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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알페스가 "제2의 n번방" "성착취물"이라니 [이슈있슈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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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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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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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페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발단은 래퍼 손심바였습니다. 손심바는 지난 10일 자신의 SNS에 알페스를 “성범죄”라며 공론화했습니다. 다음날 “알페스 이용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14일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2일부터 알페스를 “제2의 n번방 사태”라 칭하며 “딥페이크뿐 아니라 알페스를 디지털 성범죄에 포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팬덤 하위 문화인 알페스가 ‘성범죄’로 소환된 이유

팬덤 하위 문화인 알페스가 ‘성범죄’로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페스를 ‘n번방’ ‘성착취물’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요.

알페스는 ‘RPS(Real Person Slash)’를 한국어로 읽은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실존 인물을 커플처럼 엮어낸 2차 창작물을 뜻합니다. 미국에서 드라마 <스타트랙> 팬덤이 기존 드라마 줄거리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시초입니다. 이야기 상당수가 사랑을 주제로 했고 성애 묘사도 포함했습니다. ‘커크/스팍’처럼 커플로 엮은 사람을 슬래시(Slash)로 표기했는데요. 이 표기에서 유래해 '슬래시 픽션'은 팬들이 작품 속 인물을 커플로 엮어 성애 묘사를 담아 창작한 소설을 뜻합니다. 알페스는 실존 인물도 포함되는 것이죠. 동성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알페스 문화는 1990년대 말 H.O.T 등 아이돌 1세대가 등장했을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당시에는 ‘팬픽’(팬 픽션·팬이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해 창작한 소설)이라 불렸습니다. 팬픽엔 로맨스 장르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팬픽 문화보다 확장된 알페스에는 글로 만들어진 콘텐츠뿐 아니라 영상, 그림 등도 포함됩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난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알페스는 아이돌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예능 등에 나온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상상으로 엮어서 만든 2차 창작물이다. 팬덤 문화 안에서도 하위 문화로 취급돼 음지화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 평론가는 “말 그대로 ‘(커플로) 엮는 것’이기 때문에 브로맨스, 가상 연애 등 소재를 내세워 만든 프로그램들도 알페스 코드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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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6월 서울 장충체육관에 모여 있는 H.O.T 팬들.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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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논란이 됐던 건 알페스의 ‘수위’였습니다. 국민청원을 올린 청원자는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지나치게 묘사하는 행태가 “남성 연예인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아니냐고 적었습니다. 하 의원이 알페스를 n번방과 연관 짓고 “성착취물”이라 명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알페스와 n번방, 성착취물을 “등가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황 평론가는 “성적 대상화는 성적 지배에 가깝다”며 “여성 아이돌 팬 사인회에서 무작정 손을 잡거나, 불법촬영을 하거나, 아이돌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 ‘왜 기분 나쁘냐’고 윽박 지르는 것이 오히려 성적 지배고 성적 대상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알페스와 소라넷, n번방 등에 신상 등이 유포돼 생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대등하게 놓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RPS와 관련해서 ‘실존하는 인물에게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논의는 항상 등장했다. 그러나 성적 모욕감과 성착취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성착취가 왜 문제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성적 대상화는 성차별로 이어지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물론 인신의 다양한 권리를 침해하면서 성착취로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문제인데,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프레이밍하는 건 문제”라고 했습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페이스북에 “오래된 강간문화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만나 열린 ‘소라넷-디지털 성범죄-n번방’ 이후의 ‘이루다 사태’와 알페스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제2의 n번방’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밝혔습니다.

누리꾼들도 성착취, n번방과 연결지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알페스와 n번방 문제를 동치시키며 ‘성착취’라는 단어를 언급했다는 것은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이며 젠더권력 행사로 보인다”며 “여성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일반인 여성의 사진을 전시하고 품평하는 남초 사이트 게시판 등 여성혐오 성범죄들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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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트레이스가 지난 2019년 펴낸 보고서 ‘The State Of Deepfakes-Landscape, Threats, and Impact’ 발췌. 딥트레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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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예인 사진 합성한 ‘딥페이크’야말로 범죄…K팝 아이돌 나오는 딥페이크 포르노 25%

연예인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는 ‘딥페이크’에서 보다 심각합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반의 이미지 합성 기술을 뜻합니다. 타인의 얼굴 등을 불법촬영물 등 성착취 영상에 합성해 유포하는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연예인이 타겟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 연예인의 피해는 통계로도 증명됩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이버 보안 회사 ‘딥트레이스(Deeptrace)’가 2019년 펴낸 보고서 ‘The State Of Deepfakes-Landscape, Threats, and Impact’에 따르면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웹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엔 오직 여성만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K팝 가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25%에 달합니다.

지난 13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자는 “딥페이크는 엄연한 성폭력이다. 여성 연예인들의 영상은 각종 SNS에 유포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성희롱, 능욕 등 악성 댓글로 고통받고 있다”며 “미성년 여자 연예인들도 공공연하게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에 딥페이크 사이트, 이용자들의 강력한 처벌과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청원이 올라온 지 하루 만에 30만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딥페이크처럼 허위 영상물을 만들고 배포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합니다. 해당 법 제 14조의2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작·유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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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스가 ‘논란’으로 불거지게 된 맥락이 ‘백래시(역습)’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황 평론가는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 대한 성착취 논란이 일어난 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자들은 팬픽 하는데’라는 말이 터져나왔다”며 “보복적 담론으로 배출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황 평론가는 “팬들이 엮는 사람들을 기획사가 눈여겨 보고 (짝으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 (알페스에는) 기획사와 팬 사이에서 축적돼온 내부 문화도 중첩돼 있다”며 “알페스에 대해 ‘어디까지 가능할까’에 대해 논의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내로남불’로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알페스를 “남성 역차별 논의”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성애 중심주의, 성소수자 대상화, 성적 모욕감 등 (RPS가 낳은) 다양한 윤리적 쟁점에 대해선 논의가 진행돼 왔고, (팬덤 사이에서) 보다 윤리적인 재현 방식을 고민해온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RPS는 성착취’라는 구도를 의제화하려는 시도에는 결국 ‘남성도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데 모른 체 한다’ ‘남성도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성범죄, 성착취의 속성, 문제, 성차별의 의미를 편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RPS가 남성 간 성애 묘사만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RPS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하고 싶었다면 남자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 배우 등 ‘연예계 인물’이어야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알페스에 아이돌 산업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RPS를 즐기는 팬덤 문화 안에서는 ‘페어(짝)’가 되지 않는 사람은 ‘인기가 없는 사람’과도 같다. 기획사도 인기의 일부로 인지한다”며 “산업의 이해관계 탓에 RPS가 회색지대로 남게 된 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리꾼들도 알페스를 성별 대결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알페스는 팬덤 하위문화 내에서도 정당화가 어려운 지점이 있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라며 “알페스 ‘자체’를 문제 삼고 싶었다면 아이돌 전반으로 넓혀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여성들에게도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고 싶었던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다른 이용자도 “‘너네도 이런 거 본다며!’ 식으로 남성들의 성문화를 정당화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반격의 도구로 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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