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오는 6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 항소심 판결이 나온다. 작년 3월 첫 공판이 시작된 지 1년 7개월여만이다. 작년 1월 끝난 1심에서 김 지사는 댓글조작을 통한 컴퓨터 등 장애 업무 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 방해의 피해자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사이트다. 이들은 그러나 정작 공식적으로 피해를 호소한 적은 없다. 또한 컴퓨터 등 장애 업무 방해죄는 95년 신설된 이후, 김 지사처럼 징역형이 나온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이 죄를 판단하면서 법 신설 이후 최고형을 선고했다.
김 지사는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당선 무효형 기준은 공직선거법 위반 시 벌금 100만 원 이상, 형사법 위반 시 금고 이상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 형을 받으면 피선거권이 5년 간 제한되고, 징역형을 받으면 10년 간 제한된다. 앞으로 있을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에 김 지사의 정치생명이 걸린 셈이다.
이례적으로 긴 시간 진행된 항소심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허익범 특검 및 김 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와 김 지사측 변호인의 주장이 맞선 쟁점을 정리했다.
'드루킹' 김동원 씨의 진술은 김경수 경남지사 혐의와 관련한 핵심 증거 중 하나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된 2016년 11월 9일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특검 주장의 기초다. 1심 재판부는 드루킹의 진술이 일부 오락가락했음에도 그의 진술에 상당부분 의지한 판결을 내 놓았었다.
항소심에서 김 지사 측은 시연 자체를 본 적없다는 주장을 강화하며(☞관련기사 :
2016년 11월9일 킹크랩 작동을 둘러싼 그날의 진실은? ) 킹크랩 자체가 김 지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강화해 왔다. 만약 김 지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드루킹 진술의 힘도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경수 시연을 위한 킹크랩 프로토타입'은 없었다?
일례로 김 지사 측은 둘리 우모 씨와 함께 킹크랩을 개발했던 강모 씨의 맥북에 담긴 문서에 주목했다. 1심 판결 핵심 중 하나는 김 지사 시연을 위한 '킹크랩 프로토타입'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드루킹 일당은 2016년 11월4일부터 11월 10일까지 3개의 네이버 아이디를 이용한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네이버에 접속, 공감수 조작 등을 테스트 했다. 11월 10일부터는 3개의 아이디가 아니라 1개의 아이디로 접속한다. 우씨가 "(시연이 끝났기 때문에) 3개의 아이디보다 1개의 아이디로 개발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즉 당초 1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개발을 하다가 11월 4일부터 시연을 위해 3개의 아이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테스트를 하고, 시연이 끝난 후 다시 1개의 아이디를 이용한 개발로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결국 킹크랩 프로토타입은 '김 지사를 위한 개발'이었다는 논리다.
그러나 김 지사 측이 제시한 강모 씨 맥북에 담긴 문서는 판결문 내용과 다소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맥북에는 2016년 10월19일부터 개발단계에 따라 1. 분석설계, 2.개발, 3. 운영 등 체계적인 개발 문서가 해당 일자별로 '더미데이터'라는 이름의 텍스트(TXT) 파일로 보존돼 있다.
즉 특검의 주장대로 2016년 11월4일 이전에는 1개의 아이디로 개발 작업을 하다가 김 지사에 대한 시연을 위해 11월4일부터 3개의 아이디로 시연용 프로토타입 앱을 별도로 개발한 것이라면 애초에 1개의 아이디를 전제로 한 개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는데 2016년 10월21일자 '시나리오 관련 의견서_1020.docx'에 따르면, 김 지사 방문이 정해지기 전인 2016년 10월20일부터 이미 3개의 아이디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테스트할 계획이 존재한다.
별도로 3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개발을 한 것이 시연을 위한 것이라는 판결문의 사실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드루킹 진술 오락가락했지만 1심 재판부 '각론은 중요치 않아'
1심 판결문에 기록된 킹크랩 시연에 대한 '드루킹' 김 씨 진술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김경수)에게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도 또 질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문제가 생기면 감옥에 가겠습니다. 다만 의원님의 허락이나 동의가 없다면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서라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을 하니 피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그럼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시연이 끝난 이후에 강의장을 나오면서 피고인이 나에게 '무슨 감옥에 가고 그래. 도의적 책임만 지면 되지. 뭘 이런 걸 보여주고 그러냐. 그냥 알아서 하지'라고 이야기를 하여서 피고인에게 '그러면 안 보신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 대화에 관한 구체적 진술을 포함하고 있고 킹크랩 시연을 인정한 이후부터 일관되며, 당시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봤다는 우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점 △ 김 씨가 김 지사를 해칠 목적이었다면 킹크랩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시했다고 진술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상당히 신빙할 만 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킹크랩 시연에 대한 김 씨 진술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몇 차례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례로, 김 씨는 킹크랩 개발자인 '둘리' 우모 씨에게 시연을 지시한 시점을 '당일 → 2, 3일 전 → 일주일 전'으로 바꿨다. 김 씨가 김 지사에게 킹크랩을 시연할 당시 우 씨가 함께 있었는지에 대한 진술도 오락가락했다.
