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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방관자로 남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 곁에 선 조력자들의 이야기[플랫] [미투, 지워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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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투’의 조명은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을 비춘다. 그중에서도 가해자는 풍성하고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받는 반면 피해자는 빈약하고 납작하게 그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명이 비추지 못한 한편에는 항상 피해자를 돕는 이들이 있었다. 서사 자체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 바로 ‘조력자’들이다.

지난 3일 만난 조력자들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조력을 ‘구원’이라 했고, 피해자에게는 “내가 더 이상 나쁜 일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또 다른 조력자는 피해자를 도우며 과거 자신이 입은 상처를 치유받았다고도 했다. 이들이 겪은 고통 또한 예상을 간단히 넘어섰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피해자만큼 조력자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학원 내 성폭력 피해자 조력자 2명과 언론계, 예술계 성폭력 조력자 각각 1명씩 모두 4명의 조력자가 용기를 내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이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이름과 학교, 직장 등은 익명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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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한 일



조력자의 역할은 다양했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피해자를 대신해 운전을 하고 각종 관련 기관에 동행하거나, 책임 있는 이에게 따져묻는 일도 함께했다. 다른 피해자를 모으고 공론화하는 역할도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발에 나서도록 용기를 주는 일까지 모두 조력자들의 역할이었다.

대학원 내 조력자인 A씨는 피해자 B씨의 고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왔다. 교수에게 오랜 시간 성추행·성희롱을 당한 B씨가 “신고하려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강사인 A씨는 바로 응했다. B씨가 유학을 떠난 뒤 신고가 이뤄져 국내에 없는 그를 대신해 각종 단계에서 대리인 역할을 했다. 특히 신고 후 2차 가해가 잇따르고 B씨가 힘들어하자 A씨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A씨는 “피해자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동할 땐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운전을 해줬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예술가 C씨는 유명 작가에게 성희롱 피해를 입은 D씨의 조력자다. 그는 혼란을 느끼는 D씨를 안심시키는 일부터 했다. 그는 “피해자에게는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고 가해자가 100%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의논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조력자 모두 프리랜서 신분이었기 때문에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는 것도 함께했다.

언론사 조력자인 E씨는 상사에게 성추행당한 후배 F씨를 위해 간부를 직접 찾아갔다. 당시 회사가 문제를 제기한 F씨를 부당 전보한 데 대한 항의성 방문이었다. 그는 “이것은 정말 아니다”라며 피해자 보호를 촉구했다. 또 다른 대학원 성폭력 피해자의 조력자인 G씨는 자신을 ‘옆에서 얘기하고 (피해자에게) 잔소리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피해자가 왜 나를 조력자로 지목했는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대답을 한 그는 “피해자가 힘들어했고 피해 사실을 아무 데나 얘기할 수가 없었다. 들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선 이유



조력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예술계 조력자인 30대 C씨는 피해자 D씨가 성희롱 피해를 입기 전 같은 가해자에게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받는 등 불쾌한 연락을 여러 번 받았다. 예술계에서 숱하게 겪은 일이었다. 조심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때 D씨가 타깃이 됐다.

C씨는 조력자 4명 중 피해자와 친분이 없는 유일한 사례였다. 딱 한 번, 피해자와 가해자까지 3명이 업무 관련 회의를 한 것이 전부였고, 피해 사실을 전해들은 것도 회의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럼에도 나선 이유를 C씨는 이렇게 말했다. “방관자로 남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성세대에 편입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언론사 조력자 E씨도 수년 전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 몇몇 사건들로 고통받은 그는 용기를 내 증거를 잡아 윗선에 알렸다. 인사를 통한 분리 조치를 관철해냈지만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이후 직간접적인 2차 가해와 업무적 불이익 가능성에 대한 스트레스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E씨는 힘 있는 사람에 맞서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과거 부조리에 눈감은 자신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다는 책임감도 작용했다. 대학 강사인 A씨는 “피해자의 신고 내용이 강제적 회식과 술 문화, 갑질 등 학과 내 뿌리 깊은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며 “평소 많은 학생들이 성추행, 학문적·인권 착취를 당해왔다”고 말했다. 그 또한 피해자였다. 연구윤리 문제를 지적했다가 ‘왜 선배 일에 나서냐’며 되레 주의를 받기도 했다. 학과 일원으로서 문제 해결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피해자보다 이 학과에 오래 있었던 내가 이런 과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과거 성폭력 상담기관 등에서 일하며 쌓은 경험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조력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미투 조력자인 G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2년, 인권단체에서 6개월간 봉사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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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에 참여한 조력자들이 지난 1월 인터뷰 하기 전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조력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성폭력의 구도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이 겪는 기쁨과 슬픔,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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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겪어야 했던 것



소설가 김금희씨는 <경애의 마음>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조력자에게 번졌다. 조력자 상당수가 피해자와 유사한 경험이 있어 자신의 피해를 떠올렸다.

A씨는 “피해자의 고통을 감히 내가 함께 겪었다고 할 수는 없다”며 우울증과 불면증, 면역력 저하 등 피해자 B씨가 앓았던 질병 이름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가 견뎌온 시간 또한 짐작하게 했다. “B가 처음 피해 사실을 털어놨던 때를 생각하면 무조건 눈물이 쏟아져요. 저도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입었던 피해가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얘가 너무 불쌍한데 내 피해도 생각이 나니까….”

