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25일 6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라도나./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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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술 후 2주 만에 25일 사망...세계축구계 '애도'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아르헨티나의 세계적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60세.
아르헨티나 매체 클라린, 라나시온 등과 BBC, AFP, AP 등 외신들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뇌를 감싸고 있는 뇌 경막 아래에 혈종이 고이는 질병)으로 수술대에 올라 뇌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2주만에 숨을 거뒀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3일간의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트위터를 통해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나타냈다. .마라도나와 세기의 라이벌로 불린 펠레는 트위터에서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고 전세계는 전설을 잃었다. 정말 슬픈 날"이라고 애도했다. 펠레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불린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추모했다.
아르헨티나 축구팬이 보카 주니어스 스타디움의 마라도나 포스터에 입을 맞추며 '축구 영웅'의 별세를 애도하고 있다./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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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신동'과 '그라운드의 악동'이란 양면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한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축구 전설로 브라질의 펠레와 함께 세계축구계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를 받았다.
마라도나는 은퇴 이후 마약 복용, 알코올 중독, 비만 등으로 평탄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며 두 차례 심장마비를 겪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 이룩한 천재적 활동으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후보에 꼽히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마라도나는 한국이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일본과 경쟁을 벌일 당시 한국을 지지하며 방한 경기를 갖는 등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다.
마라도나는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1981~1982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았다. 1982년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라 리가의 FC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SSC나폴리에서 10년 가까이 최전성기를 보냈다. 1992년 이후에는 스페인 세비야FC 등에서 뛰었다.
비교적 작은 키(167㎝)에도 불구하고 남미 선수 특유의 두껍고 탄탄한 상체와 폭발적인 스피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리블, 위협적인 왼발 킥 등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기술, 파워, 활동량을 고루 갖춘 ‘완전체 공격수’ ‘축구의 신’ 평가를 받았으며 1986년 잉글랜드와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헤더를 할 당시 손을 써서 골을 넣어 '신의손'이란 별명도 얻었다. 마라도나는 선수 시절 전성기를 열었던 잉글랜드전 후 인터뷰에서 핸드볼 논란에 대해 "내 머리와 신의 손이 만든 골이었다"고 말했다.
마라도나는 당시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만나 3-1 승리를 이끌었는데, '진돗개'처럼 따라붙는 마크맨 허정무의 태클에 쓰러지는 장면이 '태권 축구'로 비유돼 매스컴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를 86멕시코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후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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