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이낙연 “MB·朴사면 文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통합 이미지 만들어 중도 잡고 野 분열까지 노린 다목적 포석
이 대표는 이날 서울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과 함께 전진하려면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청와대는 “실제로 사면 건의가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지만, 여권(與圈) 핵심부에선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전에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이 대표가 새해 첫날부터 ‘이·박 사면’을 꺼낸 것은 4월 보궐선거는 물론 내년 3월 대선까지 노린 ‘다목적 카드’로 해석된다. 지난해 추미애 사태와 부동산 등 민생 악화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층의 이탈 속도가 빨라졌다. 여권 입장에서 ‘이·박 사면’ 카드는 중도 및 보수층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사과 문제로 갈등했던 야권의 재분열을 노리는 이중 포석이 될 수 있다. 이낙연 대표 개인 입장에서도 ‘이·박 사면’이란 ‘논쟁적 이슈‘를 통해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대법원 재상고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이날 형이 확정되면 언제든 사면이 가능하다.
야권은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여당의 야당 분열책”이라는 경계 분위기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면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만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의원과 친박계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 등은 “환영한다”며 “설(2월 12일) 또는 3·1절 특사를 기대한다”고 했다.
4년간 적폐청산 몰아쳤던 與, 선거 다가오자 ‘통합’ 카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새해 첫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赦免) 카드를 꺼내들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년 동안 ‘적폐 청산’으로 지지층 중심 국정을 폈던 여권이 사면 같은 통합 정책으로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지난해 정치 측면에선 ‘윤석열 찍어내기’로, 민생 분야에선 부동산 실정(失政)과 백신 논란이 이어지며 최근 지지율이 하락세다. 내년 3월 대선(大選)의 전초전 성격을 띤 보궐선거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자 중도층을 끌어안고 부수적으로는 야권의 분열도 야기할 수 있는 사면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민주당이 선거 뒤집기 전략을 가동한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이·박 사면’으로 선거 구도를 흔들고, 4월 보궐선거 전 대규모 부동산 공급 대책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 등을 처리해 수도권과 부산 민심을 잡은 뒤,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방역 민심까지 잡는 ‘단계별 시나리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낙연(왼쪽 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오른쪽 사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각각 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참배를 마친 뒤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대표의 사면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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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민주당은 다음 달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쟁점인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대규모 공급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임식에서 도심 내 저렴하고 질 좋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방안을 2월 설 연휴 전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도 다음 달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당·정·청(黨政靑)은 지난주 회의를 갖고 2월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심을 악화시켰던 핵심 사안들에 대해 보궐선거 전까지 모두 해법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당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박 사면’을 언급한 것은 이번 보궐선거가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 개인의 정치적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에 비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지휘하는 보궐선거에서 패할 경우 책임론이 제기돼 이 대표의 정치적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들고나온 것은 청와대와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을 마친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여권 핵심부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논의한 것은 오래됐다”고 했다. 이 대표가 최근 문 대통령을 2차례 독대하는 가운데 사면 문제가 거론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낙연 대표가 사면 관련 공개 발언을 하기 전에 우리 측 인사와 통화하면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이란 취지의 얘길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이 대표의 사면 언급에 긍정·부정 평가 없이 “이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한 만큼, 실제 건의를 하면 그때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여권에선 ‘이·박 사면’에 “박 전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된 사회 갈등을 푸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4선(選)의 우상호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은 탄핵과 처벌이 잘못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의도치 않게 인정하게 될 수도 있는 데다, 자칫 국론 분열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이 대표는 사퇴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이낙연 지지를 철회한다” “촛불은 우리가 들었는데, 왜 이낙연 마음대로 사면이냐” 등 비판 댓글이 수백 개 달렸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도 “당장 사과하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박근혜를 사면하면 최순실은 용서하지 않을 도리가 있느냐, 이 대표는 입장을 철회하라”고 했다.
이 대표도 여권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감안하고 사면 카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문 대통령이 직접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 필요성을 언급하면 자연히 사그라들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대표도 당내 반발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며 “당장의 반발보다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황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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