당시 김 지사 변호인 측은 '드루킹' 김 씨 진술이 오락가락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아 실형을 살고 있는 드루킹 일당의 옥중노트를 근거로 김 씨를 비롯한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를 공모범으로 몰기 위해 말을 맞췄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킹크랩 개발 지시 시점이나, 킹크랩 시연 당시 우 씨 참석 여부에 대한 김 씨 진술이 바뀐 데 대해 1심 재판부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불일치할 수 있다"고 봤다.
드루킹 일당의 진술 중 1심 재판부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제외한 진술도 있다. '창문을 통해 시연회장 내부에서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봤다'고 한 경공모 회원의 진술과 '김 지사에게서 100만 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는 김 씨의 진술이다.
'~보인다' 81차례 등장하는 판결문...'드루킹 진술'과 '심증'이 많다
1심 판결문의 모호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특검의 주장을 거의 모두 받아들인 1심 판결문에는 드루킹과 김 지사의 행위와 목적을 설명하면서 '~로 보인다', '~로 보이고' 등의 표현이 81차례 등장한다.
이를테면 판결문에는 "김동원은 2016. 9. 28. 피고인이 처음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하였을 때 한나라당 댓글 기계에 관하여도 언급하면서 적어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까지는 설명한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이러한 점은 피고인이 2016. 11. 9.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 김동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에게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시연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식이다.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킹크랩 프로토타입 시연 하게 된 동기들이 재판부의 '심증'으로 가득차 있는 셈이다. 객관적 물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증인들의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경우 객관적으로 보아 도저히 신빙성이 없다고 볼 만한 별도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는 한 이를 함부로 배척하여서는 안 되는 것", "(드루킹 진술 중) 의심할만한 진술이 보이기는 하나, 그러한 사정만으로 (...) 객관적인 사정에 부합하는 진술들까지 그 신빙성이 없다고 배척할 수는 없고 또한 일부 과장되거나 허위인 부분이 있다고 하여 그 진술 전부가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는 등 드루킹의 진술에 많이 기댄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인 "오락가락 진술 신빙성 없다. 진술 짜맞춘 정황도"
김 지사 변호인 측은 항소심에서도 '김 씨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1심 재판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드루킹 일당이 변호인 접견을 통해 말을 맞춘 뒤 진술을 바꿨다며 이들이 작성한 옥중메모를 근거로 '김 씨가 김 지사를 공모범으로 몰려 했다'고 주장한다.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김 씨의 옥중메모에는 "17일은 수사접견 거부하고 세 명 모두 상담할 것. 앞으로 진술 방향 등 정리해주고 임하게 할 것 / 18일부터 누가 수사접견 먼저 받고 오후에는 누가 검찰 출정해야 하는지 정해서 미리 전날 아침에 알려줄 것. 그래야 나머지가 거부를 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다.
김 씨의 옥중메모와 드루킹 일당 중 한 명인 양모 씨의 옥중메모가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김 지사가 김 씨에게 돈봉투를 줬다'는 대목과 '양 씨가 강의장 유리창 너머로 김 씨가 김 지사에게 킹크랩을 시연한 장면을 봤다'는 대목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두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변호인은 드루킹 일당이 진술을 서로 짜 맞춘 정황을 수사기관도 인정했다며 위와 같은 노트가 김 지사를 킹크랩 범행의 공범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허위 진술을 모의한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또다른 김 씨의 옥중메모에는 김 씨가 오사카 총영사 인사 추천과 댓글작업 등과 관련해 김 지사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 "김경수는 협박으로 넣고 싶어함. 그러나 업무방해건은 협박으로 되기 어려움(본인이 보고받지도 않고 알지도 못함)"이라고 쓰여있다.
변호인은 이에 대해 '김 지사가 업무방해건인 댓글 순위 조작에 대해서는 보고받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협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드루킹의 진술의 신빙성, 2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처럼 그대로 받아들여질까?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