E씨도 “(성폭력 사건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며 “내 (피해) 기억 자체를 떠올리는 것도 괴롭다”고 말했다. 때론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무력감까지 더해졌다. 미투 이후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특히 심했다. E씨는 “더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만 있다”며 “피해자 얼굴 보기도 부끄럽다.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도 못하겠다. (해결이) 안 됐다는 게 죄책감으로만 남는다”고 했다. 언론사 성폭력 가해자는 불이익 없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반면 피해자 F씨는 수년째 휴직 상태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가해는 조력자에게도 이어졌다. 조력자들은 각종 비난과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렸다. 대학 강사인 조력자 A씨에게는 ‘가해 교수 쫓아내고 교수 되려고 사건을 조작하고 피해자를 조종했다’는 뒷말이 따라붙었다. 가까웠던 교수·강사와 대학원생들이 동조했다. “해명하고 서로 풀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한 번도 응답받지 못했다.

고통은 심리적인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터를 떠나거나 미래의 꿈 일부를 포기하는 일도 생겼다. A씨는 수년간 강의한 대학을 떠나야 했다. 가해자 측 회유에 응하지 않자 인사 보복이 돌아왔다. 예술계 프리랜서인 C씨는 미투와 동시에 가해자·피해자와 함께하려던 프로젝트 참여를 포기했다. 향후 가해자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력도 각오하고 있다. C씨는 “유명한 사람이니까 내가 이 일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눈감으면서 일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조력자들은 왜 피해자가 되는 걸까. G씨는 “공격하는 사람은 말(고발)한 사람을 ‘시끄러운 자’로 만든다”고 했다. A씨는 “힘을 가진 사람은 계속 똑같이 살아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 잘못을 지적해도 책임을 돌린다.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력은 상처가 되지만, 치유도 된다. 몇몇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도우며 고통받는 한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았다고 했다. C씨는 말했다. “저는 마음에 쌓아놓고 살았어요. ‘피해 입었어 피해 입었어’ 하면서요. 그런데 이 일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그 친구(피해자)한테 고마워요.”

A씨에게 조력은 ‘구원’이었다. 학내 부조리에 눈 돌리며 스스로 피해자라 생각하면서 지낸 그를 “신고하겠다”며 나선 피해자가 건져올렸다. 그는 “윤리적이어야 할 학자들이 왜 그러지 못한지 항상 의아했지만 문제를 고발 못하고 살았다”며 “피해자가 나서면서 오히려 제가 구원받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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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A씨는 2차 가해에 대한 명료한 정의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것이 2차 가해이고 아닌지 애매한 부분이 있고 인식도 없는 편”이라며 “명료한 정의와 교육, 시스템화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 강력한 처벌이 없으면 조력자는 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사 조력자 E씨는 ‘성적인 문제가 있으면 내보내는 무관용 원칙’을, G씨는 조력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회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꼽았다.

조력자에게도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조력한 이들 옆에는 늘 버팀목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다. C씨는 말했다. “배우자(사건 당시 남자친구)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가해자의 행동이 성폭력인지 저조차도 혼란스러웠는데 ‘그루밍’이고 성폭력이 맞다고 정리해줬습니다. 전 과정을 상의했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와주라’고 했어요. (조력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거나 ‘괜히 피해 입는 거 아니냐. 하지 말라’고 했다면 저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전문가들은 보다 체계적인 조력자 보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학자 허민숙씨는 “피해자 혼자라면 무너뜨리기가 쉽다. 더 많은 조력자가 나오려면 성폭력특별법에 이들에 대한 2차 가해 관련 조항을 신설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신고인 보호에 준하는 인식 개선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피해자는 물론 조력자, 목격자까지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철저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성폭력 관련 독립기구를 직장 내에 운영하거나 피해자가 원치 않는 조치를 했을 때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력자 보호의 필요성은 판례를 통해 인정되기도 했다. 2017년 12월 대법원은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내린 보복성 징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조력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조력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조력자들은 다양한 답변을 내놨다. A씨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진심으로 끝까지 간다는 마음이 없으면 시작을 말아야 한다. 애매하게 조력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 또한 그런 이들을 목격했다. 한때 조력자였던 그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닥칠 것 같자 태도를 바꿔 “알고보니 쟤들 나쁜 애들이더라”며 공격했다.

A씨는 작은 도움도 조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정에서 증언하거나 앞장서 가해자에 맞서는 것만 조력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내 안전을 버려가며 조력하라고 할 수는 없다. 2차 가해를 하지 않는 소극적 행동으로도 피해자에겐 도움이 된다”며 “2차 가해가 일어날 때 ‘그러지 말자’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G씨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조력에 나섰다 불이익 입은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진실을 말한 것으로 밥줄이 끊긴다면 자괴감이 들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피해자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하면 오래 못해요. 피해자들이 피해를 고발하고 대응 전략을 짜는 등 피해가 객관화되는 과정을 보면 건강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C씨는 “성폭력이 언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 그래서 그저 넘어간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며 적극 대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정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은 자신은 “상대적으로 2차 가해나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면서 조력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얼마나 부담이 클지 알고 있어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해봤으면 합니다. 시간이 흘러 과거를 돌아볼 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고 잘못한 것은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수동적인 자신을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그때뿐입니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이보라 기자 purple@khan.kr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이창윤 기자 noru@khan.kr
이창준 기자 jchang@khan.kr
윤기은 기자 energyeu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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