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170쪽 판결문 절반 ‘11월9일 재구성’에 할애
스마트폰 로그기록, 브리핑 인쇄물 출력시간 등 정황증거 촘촘
‘오사카 총영사 인사 거래’ 부인 못해…靑인사수석과 실제 통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8일 오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열린 '경남 스마트팜 혁신 밸리 조성사업 착공식'에서 환영사하고 있다. [연합]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허익범 특검이 못한 건 수사가 아니다. 언론 브리핑을 못했을 뿐이다.” 포털사이트 댓글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일명 ‘드루킹 사건’ 내막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의 평가입니다.
이 사건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관여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수사단계 이전부터 공방이 오갔습니다. 특검법에 따라 수사상황은 언론에 공식 브리핑됐고 수사결과도 발표했지만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허익범 특검은 김경수 지사를 법정구속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예상과 달리, 1심 재판부는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가 보는 앞에서 댓글 조작에 사용한 프로그램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근거를 판결문에 촘촘하게 제시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기소된 상황에서, 김경수 지사는 여당 ‘친문’ 진영의 대선 후보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법원 판단에 따라 김 지사는 차기 대통령 선거 판도를 바꿀 유력 후보가 될 수도, 반대로 재수감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경수-드루킹, 20개월간 11차례 만나… ‘인사청탁’으로 사이 틀어져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 김동원을 2016년 6월에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소개받고 처음 대면합니다. 송 전 비서관은 드루킹 특검 수사 과정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발돼 집행유예형을 확정받았습니다. 이날 이후 김 지사는 2018년 2월20일까지 총 11차례 따로 만납니다.
대면만 11차례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대화는 수시로 이뤄집니다. 국회의원회관에서만 7번 만났고, 드루킹이 운영하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사무실에서 3회, 국회 인근에서 1회 만났습니다. 김 지사는 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두달에 한번 꼴로 드루킹 김동원을 만났을까요.
드루킹 김동원 일당은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김 지사를 위해 인터넷 웹 사이트 여론 조작작업을 해왔고, 이 내역을 상세히 보고했다.’ 그리고 경공모 소속 회원인 A 변호사를 일본 대사로 앉혀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러면 오사카 총영사로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마저도 퇴짜를 놓자 사이가 틀어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문제의 11월9일, 16분간 무슨 일이…1심 재판부가 제시한 세가지 증거
허익범 특별검사 [연합]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심 재판부는 드루킹 일당의 주장이 각종 정황들로 입증됐다고 판단합니다. 문제의 2016년 11월 9일, 김경수 지사는 경기도 파주의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합니다.
허익범 특검팀이 확보한 물증 중에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개발자 우모 씨의 전화기가 있습니다. 이 스마트폰 로그 기록을 보면,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그날 오후 8시7분15초~오후8시23분53초까지 약 16분 동안 우 씨의 전화기에서 킹크랩이 작동됐습니다. 자동으로 여러 개의 아이디가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하며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의 공감/비공감을 클릭하는 작업이 9차례 반복됩니다. 1심 재판부는 김 지사 앞에서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우 씨의 진술이 믿을만하다고 봤습니다. 전화기 모델명이 정확히 일치하고, 로그기록도 당시 정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겁니다.
반면 김경수 지사 측은 우씨가 ‘시연’을 한 게 아니라 ‘개발자로서 테스트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씨는 “시연일(11월9일)이 예정돼 있어서 개발을 서둘렀다”고 합니다. 재판부 역시 휴대전화 로그 기록에 남은 킹크랩 구동 내역은 테스트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연이었다고 결론냅니다. 다음은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재판부 : “우씨는 반복적으로 테스트를 하다가, 2016년 11월 7일까지 구동이 안정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11월 9일까지는 1~2차례 짧은 동작만 실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11월 9일 20시 07분부터 16분간 계속적인 동작을 실행했다. 11월 9일이라는 시연일에 맞춰 개발, 테스트한 점이 객관적으로 뒷받침된다.”
김경수 지사의 방문 이틀 전에 이미 개발이 끝났고, 테스트 횟수도 줄어들었는데 보여줄 의도가 없었다면 갑자기 방문 당일 집중적으로 9차례 테스트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김경수 방문 직전’ 출력된 인쇄물… 항소심 판단은
드루킹 김동원 [연합] |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11월 9일, 드루킹 일당은 문서를 하나 출력합니다. 문서명은 ‘201611 정보보고’. 의외로 이 문서 하나를 두고 벌어진 김 지사와 특검 간 공방은 치열했습니다. 특검은 이 문서가 경공모 프린터에서 출력된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문서 파일을 최종 수정한 시점은 11월9일 오후 5시02분. 인쇄한 것은 그 이전인 오후4시55분이었습니다. ‘킹크랩 시연회’ 약 3시간 전입니다.
여기에는 경공모가 온라인에서 활동할 계획과 댓글 작업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극비’라고 표시된 마지막 항목에는 킹크랩 운용과 개발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었습니다. 특검은 이미 킹크랩 개발자인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에게 보여줄 게 아니라면, 굳이 이 문서를 방문일에 출력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서는 경공모 열람용이 아니라, 김 지사에게 킹크랩 시연을 하는 참고자료였다는 겁니다.
