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9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정부 세종청사 기자실에서 벽에 기대 생각에 잠겨 있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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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세계무역기구) 판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례적으로 WTO 결선 투표 결과를 사실상 ‘거부’하고,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유명희 후보 구하기에 나섰다. 28일 WTO결선 투표에서 전체 회원국 164국 가운데 중국 등 100여국이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를 지지해 그의 사무총장 추대가 확실시되는 순간, 미국이 기습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유명희 열세’로 나타난 투표 결과에 고개를 떨군 우리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도 미국의 지원 공세에 역전의 희망을 잠시 품는 분위기이다.
201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통상 대표단이 회의하는 모습. /산업부 제공 |
WTO는 이날 관례상 두 후보의 각 득표수를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BBC 등 외신들은 WTO 소식통을 인용, “전체 164회원국 가운데 약 104국이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 표를 줬다”고 보도했다. 통상적이라면 유 본부장은 결과에 승복하고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회원국 만장일치로 차기 사무총장에 추대되도록 하는 ‘컨센서스(의견일치)’ 절차에 동참해야 한다. WTO 결선 투표는 일반적인 선거와 달리 다수 득표자가 바로 당선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대세(大勢)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선호도 조사다. WTO는 이 결과를 근거로 소수파에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다수 회원국의 뜻에 따라달라고 요청해, 만장일치의 결과를 만들어 차기 총장을 추대한다.
하지만 이번에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갑자기 성명을 내고 ‘우린 유명희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각국은 지지후보를 비공개로 WTO 측에 전할 뿐 공개하진 않는다. 지지하지 않는 나라와의 외교적 관계, 그리고 차기 WTO 사무총장의 리더십 보호를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1월 7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열기 전 악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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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성명을 통해 “유 본부장은 성공적인 통상 협상가와 무역정책 입안자로서 25년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진정한 통상 전문가”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친중파인 나이지리아 후보의 총장 행을 막고, 한국을 그 자리에 세우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가디언 등 여러 외신은 결선 투표 결과에 반대해 한국을 돕는 미국의 행태는 WTO를 관례를 깨는 것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례적인 것이다.
미국이 WTO 선거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중국 견제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은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정’에 반대하며 무역분쟁에서 일종의 대법원 역할을 하는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막아 기능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WTO가 중국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WTO 탈퇴를 거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하는 장면. /청와대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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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이런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막판 역전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중국의 의사를 따르는 여러 개발도상국이 일단 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데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유럽과 일본마저 한국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로선 미국이 유일한 ‘비빌 언덕’인 셈이다.
가디언은 “미국이 계속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WTO는 지난 25년 동안 컨센서스로 사무총장을 선출한 것과 달리 결국 다수 득표자가 당선되는 방식의 투표를 하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나이지리아 후보 우세로 나온 이번 투표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현 단계에서 물러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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