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위반에 대해 징계 제각각
친소가 아니라 기준에 따라 해야
KPGA가 선수 징계를 놓고 그때 그때 다른 잣대를 적용해 논란이다. 사진은 지난해 욕설로 징계를 받았던 프로골퍼 김비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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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골프대회는 무관중이다. 심지어 기자도 코스에 못 간다. 보는 눈이 적다. 그래서일까. 선수들 행동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지난해 일어난 김비오 손가락 욕설 파문을 잊은듯 여기저기서 욕설을 하거나 클럽을 내동댕이치는 등 에티켓 위반 사고 소식이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고무줄 징계다.
7월 KPGA오픈 대회 때 일이다. A는 퍼트가 잘 안 되자 홀아웃한 뒤 그린 프린지를 퍼터로 내리쳤다. 경고로 끝났다.
같은 대회에서 B는 드라이버로 티잉 구역을 내리쳤다. B는 실격 처리와 함께 한 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원 징계를 받았다.
A는 그린 프린지, B는 티잉 구역이라서 징계 수위가 달랐을까. 티잉 그라운드는 그린 프린지보다 신성한가. 그건 아닌 듯하다.
같은 티잉 구역인데도 다른 징계가 내려졌다. C는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티샷을 실수하고 드라이버로 티잉 구역을 내리쳤다. 벌금 100만원.
D도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드라이버로 땅을 내리쳤다. 실격+한 경기 출장정지+벌금 100만원.
KPGA 김태연 경기위원장은 “B는 함께 경기한 선수가 위원회에 찾아와 항의할 정도였다. C는 딱 한 번만 내리쳤고 곧바로 사과했다. D는 4개 홀 연속 드라이버로 내리쳤다”고 다른 징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B는 구두 사과가 아니라 정중한 공식 서면 사과문까지 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별로 없어 한 경기 출전정지는 선수에겐 큰 징계다.
B는 “이전까지 에티켓 위반은 경고만 하던 사항이다. TV 카메라에 잡힌 것도 아니다. 티잉 구역이 훼손됐는지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다. 상대 선수 의견만 듣고 실격에, 출전정지, 벌금까지 부과했다. 황당하다”고 반발했다.
고무줄 징계가 티잉 구역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E는 제네시스 챔피언십 18번 홀에서 홀아웃한 뒤, 그린 밖으로 나가자마자 부수려는 듯 퍼터 헤드를 발로 두 차례 짓밟았다. TV 카메라에 잡혔다. 경기위원회는 징계를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홀아웃한 뒤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경기가 종료된 상황이라 판단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벌위원회에 징계 의견을 첨부해 보내겠다”고 해명했다.
골프 규칙을 담당하는 경기위원회의 변명치고는 궁색하다. 골프는 18번 홀 홀아웃이 아니라, 스코어카드에 사인해야 경기가 끝난다. 따라서 경기 중에 일어난 사항이다. E는 상금도 받았다.
이런 일들은 에티켓 사항이다. 드라이버로 땅을 내리치는 등의 행동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에 대한 기준과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에티켓은 프로골퍼의 목숨과 같은 것”이라는 의견도, “화가 나면 그럴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에티켓 위반 사례별 패널티 기준(code of conduct)이 필요하다. 2019년 골프규칙이 바뀌면서 위원회가 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규칙이 생긴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이를 만들지 않았다. 올해만 문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김비오 건도 에티켓 위반 사례별 패널티 기준이 없어 커진 일이다. 기준이 없으니 우왕좌왕하다 현장에서 징계를 못했고, 당사자가 우승까지 하게 되자 엄청난 팬들의 반발이 터졌다. KPGA는 이를 무마하려고 에티켓 위반에 3년 출전정지라는 어마어마한 중징계를 내렸다가 슬그머니 줄여준 해프닝이었다.
KPGA 선수회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기위원회는 “내년에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나. 거물 선수는 못 건드리고 힘 없는 선수는 징계하는 건가. 혹시 고향 후배, 지인의 제자, 인사 잘하는 후배 등 친소 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징계하고 있는 건가.
정파적 이해나 친소 관계 등에 따라 비슷한 사안을 놓고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정치권과 뭐가 다를까.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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