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공공(公共)의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정책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그리고 사사로움을 싹둑 베어낼 수 있는 날선 도덕과 윤리의식 등 다양한 덕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책임윤리가 아닐까 싶다. 책임윤리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역설한 것으로 행위의 동기가 선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심정윤리의 한계를 극복한 윤리 개념이다. 동기는 물론 행위의 결과까지 좋아야 한다는 책임윤리는 공직자라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할 소중한 덕목이다.
바야흐로 국정감사의 시절이다. 이번 국감은 적어도 체육에서만큼은 중요하기 그지없다. 체육이 워낙 수난을 당한데다 2016년 체육단체 통합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체육정책의 배후에 불순한 의도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사안에 천착했다간 거대한 밑그림을 놓칠 수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고 보면 이번 국감에 거는 체육계의 기대와 열망은 남다르다. 체육을 담당하는 중앙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여당 체육실세와 특정 학맥이 주도하고 있는 체육정책의 나팔수 역할에 머물기 보다는 그들이 그리고 있는 거대한 밑그림의 숨은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간파해야 불편부당한 정책을 견지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의 현실 인식은 여러모로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KOC(대한올림픽위원회)분리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어떤 불이익이 예상되는지 묻자 박장관은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분리여부는 나라마다 달라 KOC 분리는 IOC 올림픽헌장 위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발언은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NOC 분리가 각 나라의 특성에 따라 선택하는 그런 사안이지만 작금의 우리 상황을 교묘하게 비껴갔다. KOC 분리가 IOC의 제재사안은 분명 아니다. 다만 체육계가 반대하는 KOC 분리를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쏙 빼놓고 호도한 게 박 장관의 잘못된 발언의 핵심이다. 박 장관의 발언대로 IOC는 NOC를 분리한다고 제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해당 NOC가 반대하는 NOC 분리를 정부가 강행하는 건 맹백한 올림픽 헌장 위배로 중징계를 받게 돼 있다. 박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교묘한 말 솜씨로 책임윤리를 등한시 했다. 만약 한국이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체육의 자율성 위반으로 제재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 박 장관에게 뒤늦게 책임을 물어봐야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논리적 비약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박 장관은 “KOC 분리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 사안으로 찬성과 반대 논리가 있다. 공개적 토론을 거쳐 입법과정을 거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것 역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먼저 체육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고 그에 따른 민주적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체육현장의 목소리에 반하는 결정을 미리 내려놓고 공개토론과 입법과정을 운운하는 건 개발독재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톱 다운 방식’의 졸렬한 행정에 다름 아니다.
공직자에게 강조되는 책임윤리는 자칫 시행착오로 고통받을 수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배려의 가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지녀야 다수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닫힌 마음으로 섣부른 예단을 내리게 되면 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책임윤리와 담을 쌓는 공직자는 봉사와 헌신과는 거리가 먼 군림하는 관료에 다름 아니다. 뜻을 세우기 위해선 몸을 낮추는 게 필요한데 왜 우리의 공직자는 몸만 자꾸 높이려는가. 그런 공직자는 국민의 편이 아니라 공공의 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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