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라는 자산 운용사가 있다. 옵티머스는 원래 라틴어인데, “가장 좋은”, 그런 뜻이다. 이런 회사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몇 백, 몇 천, 혹은 몇 억 규모의 돈을 모아서, 그 돈이 수천 억 규모로 커지면, 자산 운용사의 투자 전문가들이 수익률 좋고 안정적인 곳에 굵직굵직하게 투자를 한다. 그렇게 해서 6개월이든 1년이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투자자에게 수익 배당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때 일반 투자자가 ‘나는 이제 당신네에게 내 돈을 그만 맡길 테니 내 돈을 돌려다오’ 하면 두말없이 그 돈은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투자 자금을 자산 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환매’라고 한다.
그렇다면 ‘옵티머스 사태’란 무엇인가. 바로 앞에 말한 ‘환매’, 즉 일반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환매’가 불가능해진 상황, 회사에 있어야 할 수천 억 투자 자금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일반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말한다. 옵티머스사는 올해 6월17일 ‘환매 중단’을 선언했고,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 됐으며, 개인 928명을 포함해서 투자자 1166명이 투자 원금 5151억원을 대부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언론에서 ’5000억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다. 자산운용사인 옵티머스를 책임진 사람들이 ‘나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좋은 뜻’을 갖고 운용했으나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슨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져 큰돈을 날린 게 아니다. 이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투자자를 속이고, 거짓투성이에, 서류조작에 온갖 사기행위를 벌였다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부산시 매출 채권’처럼 “부산시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돈을 떼일 일이 없는 공공기관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비상장기업의 사모 사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코스닥 상장사 인수합병 같은 위험 자산에 돈을 넣었다는 게 드러났다.
한마디로 “그러다 망한 것”이다. 그 결과 아까 말한 것처럼 올 6월17일 환매 중단 선언이 있었고, 일주일 뒤인 6월25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으며, 다시 일주일 뒤인 6월30일 옵티머스사의 영업 정지가 결정됐고, 다시 일주일 뒤 7월7일 김재현 대표, 이동열 대표이사, 윤석호 감사 같은 관계자들이 전격 구속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은 이런 사기꾼들이 활개 치도록 마냥 허술하기만 한 것일까.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들의 자산 운용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관들이 버젓이 있다. 이들이 네댓 개의 유령회사를 차렸고, 100장이 넘는 위조 서류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그런 사기 행각을 사전에 들여다보고 감시·감독하라고 국민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같은 기관이 있다. 이런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자산 운용사를 감시해서 선량한 투자자들의 원금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가장 커다란 궁금증이 남는다. 이런 사기꾼들은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감추기 위해서, 그리고 일이 터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일종의 구명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했을 것이다. 특히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 집권 여당, 금융위원회, 검찰, 이런 곳에 갖은 인맥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종의 보험금처럼 뇌물을 상납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가 작성했다는 ‘대책 문건’이라는 게 이미 검찰에 확보돼 있다. 이 문건에는 청와대 실장급·비서관급 5명, 민주당 인사 7~8명을 포함해서 정·관계 기업인 등 20여 명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검찰에서는 부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옵티머스의 감사역을 맡고 있는 윤석호 변호사가 ‘펀드 하자(瑕疵) 치유 관련’이란 문건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이사가 민주당과의 과거 인연을 매개로 국회의원, 민주당 유력 인사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짓으로 탄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및 정부 관계자들이 당사(옵티머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결”. 더 나아가 권력 실세들이 더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정황도 나와 있다. 문건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 ‘이혁진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줬던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돼 있고, 펀드 설정·운용 과정에서도 관여가 돼 있다." 정부 여당 사람들이 옵티머스의 ‘수익자’였으며, 그러니까 돈을 받아갔으며, 펀드 운용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 아침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감사역 윤석호 변호사의 처 이 모 행정관(36)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하기 전부터 옵티머스의 지분 9.8%를 소유한 대주주였다는 게 드러났다. 또 이 모 행정관이 청와대에 근무할 때 추미애 법무장관은 서울남부지검에 있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으며, 이 모 행정관은 자신이 보유한 9.8%의 주식을 김재현 대표의 비서가 소유한 것처럼 거짓으로 차명 전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행정관은 지난 6월 청와대를 사직했는데, 그녀가 청와대에 남아 있으려 한 이유는 “옵티머스에 대해 예상되는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 수사를 저지·지연시키기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이와 별도로 서울남부지법 법정에서는 검찰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폭로가 나왔다. ‘옵티머스 사태’와 아주 흡사한 사건으로 무려 1조6000억원의 피해를 낸 ‘라임 사태’라는 것이 있다. 이 역시 ‘라임(Lime)’이라는 자산운용사가 좀비 기업에 투자하는 등 편법 거래를 일삼고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다가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사건, 즉 파산해버린 사건을 말한다. 이후 구속된 그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라임 자산운용사의 실소유주인 김봉현이라는 사람이 ‘당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현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법정 증언을 한 것이다. 광주MBC 사장을 지낸 이강세라는 사람을 통해서 줬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움직이고, 그가 다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움직이면, 김상조 실장이 금감원의 조사를 무마시켜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증언이 아주 구체적이다. 이렇게 돼 있다. “작년(2019년) 7월27일 이강세 대표가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러 간다고 하길래 집에 있던 돈 5만원권, 50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아 넘겨줬다.” “이강세 대표가 전화를 해서 내일 강기정 정무수석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용이 5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큰 거 1개는 1억원, 5개는 5000만원이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펄쩍 뛰고 있다. “완전 허위다. 민·형사를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대응을 강력히 취하겠다”고 반박했다. ‘돈 전달’의 근거로 볼 수 있는 정황은 있다. 김봉현 씨가 이강세 씨에게 돈을 전달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있다. 호텔 이름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강기정 전 수석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강세 씨를 만난 것까지는 인정하고 있는데, 돈 받은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배달 사고’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뇌물사건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자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돈을 준 사람은 위증일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법정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봉현 씨는 돈 받은 쪽에 대한 검찰 조사가 흐지부지될 기미를 보이자 법정에서 폭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언론사 제소, 그리고 관련자 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은 원하고 있다. 이왕 제소를 한다면 끝까지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은 없는, 코리안 미스터리가 마치 무슨 진실게임처럼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권력형 게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했다. 옵티머스 수사 과정에 드러난 정관계 실세 명단 20명, 그 내용을 밝혀야 할 것이고, ‘강기정 뇌물 수수 의혹’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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