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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해고 통지서 받아든 조선소 여성 용접공의 절규···“하청 노동자는 쓰면 뱉는 껌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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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50대 중반의 용접 노동자 A씨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썼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4일 페이스북에 “(A씨가) 절절한 마음을 글로 담았다. 가슴이 아프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 대량해고를 멈춰야 한다”고 적은 뒤 A씨 글을 공개했다.

경향신문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지난 2일 거제시청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명천의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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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하청 노동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껌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생산의 주체이고 심장 같은 존재”이라며 “하청 노동자가 멈추면 대우조선해양의 심장은 멈춘다. 저임금으로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을 다 하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정리해고가 웬말이냐”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우리는 내어줄 것도, 물러설 곳도 없다”며 “10년, 20년, 30년 경력에도 모두가 최저시급에 준하는 임금 200만원 안팎으로 겨우 버티며 지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른 다섯에 대우조선해양 연수원에서 용접 자격증을 취득해서 조선소에 첫 발을 내딛고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버티고 열심히 살아왔다”며 “제 나이도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고 더 이상 직장을 옮기고 싶지도 않고, 잃고 싶지도 않고 이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연말정산 서류상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된 것도 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도 돌봐드리고 있고 몸이 아파 집에 있는 남편도 있다”며 “적어도 해고 전에라도 가정사를 한번이라도 물어나 보고, 알아나 보고 해고 통지서를 보내야지 이런 날벼락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명천은 지난달 28일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 노동자 20명에게 11월30일자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 2일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대우조선해양에서는 2020년 1~9월까지 하청노동자 4318명이 해고되어 쫓겨났다. 무급휴업, 권고사직, 업체폐업 등 방식은 달라도 강제로 쫓겨난 것은 마찬가지”라며 “이제 조선소 사내하청업체 최초로 명천의 정리해고까지 현실이 된다면 올해 말까지 그리고 2021년 상반기에도 또 수천명의 하청노동자가 계속 쫓겨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A씨의 글 전문.

저는 명천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입니다.

10월28일 아침 반장이 해고자 명단에 우리 반 2명이 있다며 그 중에 한 명이 저라고 했습니다. 해고 사유가 뭐냐고 물으니 점수에서 부양가족이 없다는 게 저에게 낮은 점수로 작용되었고 그 기준이 연말정산에서 확인된 서류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 연말정산 서류에만 부양가족이 있는가요? 부양가족이 있어도 부양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부양가족 기록이 없어도 부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도 돌봐드리고 있고 몸이 아파 집에 있는 남편도 있습니다. 적어도 해고 전에라도 가정사를 한번이라도 물어나 보고, 알아나 보고 해고 통지서를 보내야지 이런 날벼락이 없습니다.

설령 부양가족이 없이 혼자라고 해도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마비되어 있는 이 시국에 취업마저 어려운데 나가서 굶어 죽으라는 말입니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진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날 오후 4시46분 문자와 카톡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으며 29일 퇴근 후 집에 가보니 해고 통지서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해고 통지서를 집에서까지 받아본 심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고통과 충격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분노하는 순간에는 대표 사무실에 가서 목을 매어 죽어버릴까, 배에서 뛰어내릴까, 사무실에 불을 싸질러 버릴까라는 극단적 생각도 들었지만 차마 자식이 눈에 밟혀 이 분노를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살인적인 해고 통지서를 보낸 명천 대표와 소장을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을 책임지며 조선소에 들어와 용접사로 일한 지 20년이 되어 갑니다. 일하기 힘든 탑재에서 9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고 남자 동료들과 동등하게 힘든 일이나 궂은 일도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해내며 여기까지 왔으나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에게 해고장을 날렸습니다. 제가 해고장을 받을 만한지 묻고 싶습니다. 분명히 뭔가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제가 그만두어야 합니까? 억울하다 싸워야 합니까?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제 겨우 자식 대학 공부시켜놓고 늦었지만 노후 준비도 해야 하고 어렵게 마련한 집값도 갚아야 하는데 여자로서 혼자 벌어 가정을 책임지고 이끈다는 것은 남자가 벌어주는 돈으로 사는 것보다 두 배, 세 배 더 힘든 삶이었습니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한잠도 잘 수가 없으며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원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은 상을 주거나 인사고과 적용을 위한 것이라 여겼는데 대표는 정리해고에 거침없이 이상한 점수를 매겨 자신의 배를 채워주는 사원들에게 피눈문을 흘리게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내어줄 것도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 10년, 20년, 30년 경력에도 모두가 최저시급에 준하는 임금 200만원 안팎으로 겨우 버티며 지금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서른 다섯에 대우조선해양 연수원에서 용접 자격증을 취득해서 조선소에 첫 발을 내딛고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버티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제 나이도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고 더 이상 직장을 옮기고 싶지도 않고, 잃고 싶지도 않고 이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저는 마음은 여리고 무서움이 많지만 옳지 않거나 부당함을 보면 또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정리해고는 부당합니다.

하청 노동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껌이 아닙니다. 대우조선해양 생산의 주체이고 심장 같은 존재입니다. 하청 노동자가 멈추면 대우조선해양의 심장은 멈춥니다. 저임금으로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을 다 하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정리해고가 웬말입니까! 왜 하청 노동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습니까!

대표가 보낸 해고 통지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일들은 절대 저만의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안 했고 남의 일이라 여겼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서문 선각삼거리에서 명천기업 동료들이 천막을 치고 몸에 쇠사슬을 묶어 해고 철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투쟁하는 소리에 귀를 막지 마시고 눈을 외면하지 마시고 침묵하지 맙시다. 침묵과 외면이 가져다주는 미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집에서 키우는 개도 밥을 먹을 땐 뺏으면 주인을 물기도 하는데 우리는 개보다 못한 겁니까!

저는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이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명천 동료 여러분. 동료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같이 이 고통을 나눕시다. 함께 합시다. 투쟁! 명천기업 대표는 살인적인 정리해고를 철회하라!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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