김경수 지사 측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드루킹이 앞서 텔레그램 채팅방에 공유했을 때의 ‘2016 온라인 정보보고’에는 킹크랩 포로토타입 개발이 언급된 ‘극비’항목 부분이 빠져있다. 이 정보보고 문서를 받은 건 맞지만, 버전이 다르다.’
하지만, 재판부는 텔레그램에서 경공모 다른 회원들과의 보안 문제를 고려해 채팅방 업로드 버전에서 킹크랩 부분을 삭제했을 뿐, 실제 11월9일 인쇄출력본에는 ‘킹크랩 극비’항목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드루킹 김동원은 김경수 지사를 만날 때마다 브리핑 자료를 준비했는데, 정작 경공모 사무실에서 만난 11월9일에는 킹크랩이 언급된 ‘201611 정보보고’ 외에는 자료를 준비한 게 전혀 없다는 점도 참작했습니다. 출력한 문서가 김 지사에게 건네졌다는 겁니다.경공모 회원들, “다 내보내고 김경수만 남았다” vs 김경수, “짜맞춘 진술”1심 재판부가 킹크랩 시연회를 인정한 데에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치하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킹크랩 개발자 우모 씨는 “킹크랩 프로토타입 개발에 사용된 휴대전화를 이용해 작동화면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경공모 사무실에서 상주하던 박모씨와 양모씨는 “11월9일, 2층 강의장에 휴대전화기를 들고 들어가 프로토타입을 켜고 시연했다”거나, “드루킹 김동원이 11월9일까지 킹크랩 프로토타입 개발을 끝내라고 했다”고 진술합니다. 김경수 지사가 방문한 시점에서도 “우씨가 휴대전화를 들고 강의장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거나, “(김 지사를 제외한) 경공모 회원들이 강의장 밖으로 나왔고, 우씨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갔다”는 진술도 이어졌습니다.
김경수 지사 측은 오사카 총영사 인사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드루킹 일당이 진술을 서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11월7일에 이미 킹크랩이 완성됐는데, 굳이 김 지사가 사무실에 방문했던 시각인 11월9일 20시07분경 16분에걸쳐 시연하지도 않을 동작을 테스트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사기관에서 스마트폰 로그기록을 제시하거나, 경공모 방문일이 11월9일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전부터 관련자들이 진술을 일관되게 해오고 있어 ‘나중에 짜맞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드루킹 인사청탁, 항소심에선 선거법 위반 피할 수 있을까
김경수 경남지사가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문화다양성 축제 맘프(MAMF) 2020' 폐막식과 단편영화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경수 지사에게 적용된 혐의는 포털사이트 여론을 왜곡했다는 업무방해와, 선거 과정에서 공직을 대가로 제안했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 두 가지입니다. 업무방해 혐의로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입니다. 형이 확정되면 내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집니다.
킹크랩 시연회를 보지 못했다는 업무방해와는 달리, 경공모 측으로부터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받고 대신 센다이 영사를 제안했다는 선거법 위반 부분은 사실관계를 다투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6년 9월28일, 김경수 지사는 경공모 사무실을 처음으로 방문합니다. 직후 드루킹 김동원은 킹그랩 개발을 지시했고, 문제의 시연회 시점이 지난 뒤에는 경공모 회원 A변호사를 일본 대사로 추천해달라고 김 지사에게 요구합니다.
하지만 김 지사는 이 요구를 거절합니다. 대신 김 지사의 보좌관인 한모씨가 드루킹 김동원을 따로 만납니다. 김동원이 다시 오사카 총영사직을 제안하고, 김 지사 측은 ‘오사카는 어렵고 대신 센다이 총영사로 추천해 임명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답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김 지사 측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에 불과했던 김 지사가 실제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총영사를 제안한 시기에서는 어떤 후보자가 지방선거에 출마할지 여부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드루킹이 댓글 작업을 했더라도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드루킹이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이상,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이익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특검은 2017년 12월28일 김 지사가 청와대 조현옥 인사수석과 2분 17초간, 직후에는 청와대 김모 행정관과 통화한 사실을 밝혀냅니다. 이후 김 지사의 보좌관 한모씨가 김동원과 따로 전화통화를 합니다. 재판부는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공직선거법 위반은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됩니다.
공직제안 혐의는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는지와 무관하게 인정될 수 있습니다. 김씨가 단독으로 업무방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그에 따른 대가를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김 지사의 업무방해 혐의에 무죄가 선고될 경우 그 점을 참작해 공직선거법 위반 형량이 낮아질 수는 있습니다. 결국 벌금이 나오더라도 100만원 이하로 재판부가 김 지사의 정치생명을 유지해줄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인사문제 때문에 드루킹을 따로 만났던 김 지사의 보좌관 한모씨는 2017년 9월 경기 고양시 소재 한 식당에서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과연 김 지사는 1심 판결에서 제시한 수많은 난관을 모두 넘어설 수 있을까요.
jyg97@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