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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 초기 왕궁터? 1500년 전 대형 건물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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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확인된 백제 사비시대 초기 대형 건물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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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사비시대(538~660) 초기 왕궁터일까? 충남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6세기 백제 사비기 왕궁과 관련된 건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와 함께 대가야 토기, 중국제 자기, 옻칠 토기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백제 왕궁 종합학술연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한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백제 시대 건물터 6동과 약 30m 길이의 장랑형(동서 방향으로 긴 형태) 유구, 울타리, 배수로, 우물 등이 나왔다고 13일 밝혔다. 모두 사비시대 초기 왕궁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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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쌍북리 유적 전경.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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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건물터 1은 중앙에 자리한 사각형의 건물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부속건물이 추가된 ‘역 품(品)’자형 건물로, 1개의 구덩이 양쪽으로 30㎝ 내외의 기둥을 세운 점이 특징이다. 사비도성 내에서 이런 건물터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건물터 위에서 또 다른 대형 건물터도 확인됐다. 건물터 2는 ‘역 품(品)’자형 건물터 위에 30㎝ 가량 흙을 쌓고 다시 축조했는데, 동서길이 1240㎝, 남북길이 720㎝에 달한다. 김대영 학예연구사는 “웅진 백제시기 공주 공산성 내 왕궁 관련 유적에서 나온 건물터와 형태와 크기가 비슷하다”며 “사비 천도 후 초기 핵심 지역이 쌍북리 일대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중요한 건물이 있고 앞에 넓은 마당과 차단 시설이 있는 이런 공간은 민간 건축으로 보긴 어렵다”며 “궁궐의 정전으로 보기엔 작고 공간도 협소하다. 궁궐의 한 부속 건물이거나 관아터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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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대가야 토기, 중국제 자기 등 유물.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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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건물터 1, 2 옆 부속공간에서 대가야 토기 2점이 출토돼 주목된다. 홍보식 공주대 교수는 “유두형 꼭지가 있고 뚜껑이 평평한 토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직전에 많이 나오는 뚜껑 형태”라며 “백제 지역 특히 사비도성 내부에서 가야 유물이 나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대가야 멸망이 562년인 점을 고려하면 부여 쌍북리 유적이 사비천도 초기에 조성됐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 연구소는 “'일본서기' 기록 중 ‘흠명천황(欽命天皇) 2년(541)’과 ‘5년(544)’에 대가야, 아라가야 등 가야 각국의 사신이 백제에 온 기록이 남아있다”며 “백제와 가야의 긴밀한 교류관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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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대가야 토기와 비교자료.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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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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