 때는 백발에 적안으로 등장하는 진짜 토오노 시키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게다가, 진짜 토오노 시키가 발작을 일으킬 때 주인공은 한 번 살해된 적이 있었다. 이에 그를 흠모하던 여동생 토오노 아키하가 자신에게 내재된 요괴의 힘을 사용하여 자기 생명력을 전이해 살려냈지만, 그 반작용으로 토오노 아키하는 요괴의 성질이 강하게 발현돼 차츰 인간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토오노 아키하는 하녀들의 피를 빨아 마시는 방식으로 요괴성의 발현을 억누르는 임시방책을 사용하고 있었다.
▲ 어릴 때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력을 전이했고, 그 결과 요괴의 성질이 강하게 발현되기 시작한 토오노 아키하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이렇듯 월희는 충격적인 스릴러 전개로 시선을 잡아 끌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현대 도시 이면에 숨어 살아가는 뱀파이어나 마술사 비밀결사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어반 판타지에 가깝다. 또한 원작이 성인게임인 만큼 주인공 토오노 시키와 여주인공들의 로맨스에도 꽤나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월희의 다양한 파생작, 혹시 ‘페이트’와도 이어지나?
월희 관련 콘텐츠 중 가장 처음 출시된 것은 당연히 2000년 나온 게임 월희다. 월희는 아마추어 동호회였던 타입문이 한정된 자원으로 만든 게임이었기에 제작 과정도 그리 순탄치 못했다. 제작이 지연되자 타입문은 발매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이른바 ‘반월판’으로 불리는 선행 공개 버전을 먼저 출시했다. 반월판은 알퀘이드를 중심으로 한 뱀파이어 스토리와 퇴마 가문의 과거를 조명하는 토오노 가문 스토리 중 전자만 담고 있었다. 즉 반월이란 월희 전체 내용 중 절반만 담았다는 뜻이었다.
▲ 정식 버전 출시에 앞서 나온 반쪽짜리 버전 ‘반월판’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 완전판 월희 커버 (사진출처: Ebay) |
▲ 국내에도 정식 발매된 만화 ‘진월담 월희’ (사진출처: YES24) |
▲ TVA ‘진월담 월희’는 아마 제작진이 몹시 그리기 귀찮았던 모양이다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 격투게임 ‘멜티 블러드’는 2011년까지 4개의 게임이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됐다 (사진출처: 스팀) |
▲ 외전의 미디어믹스 ‘멜티 블러드’ 만화판 (사진출처: 알라딘) |
▲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나온 시온, 멜티 블러드 때와는 이미지가 사뭇 다르다 (사진출처: 타입문 팬덤 위키) |
▲ 마법사들 간의 암투를 다룬 마법사의 밤도 공간적 배경은 월희와 같은 도시다 (사진출처: 노츠 공식 홈페이지) |
이렇듯 월희는 20년도 더 전에 나온 아마추어 게임 치고 대단히 많은 만화와 영상물로 미디어 믹스가 됐으며, 노츠의 다른 게임과도 느슨한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갈수록 게임간 접점이 확장되고 있는 만큼, 2021년 여름 나올 리메이크판에서는 설정 공유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월희와 페이트 시리즈 사이에 더욱 많은 크로스오버를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 이번에도 충격적인 시작 장면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공식 트레일러 갈무리) |
게임메카 이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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