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보고' 전문가 분석…"대미 기선제압 의도·핵군축 회담 시도 가능성"
"연합훈련이 남북관계 시험대"…"남북관계 기대 크지 않을 수도"
김 위원장은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밝혔고, 남측을 향해서는 '근본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면서 첨단군사장비 반입 및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적대정책 철회'나 '3월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의 요구가 수용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은, 당대회 3일차 사업총화보고 |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에 대해 기선 제압용으로 해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라며 "이는 향후 미국 새 행정부와의 협상을 감안한 기선 제압 차원이자 협상 의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는 비핵화에 대한 약속도 없이 미국의 선(先) 양보를 요구한 것이어서 향후 북미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당대회에서) 비핵화라는 단어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며 "북한은 향후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의 핵 능력을 축소하는 핵 군축 회담으로 가자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이 문제를 풀려면 미국이 먼저 양보할 것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이는 기존과 달라진 것이 없는 태도"라며 "오히려 북한판 전략적 인내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북한이 공을 넘긴 만큼 미국이 향후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김준형 원장은 "당대회의 메시지를 '북한은 미국의 양보가 없으면 계속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단정하면 강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을 추인하거나 북한과 협상에 관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신문 읽는 북한 노동당대회 참석자들 |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당장 3월 한미연합훈련이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양무진 교수는 "당장 3월 한미군사훈련 문제가 북한이 남북관계에 나올 일차적 준거로 볼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가 미국 새 행정부와 군사훈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같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 자체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남측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이는 명분 축척용으로 보인다"면서 "우리가 수용하기 쉽지 않은 조건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내심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박원곤 교수도 "한미군사훈련은 축소하거나 유예할 수도 있지만, 전력증강계획 중단 조건은 한국이 받을 수가 없다"면서 "북한은 향후 얼마든지 남한을 핑계 삼아 공세를 가할 가능성도 열어둔 것"이라고 봤다.
특히 북한이 그동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제시한 인도주의·방역·개별관광 관련 협력방안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도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남북관계 타개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통일부 입장에서는 남북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 상호 간의 노력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놔야 한다"면서도 "실제 추진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조정이나 체계적인 군사 대화 제의, 남북 합의이행을 위한 실무그룹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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