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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윤석열·추미애·대통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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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윤석열·추미애·대통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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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정감사가 끝났다. 이번 가을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람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추 장관이 먼저 국감장에 나왔고, 다음에 윤 총장, 그리고 어제 추 장관이 한 번 더 나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요, “이상한 대통령”을 모시고 일하는 “이상한 고위 공직자들”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아무 쪽 허공이나 보고 자기 얘기만 지껄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 같다.

첫째 ‘이상한 나라의 풍경’은 윤석열·추미애 두 사람의 직설적인 발언에서 비롯됐다. 윤 총장은 분명하게 말했다.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이에 대해 똑같은 국감장에서 “장관은 총장의 상급자”라고 했다. 총장은 장관에게 나는 당신의 부하가 아닙니다, 라고 했고, 그러자 장관은 총장에게 나는 당신의 보스가 맞소, 하고 정면으로 치받은 것이다.

부하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자 민주당은 불난 호떡집처럼 떠들썩했다. 그쪽 사람들은 일단 ‘부하’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김용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이 장관과 친구입니까? 부하가 아니면 친구입니까? 대통령과도 친구입니까?” 추 장관은 “생경하다”고 했다. 노웅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 선을 넘었습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 한 것은, 자기는 위아래도 없다, 지휘를 따르지 않겠다, 결국 항명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휘를 받아도 부하가 아니라는 말, 술 먹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말입니다. 치졸한 말장난입니다.”

그러나 많은 법조인들은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상명하복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검찰청 법에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내 명을 거역했다”느니, “말 안 듣는 총장”이라느니 하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윤 총장 본인이 이렇게 설명했다. “장관은 정치인이다. 정무직 공무원이다. 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와 소추를 정치인이 지휘하는 셈이다. 이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복잡한 말이 필요 없다. 윤석열·추미애,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사람이다. 윤석열은 부하가 아니라고 하고, 추미애는 자기가 상급자라고 하니 임명장을 준 대통령이 누가 맞는지 밝혀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청와대도 대통령도 꿀 먹은 곰처럼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이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한다. 검찰은 행정기관인가, 준사법기관인가. 이런 논쟁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법조인이나 법학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된다. 부하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가려달라는 것이다.

다음은 윤 총장의 거취 문제다. 윤 총장은 국감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면권자인 대통령께서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러자 추 장관이 이것 역시 정면으로 치받았다. 어제 추 장관은 “그분(문대통령)의 성품을 비교적 아는 편이다. 절대로 비선(秘線)을 통해 메시지와 의사를 전달할 성품이 아니다”고 말했다. 자, 이것도 누구 말이 80%쯤 맞고 누구 말이 20%쯤 맞고, 이렇게 타협 선을 정해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소임을 다하라는 말을 했는가, 안 했는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하긴 문 대통령의 평소 어법으로 보건대 물러나라는 것인지, 자리를 지키라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말이 전달됐을 수도 있다. 가령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소임을 다하세요. 그러나 상황에 따라 스스로 거취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고요.” 뭐 이런 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됐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 윤 총장은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그 뜻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청와대 수석, 혹은 민주당 고위 당직자, 혹은 대통령의 최측근을 암시하는 듯 말했다. 그러나 추 장관은 그 ‘적절한 메신저’를 ‘비선’이라고 규정해버렸다. ‘적절한 메신저’와 ‘비선’은 어감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적법한 느낌을 주고 다른 하나는 음험한 불법의 뉘앙스를 풍긴다. 게다가 추 장관은 문 대통령의 ‘성품’을 거론해버렸다. 내가 그분의 성품을 아는데,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라고 해버린 것이다. 이런 화법과 말투는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가 말썽부릴 소지가 있는 아이를 어를 때 쓰는 것이다. ‘나는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다만 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너를 꼬드겨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하는 식으로 쓰는 말인 것이다.

추 장관은 사실은 자신의 임명권자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내가 대통령 성품을 아는데, 그럴 분이 아니다, 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윤 총장에게 소임 다하라는 메시지가 가긴 간 것 같은데, 그것은 아마도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 판단한 일인 것 같다, 국감 끝나고 나서도 비슷한 얘기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감히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다짐 받듯 못을 박아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쐐기를 박아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는 것은 역시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침묵 때문이다. 총장은 분명하게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고, 장관은 대통령의 성품까지 거론하며 쐐기를 박듯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는데, 정작 문 대통령은 꿀 먹은 곰처럼 조용하다. 이것이야말로 황희 정승이 했던 것처럼 “네 말도 맞다, 네 말도 맞다”,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없는 사안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대통령”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게 “우리 윤 총장~”하면서 임명장을 주었고, “살아 있는 우리 권력도 수사하라”고 했고, “소임을 다하라”고 해놓고서, 이렇게 겉으로는 착하고 선한 이미지를 한껏 드러내놓고, 뒤로는 윤 총장을 포위 공격하고, 인사 학살을 하고, 수사팀을 공중분해 시키고, 수족을 잘라 식물총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모든 일의 뒤에 문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이 이중성은 ‘유체 이탈’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날 사설 제목은 이렇다. “너무 달라 두려움마저 드는 문 대통령의 겉과 속”.

윤 총장은 자신의 수사지휘권을 추 장관이 박탈한 것에 대해 ‘위법’하고 ‘부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추 장관은 “그런 말을 하려면 직을 내려놓으면서 검찰조직을 지키겠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한마디로 ‘나한테 대들려면 사퇴한 다음에 해라’, 이런 뜻이다. 우선 총장이 장관의 부당함에 저항할 때 꼭 사퇴를 한 뒤에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인식부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을 내려놓지 않고, 직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장관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추 장관이 혹시 총장에 대한 ‘해임 건의’까지 생각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검찰총장 임기가 법률에 의해 2년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임기를 마친 총장은 8명, 도중에 물러난 총장은 채동욱·김수남, 두 명이다. 그런데 둘은 모두 자진 사퇴였다. 강제로 물러나게 하려면 1)보직 해임, 2)검사직 박탈, 3)국회 탄핵 등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보직 해임’은 자칫 행정소송까지 갔다가 대통령이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임기를 보장받고 있는 KBS 사장에게서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 다음은 총장이 파렴치한 비위 사실을 저질렀을 때 하는 ‘검사직 박탈’과 ‘탄핵’이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과 정치적 역풍이 불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석열 총장은 “퇴임 후 국민들에게 봉사하겠다”는 국감 마지막 발언으로 정치권을 뒤흔들어버렸다.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차기 대선 때 여야 양쪽 대표 선수는 결국 어떤 얼굴로 결정될지 내일 말씀 드리도록 하겠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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