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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차기 WTO 사무총장 선출

美 “유명희 지지”… WTO 선거 막판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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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줄 알았는데, 美中싸움에 요동

미국이 28일(현지 시각)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으로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공식 지지하면서 나이지리아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던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번 선거가 미·중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사무총장 선출 일정이 상당 동안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때 결과 승복을 검토하던 우리 정부 내에선 미국의 지지 선언 직후 ‘역전 가능성’을 거론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지난 19~27일 진행된 선호도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 BBC 등 외신은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WTO 이사회를 이끌 것을 제안받았다고 보도했다. 총 163개 회원국 중 100국이 넘는 지지를 확보했을 정도로 표 차이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가 그간 서신·전화 외교를 통해 각별한 공을 들였던 유럽연합(EU), 아프리카와 가까운 중국이 나이지리아 후보의 손을 들어준 영향이 컸다.

조선일보

유명희, 오콘조이웨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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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일본도 유 본부장 당선을 막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낙선 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공식 지지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나이지리아 후보는 선호도 조사 마지막 날인 27일 트위터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 대해 “진정한 리더십”이란 표현도 썼다. 외교가에선 “한국 정부가 승복을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선호도 조사 직후 미 무역대표부(USTR)가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USTR은 “유 본부장은 성공적인 통상 협상가와 무역정책 입안자로서 25년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진정한 통상 전문가”라며 “이 조직의 효과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선호도 조사 결과에 승복해온 WTO 관행을 깨고 열세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친중(親中) 성향으로 알려진 나이지리아 후보 대신 한국 후보를 총장 자리에 세우려는 (미국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이 줄곧 탈퇴를 주장할 정도로 미국은 WTO가 중국에 편향적이라고 보고 있다.

컨센서스(만장일치) 방식으로 사무총장을 추대하는 WTO 선거 특성상, 국제사회 영향력이 큰 미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후보 선출이 지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WTO 안팎에서 다수 득표자가 당선되는 방식의 재투표, 또는 유 본부장과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사무총장 임기를 절반씩 나눠 맡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앞서 1999년에도 의견 일치에 실패하자 4년인 사무총장 임기를 6년으로 늘려 마이크 무어 전 뉴질랜드 총리와 수파차이 파닛차팍 전 태국 부총리가 3년씩 나눠 맡은 전례가 있다.

키스 록웰 WTO 대변인은 차기 사무총장 승인을 위한 11월 19일 특별 일반이사회 전까지 “떠들썩한(frenzied) 활동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나이지리아 후보 우세로 나온 이번 투표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현 단계에서 물러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구체적 득표수가 언급된 내·외신 일부 보도는 일방적 주장이라 생각한다”며 “아직 공식 절차가 남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WTO 내부 논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판세가 아직 유동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약 90국에 정상 통화와 친서를 보내 유 본부장 지지를 호소하는 등 ‘제2의 반기문’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벌여왔다.

외교부 이재웅 부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회원국들의 입장과 기대, WTO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존중하면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진행된 한·캐나다 외교 차관 통화에서도 “양국이 WTO 사무총장 선출에 대해 긴밀히 협의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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