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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이슈 치료제 개발과 보건 기술

“독감백신 접종자 코로나 감염률, 비접종보다 40%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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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제 공동연구진 1만여명 의료기록 분석

“독감백신 맞으면 코로나19 감염 위험 크게 줄어”

선천면역 시스템 향상시키는 ‘훈련된 면역’ 효과

코로나 ‘예방’ 입증하는 건 아냐…위생수칙 지켜야


한겨레

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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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독감(인플루엔자) 예방 주사를 맞는 이유는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해마다 29만~65만명이 독감에 희생된다. 둘째는 백신을 맞으면 예방률이 50%에 이른다. 즉 감염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셋째는 백신 면역력은 해를 넘기지 못한다. 면역력 지속 기간이 보통 6개월이다. 넷째, 변이가 쉽게 일어나 해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달라진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올해엔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을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독감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독감에 걸리면 면역체계가 약해져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더 커지는 것도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네덜란드 라드바우트대 메디컬센터 미하이 네테아(Mihai Netea) 박사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진이 10월16일 사전출판논문집 ‘메드알카이브’(MedRxiv)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병원 직원 1만여명의 의료 기록을 살펴본 결과, 6월1일 현재 2019~2020 시즌 독감 백신을 맞은 노동자들은 코로나19에 걸릴 확률이 39%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맞지 않은 직원의 양성 반응 비율은 2.23%였던 반면 백신을 맞은 직원의 양성반응 비율은 1.33%에 그쳤다.

연구진은 독감 백신이 코로나19에 ‘훈련된 면역’(trained immunity)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했다. 백신은 원래 후천면역 시스템을 자극해, 신체가 특정 병원체를 다시 만날 경우 이를 인식하고 공격하는 항체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일부 백신은 선천면역 시스템에 작용해 다른 종류의 감염증에도 대항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훈련된 면역’이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번에 확인한 사실이 곧바로 독감 백신이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걸 입증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백신을 맞는 사람들은 건강에 더 민감해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더 잘 지킬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려면 대규모 임상 시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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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모형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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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맞은 세포, 면역분자 더 생성 확인


연구진은 대신 세포를 떼어낸 뒤 체외 실험을 통해 ‘훈련된 면역’ 메카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연구진은 우선 건강한 성인 기증자의 혈액 세포를 채취했다. 그런 다음 이 세포 가운데 일부를 독감 백신(4가 불활성 백신)에 노출시키고 6일 동안 배양했다. 6일 후 이번엔 이 세포를 코로나19에 노출시켰다. 이어 하루가 지나 세포의 반응 상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독감 백신에 노출됐던 세포는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사이토카인이라는 이름의 면역분자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 사이토카인은 코로나19 감염 과정에서 늦게 생성되면 인체 기관을 손상시키지만 초기에 생성되면 면역 기능을 활성화한다. 이번 연구는 아직 동료과학자들의 엄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따르면 특정 감염 질환에 대한 백신이 다른 감염증에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는 ‘훈련된 면역’은 엉터리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이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다. 독일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한 논문에서, 훈련된 면역 효과는 선천면역에 관여하는 세포를 생성하는 줄기세포를 제프로그래밍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저널 ‘백신’, 지난 6월 ‘의학바이러스학저널’(Journal of Medical Virology)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에서도 독감 백신을 맞은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높은 곳에서 코로나19 감염률이 더 낮았다는 이탈리아 지역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전출판 논문집 ‘메드알카이브’(MedRxiv)에는 지난 5년 동안 독감, 소아마비, 수도, 홍역-볼거리-풍진(MMR), 간염(A형 또는 B형), 폐렴구균성 질환 백신을 맞은 성인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7월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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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바이러스 구조도.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RNA 가닥을 단백질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미국 CD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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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여곳서 BCG백신의 코로나19 예방 효과 임상시험중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현재 결핵용 BCG 백신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이 전 세계 20여곳에서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BCG 백신은 결핵이 확산되지 않은 경우에도 감염 위험과 전체적인 아동 사망률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네테아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독감 백신을 맞히기 전에 BCG 백신에 면역 세포의 일부를 노출하는 실험도 병행했다. 그 결과 독감 백신만 투여했을 때보다 두 백신을 모두 투여했을 때 사이토카인이 더 많이 생산된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독감 백신의 코로나19 예방 효과에 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상태다. 면역생물학자이자 임상병리학자인 예일대 의대 엘렌 폭스맨(Ellen Foxman)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흥미롭지만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한테 조금 보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한다, 왜냐하면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독감은 보통 12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 유행한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항체가 형성되기까지는 대략 2주 정도가 걸린다. 따라서 늦어도 11월 안에는 접종을 하는 게 좋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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