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은 서울 강북의 17평 빌라에서 7년 전 입양한 고양이 ‘루비’와 둘이 산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 있다. 야행성이라서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글을 쓰고, 야식으로 라면에 밥 말아먹고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 잠든다고 했다. 열 시에서 정오 사이에 일어나서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다이어트 콜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먹는다고 했다. 드물게 사람을 만나지만 보통은 종일 집에 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이 성실하기까지 하면,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정권을 공격하면 술 먹고 골프 치고 야합하기 바쁜 사람들은 도저히 맞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때 우리 언론계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박정희 전문기자’ 조갑제 선배가 떠오른다. 이 분도 술도 안 먹고, 골프도 안 치고, 오로지 사람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책 읽고, 기사만 썼다. 그에게 맞서려고 했던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책을 냈다.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라는 책이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이했다는 것인데, 이른바 문재인 정권 진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조선일보 문화부 곽아람 기자가 진중권을 인터뷰했는데, 여러분과 꼭 공유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이렇다.
“문대통령은 재미있게도 철학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대한 비전과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만의 비전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분은 비전이 없다. 자기가 대통령하려고 했던 분이 아니다. 친노 세력이 폐족 상태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때 필요한 카드로 사용했고 지금도 거기 얹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역할이 없다. 윤리적 이슈를 놓고 사회가 분열됐을 때 통합하고 기준을 세워주는 기능을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조국 때는 오히려 기준을 무너뜨렸고, 윤미향 때도, 이번 추미애 장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강요 때도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 국민을 통합시켜야 하는데 갈라치기 한다. 대통령이 없는 거다.”
조금 길게 인용을 했는데, 요약하자면 진중권은 문 대통령을 이렇게 봤다. “철학이 없다.” “비전도 없다.” “친노 세력에게 카드로 사용됐다.” “역할이 없다.”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식으로) 윤리 기준을 무너뜨렸다.” “(윤미향·추미애 사태 때 시시비비를) 정리를 해주지 않았다.” “국민 통합 대신 갈라치기를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진중권의 결론은 이렇다. “대통령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에게 확실한 지지층이 있는 것에 대해 진중권은 “문 대통령의 우상화”란 표현을 쓰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상화에는 팬덤 문화 외에 NL(민족해방 운동권 진영)의 개인숭배 문화가 있는데 북한식 정치문화가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에까지 투영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NL의 개인숭배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수령님 문화’ 비슷한 것이다. 문 대통령 숭배는 전대협 ‘의장님’이 행사장에 가마 타고 입장하던 봉건적 문화의 습속이 낳은 일종의 문화 지체(遲滯) 현상이다. 이걸 대통령 본인이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감 자체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진중권이 봤을 때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북한의 ‘수령님 문화’가 흘러든 것이라고 했다. 그런 ‘개인숭배 문화’가 투영된 것이라고 했다. 더더욱 큰 문제점은 문 대통령이 이런 현상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다는 것, 즉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진중권은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 전엔 부패나 비리 사건이 나오면 사과나 반성을 한다든지 사과하는 척은 했는데 이번엔 그 기준 자체가 무너졌다.” 그렇다. 조국 씨가 대한민국에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 웅동학원 비리 의혹, 사모펀드 비리 의혹, 자식들에게 표창장을 위조해준 것 등등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여러 범죄 혐의들일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조국의 가장 큰 죄는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간직하고 키워온 상식과 윤리의 기준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진중권은 통탄하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정의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대목을 보면 이렇다. “윤 총장은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고 검찰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는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이고 이 쪽이든 저 쪽이든 공정하게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태섭 의원은 검찰에 대한 사명감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윤 총장 임명을 반대했는데 조국 전 장관이 적폐청산 때문에 억지로 관철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치려면 날카로운 칼이 필요하니 썼는데, 다음에 그 칼에 자신을 향하니 감당이 안 된 거다.” 진중권이 봤을 때 윤석열은 ‘사회의 거대 악을 척결할 수 있는 사람’, ‘어느 정권이 됐든 검찰이 공정하게 칼을 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권을 보지 않고 국민만을 보는 윤석열’, ‘헌법주의자 윤석열’이 되겠다고 했던 본인의 다짐과 비슷한 평가인 셈이다.
진중권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윤석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건 의미 없다. 그렇게 몰고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은 검사고 끝까지 남아 정의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그가 검찰로서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수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퇴임하느냐가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관심사다. 그 사람이 후에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그 때 따지면 된다.” 이 부분을 제가 해석하면 이렇다. 진중권은 윤석열에게 당부를 하고 있다. ‘검찰 수장으로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완수해 달라. 중도 퇴임하지 말고 끝까지 임기를 지켜서 정의의 사표가 돼 달라. 그 다음에 정치를 하겠다면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하는 당부다. 아마 많은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진중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4·15 총선을 이기고 40% 대 지지율과 함께 임기 후반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런 분석을 했다.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코로나 사태라는 건 각국 지도자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거기 때문에 지도자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볼 땐 전생에 나라를 세 번 정도 구한 거 같다. 촛불 때문에 사실은 거저 대통령 되고 두 번째 지지율 떨어질 때 되니 갑자기 김정은이 만나자 하질 않나, 그리고 또 다시 떨어질 때쯤 되니 코로나가 들어와 버리고…. 코로나에 사실 잘 대처한 것도 실은 전 정권에서 당해서 그렇다. 메르스, 사스 하면서 쌓였기 때문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건데 어쨌든 그 공은 그들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짧게 줄여서 말해 본다면 진중권이 봤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까지는 운이 좋은 정치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생에 나라를 세 번 구했기에 현생에서 세 가지 음덕을 입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비틀어보면서, 문재인을 구한 세 가지는 ‘촛불’ ‘김정은’ ‘코로나’였다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버린다.
혹시 진중권이 추미애 법무장관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진중권이 엿새 전에 올렸던 페이스북 글을 소개해드린다.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검찰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법무부 개혁이다. 장관이 추태를 부리면 밑에서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검찰개혁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자기들에 대한 수사를 못하게 막는 것을 ‘개혁’이라고 사기를 쳤던 것이죠.” “매드우먼(madwoman) 하나에 부서 하나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매드 우먼’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말로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추장관이 법무장관이 된 이후 우리나라 법무부는 시스템이 정지되고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며, 추 장관이 말하는 ‘검찰개혁’이란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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