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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시판 중단된 약물 ‘아프로티닌’, 국제저널에 “코로나 치료제 가능성” 보고

조선비즈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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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시판 중단된 약물 ‘아프로티닌’, 국제저널에 “코로나 치료제 가능성”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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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환자 출혈방지제, 부작용 보고돼 2008년 시판 중단
獨·英 연구진, "코로나 증식 억제한다" ‘셀(Cell)’에 발표
"중증 막는 치료제 될수도… 러시아서 독감약으로 쓰여"
"혈액응고 작용 있어 ‘코로나 혈전’ 증상 환자 사용 주의"

아프로티닌(aprotinin)과 대조군 약물(SERPINA1)을 코로나19 감염 세포에 투여한 후 48시간이 지나 현미경으로 바이러스 양을 비교 관찰한 모습. FFM1, FFM2, FFM6는 서로 다른 바이러스 변종으로 각각 실험한 세 가지 결과다. 사진상 위로 올라갈수록 투여 약물의 농도가 높아진다. 실험결과 아프로티닌의 바이러스 감소 효과가 더 컸다./셀(Cell) 캡처

아프로티닌(aprotinin)과 대조군 약물(SERPINA1)을 코로나19 감염 세포에 투여한 후 48시간이 지나 현미경으로 바이러스 양을 비교 관찰한 모습. FFM1, FFM2, FFM6는 서로 다른 바이러스 변종으로 각각 실험한 세 가지 결과다. 사진상 위로 올라갈수록 투여 약물의 농도가 높아진다. 실험결과 아프로티닌의 바이러스 감소 효과가 더 컸다./셀(Cell) 캡처



수술 시 과다출혈을 막아주지만 부작용이 보고돼 잘 쓰이지 않는 약물 ‘아프로티닌(aprotinin)’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와 영국 켄트대 공동 연구팀은 세포 실험 결과 아프로티닌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을 가져, 감염 초기에 투여해 중증 진행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이날 논문을 통해 밝혔다.

아프로티닌은 혈액응고제로서 수술환자의 과다출혈을 막는 데 쓰였다. 독일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의 ‘트라시롤’, 국내 일동제약의 ‘아프로팀빈’, 한림제약의 ‘로티닌’,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아크렌’ 등이 과거 아프로티닌 제제로 시판됐지만 현재는 모두 중단된 상태다.

지난 2007년 캐나다 임상실험에서 아프로티닌을 심장 수술환자에게 투여하면 오히려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학계에 보고돼 미 식품의약국(FDA)이 시판을 중단하면서다. 당시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08년 출혈방지용 주사제로 출시된 국내 3사 제품에 대해 같은 조치를 내렸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날 "출혈방지용 주사제 제품에 대한 시판 중지 조치로, 아프로티닌 성분 자체에 대한 제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의약전문매체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 따르면 현재 FDA는 심장 수술환자에게 체외심폐순환기(cardiopulmonary bypass)를 연결했을 때만 아프로티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팀은 "아프로티닌은 현재 러시아에서 인플루엔자(독감) 치료제로 승인받아 쓰이고 있다"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와 증식을 막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을 이용해 세포 속으로 들어갈 때 ‘TMPRSS2’라는 세포 물질(효소)을 이용하는데, 아프로티닌이 TMPRSS2의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대웅제약(069620)·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 생산하는 카모스타트, SK케미칼(285130)·종근당(185750)·JW중외제약(001060)·제일약품(271980)등이 생산하는 나파모스타트 역시 TMPRSS2를 억제하는 약물로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아프로티닌(위)과 대조군 약물(아래)의 세포변성효과(CPE) 억제 정도를 비교한 결과. 바이러스 감염 정도를 가늠하는 CPE는 아프로티닌을 투여한 세포에서 더 크게 줄었다./셀 캡처

아프로티닌(위)과 대조군 약물(아래)의 세포변성효과(CPE) 억제 정도를 비교한 결과. 바이러스 감염 정도를 가늠하는 CPE는 아프로티닌을 투여한 세포에서 더 크게 줄었다./셀 캡처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장 세포(Caco-2)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하고 아프로티닌을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감염 48시간 후 세포변성효과(CPE)와 바이러스 양을 알아본 결과 모두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CPE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세포가 변형되는 것으로, CPE가 심할수록 감염도 심한 것으로 판단한다. 바이러스 양은 약물 농도에 따라 900분의 1까지 줄었다. 대조군으로 쓰인 약물(SERPINA1)은 바이러스 증식 억제 효과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만들어져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물질인 카스파제(Caspase)의 활성도도 80%에서 30% 이하로 줄었다. 연구팀은 폐 세포(Calu-3), 기관지 세포에서도 효능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고 감염 초기의 폐 손상을 줄여 중증과 전신질환으로 발전하는 걸 막을 수 있어 유망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19 증상 중 하나로 피가 굳는 혈전 증상이 학계에 보고된 만큼 해당 증상을 가진 환자는 사용에 주의할 것을 경고했다. 아프로티닌의 기존 혈액응고 효능이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향후 아프로티닌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이게 된다면 기존 수술환자 출혈방지 용도와 별도로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해서 승인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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