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수출까지 눈앞에
최근 1조원 규모 호주 자주포 사업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K9 자주포가 지난 17년 동안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가량을 석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1년 이후 세계 각국에 수출된 K9 자주포는 6개국 590문, 2조원 어치에 달한다. 호주 자주포 사업에서도 최종 선정될 경우 총 수출액은 3조원에 이르게 된다.
우리 국산 무기 중 수출 시장에서 가장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K9이 진출한 나라는 터키(280문), 폴란드(120문), 인도(100문), 핀란드(48문), 노르웨이(24문), 에스토니아(18문) 등이다.
호주 정부는 지난 3일 K9 자주포를 육군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랜드 8116 자주포 획득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K9 제작사인 한화디펜스는 호주법인(HDA)을 주축으로 호주 정부와 제안서 평가 및 가격 협상 등을 진행한 후 양산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1차로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납품하게 된다. 총 사업예산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르웨이에서 현지 시험평가를 위해 설원을 달리고 있는 K9 자주포/조선일보 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호주 수출 성공시 영국, 미국 등 파이브아이즈 국가 진출 유리
K9은 호주 사업 도전 10여년만에 수출 성공을 눈앞에 두게 됐다. 삼성테크윈이 K9을 만들던 때인 지난 2010년에도 경쟁 입찰을 뚫고 호주 육군 자주포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가 갑자기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2012년 사업을 취소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호주는 그뒤 자주포 대신 값싼 견인포를 도입했다가 한계를 느끼고 다시 K9 자주포를 찾게 된 것이다.
호주 사업 성공에는 적극적인 현지화 노력이 큰 도움이 됐다. 한화디펜스는 멜버른에서 한 시간 거리인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K9 현지 생산시설을 구축할 예정이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질롱시에서 현지 중소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인력 교육, 정비·보수 등 사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산 전문가들은 K9이 호주 수출에 성공하면 영국,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은 물론 미국 시장 진출에도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성수 한화디펜스 사장은 “호주는 파이브아이즈(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일원으로 영향력이 큰 국가”라며 “선진국의 까다로운 심사를 뚫어내면서 한국 무기의 수출길도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한국에서 도입해 현지 생산한 K9 자주포에 직접 탑승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
K9은 국방과학연구소(ADD)과 한화디펜스(구 삼성테크윈) 등이 90년대 말 개발한 육군의 주력 자주포다. 1100여문이 실전배치됐고 연평도 포격도발 등 실전에도 투입됐다. 자동화된 사격통제장비, 포탄 이송 및 장전장치를 탑재했다. 15초 이내에 최대 3발, 3분 동안 연속 18발을 사격할 수 있어 신속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다. 길이는 12m, 중량은 47t, 최고속도는 시속 67㎞다. 길이 8m에 달하는 52구경장 155㎜포를 장착하고 있다. 1문당 가격은 40억~50억원이다.
K-9은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 6문 중 2문이 북한 포사격 충격으로 인한 전자회로 장애 등으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량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계 수출 시장에서 잇따라 승전고를 울리며 ‘화려한 부활’에 성공한 것이다.
◇ 17년간 세계 자주포 시장 48% 석권, 2위 독일 자주포의 3배 넘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K9은 지난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에서 절반 가까운 48%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018년 기준으로 총 572문이 수출돼 독일 PzH 2000(189문), 프랑스 카이사르(CAESAR·175문), 중국 PLZ-45(128문)를 크게 앞섰다.
독일 PzH 2000은 발사 속도 등 일부 성능에서 K9보다 우위에 있는 세계 최강의 자주포로 평가받아왔지만, 수출 실적에선 K9에 크게 뒤진 것이다. PzH 2000의 1문당 가격은 130억원으로 K9의 2배가 넘는다.
K10 탄약운반장갑차(사진 오른쪽)로부터 탄약을 공급받고 있는 K9 자주포./한화디펜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K9이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을 석권한 비결은 뭘까? 우선 수출 대상국의 상황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수출 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핀란드 수출의 경우 예산이 부족하자 새 자주포의 절반 가격으로 한국군이 쓰던 중고 K9을 정비해 수출했다. 중고 K9의 수출은 처음이었다.
우리 육군에서 사용한 지 12년이 지나 전면 정비를 해야 하는 자주포를 핀란드에 수출하고, 우리 육군에는 신형 자주포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핀란드와 우리 육군 모두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윈-윈(Win-Win)’ 모델을 만든 것이다. 이 중고품 수출 모델은 핀란드 수출에도 활용됐다.
◇ 중고품 수출, 현지 생산 등 맞춤형 수출전략 주효
폴란드에는 차체만 수출되고 있다. 방산 강국인 폴란드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폴란드는 K9 차체에 자체 생산한 포탑을 장착한 신형 자주포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에 맞서는 군사 강국인 인도에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에 부응해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K9 초기 인도분 10문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됐고, 나머지 90문은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푸네 인근 탈레가온의 L&T 공장에서 한화디펜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생산 중이다.
인도 정부의 제조업 활성화 캠페인 ‘메이크 인 인디아’에 따라 전체 부품의 50%는 인도에서 조달된다. 인도에서 생산된 K9은 ‘바지라’(‘천둥’의 힌디어)로 불린다. K9 ‘바지라’는 K9 ‘천둥’(선더) 자주포를 인도의 더위와 사막 지형 등을 고려해 개량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인도 방산전시회에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K9 ‘바지라’에 직접 올라가 보며 관심을 표명해 화제가 됐다.
세계 자주포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한 K9 자주포의 수출 점유 실태와 수출 대상 국가들./조선일보 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수출 추진 과정에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육군, 현지 대사관 등의 적극적인 지원도 회사 및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도움을 줬다. 육군은 해외 시험 평가 및 국제 전시회 마케팅에 필요한 K9 자주포를 적극적으로 빌려줬다. K9 자주포가 2017년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방산전시회(AUSA)에 참가해 처음으로 미 본토 상륙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육군의 지원 덕택이었다. 제작공정 자동화를 통한 원가 절감, 빅데이터 활용한 품질 개선 등도 K9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
◇ 기술료 면제, 후속 개량형 조기개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하지만 K9이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살아남고 추가 수출에 성공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기술료를 없애거나 면제 기간을 연장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술료는 방산업체가 무기를 수출할 때 해당 무기를 개발한 국방과학연구소에 지불하는 일종의 로열티다. 무기 가격의 2%를 지급해오다 지난해 1%로 낮춰졌다. 방산수출 활성화를 위해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기술료 지불이 유예되고 있는 상태다.
신속한 수출을 위해선 절차를 간소화하는 ‘패스트 트랙’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 등 기술보유 기관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고 수출허가를 받는 데엔 3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2010년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해병대 K9 자주포가 북한 방사포 공격으로 생긴 화염을 뚫고 대응포격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K9A2, K9A3 등 성능개량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군에는 K9을 개량한 K9A1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를 개량한 K9A2사업의 조기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0년 중반 시작될 영국 자주포 사업에는 K9A2가 제안될 예정이다.
K9A2는 포탑 자동화로 장전 및 사격이 자동화돼 분당 발사 속도가 6발에서 9발로 증가한다. 원격 무인화 및 자동화로 운용 인력도 현재의 5명에서 3명으로 감소한다. 저출산 시대 병력 감축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2030년 이후 도입될 K9A3는 무인 자주포다. 올 연말 이와 관련된 핵심기술 응용연구가 시작된다. 포탑 및 기동을 무인화해 필요시 무인으로 운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개발될 예정이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