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골수 ‘팬’, 골수 ‘안티’와 박빙의 대결 펼쳐
코로나19로 트럼프 정부 경제 성과도 무색해져
유권자들, 미국의 최대 과제로 ‘코로나19’ 선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인 질 여사와 함께 재향군인의 날인 11월 11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쓴 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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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현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몰락과 전 부통령 바이든의 승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에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이래 231년간 백악관을 거쳐간 미국의 대통령들은 총 45명. 이 중 연임을 원했지만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전까지 단 10명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한 미국의 11번째 대통령이 된 셈이다.
트럼프에 앞서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은 흔히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로,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패배했다. 이후 트럼프가 28년 만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막강한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을 갖고도 뼈아픈 패배를 당한 것은 임기 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에 직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민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공직 경력이 전무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일관되게 직설적이고 즉흥적이며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으로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정치인으로서 금기시되는 인종차별, 장애인 비하, 여성혐오 등의 발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이란 핵협정 탈퇴,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 국제 규범에도 개의치 않았다.
해외주둔 미군 철수 카드를 지렛대로 미군 주둔국에 천문학적인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 기업 경영하듯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로 포장돼 골수 지지층을 형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트럼프 정부의 진정성이 결여된 태도, 뒷북 대응, 경기 침체 등이 이어지면서 민심은 서서히 ‘현직’으로부터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11월 1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있다.[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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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를 거부해 수 차례 물의를 일으켰고, 급기야 자신을 포함한 미 정부 핵심층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또 확진 판정을 받고도 차를 타고 대중들과의 소통에 나서는 등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성격 역시 그의 부정적인 면모를 더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국면에서 미 대선이 치러진 점도 승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초기부터 ‘독감’에 비유하며 위험성을 과소평가했지만, 바이든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거리두기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에 빠졌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올초만 해도 사상 최고의 주가지수, 최저 실업률을 자랑하던 트럼프 정부의 실적이 한 순간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는 트럼프 골수 지지자와 반트럼프 세력이 집결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골수 팬’과 ‘골수 안티’의 대결은 박빙으로 전개됐지만,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코로나19 대응에서 승부의 추는 바이든 쪽으로 기울었다.
미 대선일(11월 3일)을 열흘 앞둔 10월 24일(현지시간), 당시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경합주로 분류되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브리스틀 타운십 유세에서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바이든 당시 후보는 “우리가 방식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암흑의 겨울이 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은 대통령이 여러분보다 주식시장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코로나19를 통제하라. 이것 없이는 다른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개표 중반까지 양 진영은 호각지세를 이뤘으나, 선거 이틀 뒤인 5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에서 바이든이 막판 추격전 끝에 역전하며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대선 승리에 필요한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 중 270명. 당시 25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바이든은 최대 경합주로 분류되던 조지아(16명)와 펜실베이니아(20명) 선거인단을 손에 넣으며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AP통신의 보트캐스트(VoteCast) 분석 결과에 따르면, 11만명 이상의 미 대선 유권자 중 미국이 직면한 최대 과제로 코로나19를 꼽은 비율(41%)이 가장 많았다. 이들 중 73%가 바이든을 찍어 트럼프(25%)를 압도했다. 경제·일자리를 택한 비율(28%)은 두 번째로 많았으며, 이들 중 81%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응답자 중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자가 60%에 달했다. 이 중 70%가 바이든에 투표했다. 코로나19가 미 대선 결과를 실제 좌우한 셈이다.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승리 확정 이틀 만인 11월 10일 인수위 출범 뒤 첫 인선으로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자문단을 발표했다. TF에는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문제점을 제기했다가 사직한 릭 브라이트 전 보건복지부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국장이 포함됐다. 트럼프가 쫓아낸 백신 전문가가 바이든 팀에 합류한 것으로, 코로나19가 가른 대선 결과의 상징적 장면으로 회자됐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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