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윤석열 현상 딜레마’
윤석열 검찰총장. |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여야가 동시에 정치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에 대해 ‘정치 검사’라고 맹공하면서도 내부에선 “우리가 윤 총장을 대선 주자로 만들었다”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에선 ‘야권 주자 윤석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한편으로 당 밖 인사인 윤 총장이 뜰수록 제1 야당으로서 구심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 주자 지지도 1위를 기록한 것은 초유의 일인 만큼 여야의 셈법은 복잡한 상황이다.
여론조사 업체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9일 전국 성인 남녀 1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24.7%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민주당 이낙연 대표(22.2%), 3위는 이재명 지사(18.4%)였다. 이어 무소속 홍준표 의원(5.6%),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4.2%), 정의당 심상정 대표(3.4%) 순이었다.
여권은 이날 윤 총장을 비난하면서 그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한 데 대해선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윤 총장이 오늘 대권 후보 (여론조사) 1위로 등극을 했는데, 사퇴를 하고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 총장이) 정의라는 탈을 쓰고 검찰이라는 칼을 휘둘러 자기 정치를 한 결과”라고 했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통화에서 “일시적인 현상일 뿐 유의미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정부·여당에 반발하는 민심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여권으로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당 내부에선 ‘윤석열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대선 후보지지율 |
윤 총장의 부상으로 전체적으로 야권 후보의 지지율은 늘어났다. 다만, 국민의힘 속내는 더 복잡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현재 정치를 하지 않고 있는 윤 총장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말은 이 정부의 폭정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태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여론조사는 변하는 것이니까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부 인사가 아닌 윤 총장이 야권 대표 주자로 떠오른 것이 당장 국민의힘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아직 우리 당이 대표 대선 주자를 내세우지 못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윤 총장이 우리 당으로 들어올 것이란 보장도 없다”고 했다. 영남권 등 국민의힘 일각에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 구속한 윤 총장에 대한 반감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충청권·수도권 의원 상당수는 윤 총장의 부상을 반기는 분위기다. 윤 총장은 서울 태생,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 출신이다.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통화에서 “윤 총장에게 기대감을 비치는 충청 지역 분들이 느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최종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라며 “아들이 없으면 사위라도 내세워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무소속 샌더스 의원이 미국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국민의힘이나 범야권 대선 경선에 윤 총장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과거 관료 혹은 비정치인 출신 ‘제3 후보’로 주목받았던 인사들이 대선 레이스에선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총장도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한때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렸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점차 지지율이 떨어져 결국 2007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탄핵 국면이었던 2017년 초 귀국해 대선 행보에 나섰지만, 각종 ‘가짜 뉴스’ 공세에 휘청이다 귀국 21일 만에 대선을 포기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총장의 지금 지지율은 인기 투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선 주자로서 자질을 갖췄는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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