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정부는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에 대한 사후적발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당초 약속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사전 차단’은 힘들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앞서 국회를 통과한 개정 자본시장법(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등)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면 공매도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
◇동학개미 원성에 수술대 올라서는 시장조성자 제도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는 이런 내용 등을 담은 ‘시장조성자 제도개선 기본방향’을 20일 발표했다. 시장조성자란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거래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통상 증권사가 이런 역할을 한다. 주식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팔 물건을, 팔려는 사람에게는 살 물건을 내놓는 역할이다. 실제 시장조성자 덕분에 거래가 많아지고, 매수가와 매도가 사이의 차이가 줄어드는 등 효과가 있었다고 거래소는 설명했다.
그런데 시장조성 역할을 하려고 팔 물건을 내놓으려고 미리 주식을 대거 보유하는 건 부담이다. 자칫 주가 하락으로 의도치 않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조성자들은 공매도(空賣渡)를 즐겨 쓴다. 전체 공매도 3분의 1 정도를 시장조성자가 하고 있다. 시장조성자들은 현재 공매도 금지 기간 도중에도 공매도를 하는 중이다. 자기네 투자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 시장조성자에 대해서는 일부 공매도 규제의 적용을 면제해주는 등 ‘특혜’가 있다.
그러나 동학개미들은 시장조성자가 특혜를 이용해 사익을 챙긴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불법 공매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의심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소가 지난 201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시장조성자가 공매도 규제를 지켰는지 집중 점검한 결과, 불법 공매도 의심사례가 적발된 것이다. 금융위는 “추후 제재 및 재발 방지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조성자 제도를 수술대 위에 올리기로 했다.
◇시장조성자 공매도 물량, 절반으로 줄인다
금융위는 우선 미니코스피 200 선물·옵션 시장조성자의 주식 시장 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미니코스피 200 선물·옵션은 코스피 200선물과 동일하게 코스피2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이다. 다만 계약금액을 기존 상품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소액 투자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왜 금지하는 걸까. 통상 파생상품 시장조성자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현물 주식을 공매도한다. 시장조성 과정에서 파생상품을 보유하게 되면, 현물 주식시장에서 미니코스피200 구성종목을 공매도하는 식으로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다만 미니코스피 200 선물·옵션은 일반 코스피200 선물·옵션 등 다른 파생상품을 활용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금융위는 “미니코스피200 선물·옵션 시장조성자의 공매도를 금지하면, 전체 시장조성자 공매도 물량 42%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또 주식시장 시장조성자에 대해서는 ‘업틱룰’ 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업틱룰이란 직전 체결가 이하로 공매도하는 걸 금지하는 제도다. 예컨대 A주식이 1만원에 체결됐다면, 공매도 호가는 1만50원, 1만100원 등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매도 탓에 직접적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 개인·기관 투자자들은 업틱룰을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시장조성자들은 공매도 시 업틱룰을 면제해줬다. 그러나 금융위는 앞으로 주식시장 시장조성자의 공매도에 대해선 업틱룰을 따르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시장조성자들이 현재 체결가보다 낮은 가격에 공매도를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파생시장 시장조성자는 위험 회피를 위해 업틱룰 예외를 유지해주기로 했다.
금융위는 또 유동성이 높은 종목은 시장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시장조정 대상종목 졸업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회전율, 호가스프레드, 거래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준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평가해 기준치를 넘는 종목은 시장조정 대상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시장조성제도 관련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시장조성거래 내역을 주기적으로 밝히고, 시장조성자의 불법 공매도 관련 내부통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이 같은 대책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불법 공매도 의심 거래, 매달 1번씩 점검
정부는 또 불법 공매도에 대한 사후적발 및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국회에서는 불법 공매도에 대해선 1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하는 등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행법상 허용되는 공매도는 실물을 빌린 뒤 파는 차입 공매도다. 반면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시세 조종 수단이 될 수 있고, 공매도 시점에 주식이 없어 결제가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돼도 수천만원대 과징금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무차입 공매도를 형사 처벌하도록 하고, 부당 이득액의 3~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처벌 강화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 불법 의심 거래를 잘 감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선 거래일 이틀 뒤인 결제일 낮 12시까지 증권사에 결제 주식이 들어오지 않아, 불법 무차입 공매도로 의심되는 거래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은 증권사로부터 통보받은 대상 중 일부를 선정해 6개월 단위로 점검해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매달 이 같은 이상거래를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차입 공매도 시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증권사가 거래소에 호가를 제출할 때 일반 매도인지, 차입 공매도인지 등을 표시하고 업틱룰 예외·외국인·시장조성자 여부 등을 표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매도 감시 대상은 주로 결제가 제대로 안 된 이상거래에 한정됐다. 무차입 공매도였지만 뒤에 현물 주식을 확보하면 아무 의심도 안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앞으로 미소유 주식 당일 매도·매수 주문을 찾아낼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기로 했다. 예컨대 증권사에 잔고정보가 없는 투자자가 당일 동일수량을 선매도·재매수한 경우 등이다. 또 시장조성자의 업틱룰 예외 공매도 주문에 대해서도 각종 의무 위반 여부를 꾸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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