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좋아하는 디에고 마라도나. 출처=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 |
[스포츠서울 김경무전문기자] 지난 25일 만 60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1970년대 말 ‘축구의 신동’으로 세계축구무대에 혜성처럼 나타나 ‘축구의 신’ 경지까지 오른 마라도나.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The Greatest footballer of all time)인가?
마라도나보다 앞선 세대로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축구인생의 정점(월드컵 3회 우승)을 찍으며 ‘축구의 킹’으로 등극한 브라질의 펠레(80).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가 20세기 최고의 축구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둘 중 누가 GOAT인지에 관한 논쟁이 마라도나의 사망을 계기로 남미는 물론 유럽에서 다시 불붙고 있는 조짐이다.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축구협회(CBF)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마라도나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우리는 사상 최고의 선수를 잃었다”고 논평한 데 대해 불편함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브라질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나의 영광”이라고 말한 알레한드로 도밍게스 남미축구연맹 회장에게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BBC도 마라도나의 위대성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전문가 분석을 통해 그가 GOAT가 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축구환경에서 다른 시대를 산 20세기의 두 축구영웅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수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점 투성이의 인간이 아닌, 축구선수로서 마라도나가 보여준 위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해외 등 축구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3가지 이유가 들 수 있을 것 같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수비들에 둘러싸여 분투하는 모습. 출처=FIFA 홈페이지 |
첫번째는 마라도나가 1930년 우루과이에 시작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Final) 사상 가장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골을 남겼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다.
당시 에스타디오 아즈텍에서 열린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후반 6분, 이후 전세계적으로 ‘신의 손’(Hand of God) 논란을 빚은 선제골을 작렬시켰다. 측면에서 공이 문전으로 올라오자 점프를 하며 슛을 시도했는데 나중에 방송화면 판독 결과 왼손으로 공을 쳐서 골이 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이후 4분 만에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골을 작성하며 팀 2-1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 자기진영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수비수 2명의 숲을 뚫고 빠져 나간 뒤 잉글랜드 오른쪽 진영을 50m 넘게 질주하면서 수비수 2명과 골키퍼마저 제치고 골문을 가른 것이다.
1986 멕시코월드컵 우승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디에고 마라도나. 출처=FIFA 홈페이지 |
BBC 라디오의 브라이언 버틀러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라도나가 작은 장어처럼 턴을 해 곤경스런 위치에서 빠져 나갔다. 땅딸막한 남자는…잉글랜드 수비진을 매장해버렸다. 그것이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인 이유다.”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후계자로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인 리오넬 메시(33·FC바르셀로나)도 유럽 축구무대에서 마라도나의 비슷한 골을 넣은 적을 있지만, 그런 업적을 만들어낸 무대의 레벨이 완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여러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펠레가 1958년 스웨덴,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던 반면,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대표팀에서 단연 군계일학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1m73(72㎏)인 펠레와 달리 1m65(70㎏)이 단신이었지만 마라도나는 그라운드에서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멘털)를 바탕으로, 상대와의 몸싸움에서 절대 뒤지지 않은 피지컬, 그리고 마법 같은 개인기와 드리블, 빠른 스피드로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했다.
마라도나는 당시 벨기에와의 4강전에서도 후반 6분과 18분 내리 골을 넣으며 2-0 완승의 영웅이 됐다. 독일(당시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2-0으로 앞서다가 내리 2골을 내주며 2-2가 된 상황에서 후반 39분 중원에서 단 한번이 환상적인 킬패스로 호르헤 부르차가의 결승골을 도와 팀의 3-2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진면목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는 골이 필요할 때는 해결사 노릇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마라도나의 후계자 메시가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등 월드컵에 수차례 나갔지만 마라도나 같은 카리스마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딱한번 아르헨티나를 준우승으로 이끈 것과는 비교가 된다.
지구촌 올드축구팬들은 펠레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누르고 우승할 때의 핵심 멤버를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자이르지뉴, 카를루스 알베르토, 리베리뉴, 토스탕…. 그러나 마라도나가 16년 뒤 같은 장소에서 월드컵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릴 때 그와 함께한 멤버는 골잡이 호르헤 발다노 정도 기억하고 있다.
마라도나는 1979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아르헨티나 우승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축구신동’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하면서 91차례 A매치에서 34골을 넣었다.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인 펠레는 1957년부터 1971년까지 브라질 국가대표로 출전해 92경기에서 77골을 넣었다.
1982~1984년 FC바르셀로나 시절의 디에고 마라도나. 아틀레티코 빌바오의 코이코체아한테 악의적인 태클을 당해 심한 발목 부상을 당했고, 결국 바르사는 떠나 이탈리아아 세리에A 나폴리로 이적한다. 출처=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
세번째는 마라도나가 클럽축구 무대에서도 축구의 양대산맥인 남미와 유럽에서 온갖 견제와 폭압적 태클을 딛고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는 점이다. 클럽축구에서의 위대함은 펠레와 마라도나는 사뭇 다르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명문클럽 보카 주니어스(1981~1982)를 거쳐 스페인 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1982~1984)로 이적했다. 하지만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뛴 두번째 시즌 아틀레틱 빌바오의 코이코체아한테 경기 중 악의적인 태클을 당해 발목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선수생활에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1984~1991)로 이적했다. 그리고 거기서 정규리그 2회, 유럽축구연맹컵(UEFA)컵 우승 등을 이끌며 클럽축구 무대에서도 절정기를 보냈다.
축구 전문가와 유럽 언론들은 마라도나는 유럽 무대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숱한 태클과 반칙으로 당한 육체적인 고통을 잊기 위해 코카인 등 약물중독이 심해졌다는 점도 강조한다. 현대축구처럼 수비수 반칙에 주심들이 가차없이 레드카드를 뽑아드는 시대에 마라도나가 공을 찼다면 더 위대해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심판의 저지를 안받는 ‘야생의 거친 축구’가 판을 치던 1980년대, 마라도나는 수비수들의 폭력적인 태클과 집중마크를 이겨내고 월드컵과 클럽축구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 불세출의 축구영웅이다. 약물중목, 각종 기행으로 인간적으로는 결점 많은 ‘축구천재’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펠레는 마라도나와는 달리 유럽무대로 가지 않고 브라질 등 남미무대에서 자신의 클럽축구 인생을 꽃을 피웠다. 그는 1956년부터 1974년까지 산투스FC에서 뛰며 클럽축구의 전성기를 이뤘고, 이후엔 미국 무대로 옮겨 뉴욕 코스모스에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2년을 뛰고 은퇴했다. 양발을 사용하는 테크니션으로 개인통산 767골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누가 최고의 축구스타인가는, 어떤 확실한 기준에 의해 딱 이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펠레나 마라도나가 자신의 시대를 넘어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지구촌 최고의 축구스타들 중의 한명임은 틀림없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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